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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학문의 즐거움'을 즐겁게(?) 논하기 전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꺼내는 것으로 시작을 하겠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집에 놀러오셨다. 몸이 안 좋으셔서 자주 오시지 못한 터라, 오랜만에 그분들을 만나 뵙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외할머니와는 말도 잘 통하고, 내가 하는 얘기 또한 무시하지 않고 잘 들어주시는 터라 그 날 밤에도 나는 신나게, 외할머니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에서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두서 없이 늘어놓던 이야기는 내 장래 문제로 이어졌다. 곧 졸업을 앞둔 손녀가 걱정이 되셨는지 할머니는 앞으로 뭘 할거냐고 물으셨고, 나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잘 모르겠다는 표현보다는 차라리 모르고 싶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은 없고 자신도 없고......라는 말을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우물거리며 말했었다. 바로 이어진 할머니의 말씀은 이랬다. "뭘 하든지 하고 싶은 걸 해야 되는기라. 그거 아니면 못 살 것 같고 그거 안 하면 죽을 거 같으면, 그냥 그것만 해야된데이. 괜히 딴 데로 눈 돌리고 그러면 니만 손해고 그런 기라." 나와는 달리 온화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지신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라서 그런지 조금 더 충격이었다.
하고 싶은 것, 못 하면 살지도 못할 것 같고 죽을 것 같은.....그런 것이 내 인생에 존재했던가? 졸업을 앞두고 누구나 학교생활을 다시 돌아보고 후회하게 되지만, 이 질문은 단지 후회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해본 적이 있냐는 것. 이 질문은 거창하게 말하면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인 것이다. 할머니와의 에피소드와 이 질문, 그리고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여기에 대한 대답을 위해 나는 다시 질문한다. '학문'과 이로 인한 '즐거움'은 과연 무엇인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학문'을 마음껏 연구하고, 거기서 얻은 '즐거움'을 기쁘게 누린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이야기이다. 그의 학문적 성과와 명성이 묘사된 구절을 보면 그냥 그런 자서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고, 공부하는 게 즐겁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더없이 행복했다는 저자의 얘기를 들으면 공감이 되기는커녕 나와는 상관없는 천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꼭 예를 들지 않더라도 연말이 되면 언론을 장식하는 '수능 만점 합격자'나 '명문대 수석 합격자', 아니면 외국 일류 사립대 합격자들의 인터뷰나 수기를 대할 때의 기분이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를 엄습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 사람들이 꼭 다 천재라는 것은 아니다. 수재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분명 그러한 면도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노력하면 누구나 다 원하는 것만큼의 성과를 이룰 수 있다'라고 앞에서 말한 수재들은 주장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노력만 한다면- 이라는 전제를 강조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노력에 내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겸손하고도 열려있던 자세였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환경, 친구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그것이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언뜻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책임이나 불만을 돌리지 않고 자신의 능력만을 응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자신 있어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경쟁 관계에 놓인, 자신보다 훨씬 잘난 친구나 동료를 질투하지 않고 배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불만을 터트리기는 쉽지만 그 불만들로 인해 상처받을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저자는 그러한 태도로, 학문과 삶에 접근해가고 있었고, 그러한 점이 나를 감동시켰다.
또한 저자는 학문과 삶을 분리해서 보지 않는다. 그에게는 삶이 학문이고, 학문이 곧 삶이었다. 공부를 왜 해야하냐는 질문에 대해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하는 그의 답변에는 진리가 숨어 있다. 무엇을 하든 그것을 진정으로 이루어내고 싶다면 더 높은 단계로 도전해야 하고, 그로 인한 시련과 고난을 견디어내야 한다. 이것은 삶이든 학문이든 그것을 '살아내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살아내는' 과정은 '살지 않고서는' 얻어낼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떻게 하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냐는 질문에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라는 답을 남겼다. 살기 위해서 돈을 벌고, 연애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이러한 삶을 성실하게 살아나가는 사람만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하루키는 믿었던 것이다.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경우에도 그렇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 이야기는 그대로 해당된다.
더 나아가면, 히로나카가 이야기하는 학문과 그로 인한 즐거움은 단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를 하는 그런 측면의 의미가 아닌 것이다. 학문은 개인 각자가 추구하고 이루어내고 싶은 하나의 목표인 것이다. 그것은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운동이 될 수도 있으며, 멋진 작품이나 발명품을 만들고 싶은 욕망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자신의 삶과 연결이 되고 그것으로 인해 기쁨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학문이고, 독창성으로 빛나는 삶인 것이다. 삶과 연결되는 학문, 만약 우리가 실용성을 요구하고 찾으려 한다면 그러한 면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과 연결되는 학문, 삶과 학문이 일치된 인생을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노력이라는 단어가 먼저 나올 법도 하지만, 그 전에 던져야할 질문이 있다. '과연 내가 이것을 진정으로 원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책에서 제시된 '필요'라는 뜻을 가진 두 단어, needs와 want. 그러나 속뜻은 다르다. 전자는 이성에 의한 판단에서 생긴 필요이고, 후자는 무언가 견딜 수 없는, 경우에 따라서는 참을 수 없어서 폭발할 정도의 정념으로부터 생기는 필요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본문 155쪽) 전자의 잣대로써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다면, 심지어 주위 사람의 말이나 사회가 제시하는 잣대로 자신이 원하는 후자의 필요를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비극이다. 자신의 삶을 남의 시선으로 살아야하는 것, 그것은 주체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삶을 살아나가는 즐거움도 얻지 못할 불행한 삶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필요를 구분하기 위해서, 그리고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배움을 행하고, 자신만의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꾸준히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을 사랑하는가?" 내 외할머니의 질문처럼, 이 질문은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임과 동시에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물음인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나는 무언가를 끝내야하고 동시에 새롭게 시작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중 하나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4년 동안의 대학교 생활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소중한 가치들을 찾아냈는지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은 허망함을 던져줄 뿐 아니라, 지극히 슬픈 일이기도 하다. 내 자신의 목표에서 내가 얼마나 멀어졌는지, 자유롭게 마음대로 살아보자는 가치관이 혹 나를 방임한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고민과 후회, 앞으로 살아나가야 할 삶과 살아가고 싶은 삶인 '삶과 학문이 일치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이 나에게도 주어질지. 그를 위해서는 당연히 노력을 해야 하지만 게으르게 살아온 내 자신이 과연 이를 견디어낼 수 있을지. 갖가지 고민과 두려움이 머리를 채운다. 그러나 이런 고민과 두려움은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양면을 가진 열쇠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열쇠를 그냥 버릴지, 원하는 길을 통과하기 위해 유용하게 쓸지는 그것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달린 일이다. 혹 열쇠를 쥐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열쇠를 쥐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키즈 리턴'의 대사를 되뇌어본다.
"우리는 이제 끝난 걸까?"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는걸!"
우리에게는 삶과 학문의 즐거움을 느낄 시간이, 아직은 많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