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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에서 이 말을 비추어 볼 때, 사르트르의 말은 명제에 도전하는 지독한 모순에 다름 아니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타인'을 '지옥'이라는 극단적인 언어로 표현했을까. 아멜리 노통의 '오후 네 시'는 한 개인이 지극히 불편한 한 타인을 대하면서 변해 가는 과정을 재치 있고도 잔혹하게(이건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리고 있다.
고전어를 가르치는 학교 선생인 에밀과 그의 아내인 쥘리에트는 정년 퇴직 후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한다. 꿈에도 그리던 아름다운 집까지 얻은 그들이 원한 것은 평화와 안정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웃에 사는 베르나르댕 씨의 방문으로 인해 그들의 생활은 혼란에 빠진다.
이들의 이웃인 팔라메드 베르나르댕은 기이한 인물이다. 그는 매일 오후 네 시에 그의 이웃을 방문한다. 친교를 맺으려는 것 같은 뚜렷한 이유가 있는 방문은 아니다. 세수를 하거나 이빨을 닦는 것 같은 지극한 일상처럼 그는 그저 이웃집에 잠시 머무를 뿐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일상일 법한 일이, 이웃에게는 공포가 된다. 그리고 그 공포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성실한 자아성찰이 아닌, 오히려 내면에 숨어있는 추악한 면을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사회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내면화시킨다. 법 같은 드러나는 규칙도 있고, 규범이나 예의 같은 드러나지 않는 규칙도 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규칙들은 보통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지켜진다. 지키고 있는 우리들도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저 '존재'하고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규칙들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조금 더 유혹적으로, 이런 규칙들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온다면. 과연 우리들은 얼마나 '사회적 규칙'에 충실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에밀과 쥘리에트는 처음에는 베르나르댕에게 예의바르게 대한다. 차를 대접하고 상냥하게 인사를 하면서 소위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베르나르댕은 이에 대한 감사나 반응은 전혀 없이, 그저 두 시간만 채운 후 나가버린다. 그는 사회가 정의하는 관계와 그 관계에 대한 규칙 또한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그가 최소한의 소통은 원한다는 것이다. 에밀과 쥘리에트가 점점 그의 방문을 꺼리게 되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차를 내오지 않는 식으로 머리를 쓰자, 그는 격렬하게 화를 낸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의무를 지킬 것을 요구하는 모습. 익숙한 이미지가 아닌가? 이것은 떼를 쓰며 울어대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에밀이 견딜 수 없는 것은 베르나르댕의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일깨워내는 자신 안의 추악한 어린 아이의 모습이다. '당신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라는, 간단하고도 잔혹한 사실이다. 한때 도시라는 문명화된 곳에서 교양 있는 인간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아왔을 에밀의 내면은 불쑥 나타난 타인 앞에서 무참히 부서지고 깨진다.
결국 에밀은 점점 난폭해지는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베르나르댕을 살해한다. 그도 원했을 거야, 그의 눈은 죽음을 바라고 있어, 나는 그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구원해주는 거야! 이미 에밀은 신의 자리에 서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이 될 자격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 늘어놓는 궤변은 한 때 그가 교양 있는 학교 선생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할 정도이다. 그러나 에밀이 신이라는 역할을 맡은 것은 아주 잠시뿐이다. 잠시 창조주였던 것처럼 즐거워했던 그의 입에서는 마침내 무서운 말이 나온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라고.
우리는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아니면, 나도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고도 말한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범위를 넘어서는 자신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가끔 일탈을 꿈꾸기도 하고, 전혀 다른 자신을 그려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가 정해주는 테두리 안에서이다. 그러나 어느 날 테두리 자체가 사라져버린다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누군가가 옆에서 속삭인다면? 돈을 훔치고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인간답게' 행동할 수 있으며, '인간답게' 타인을 대할 수 있는가?
소설 '파리대왕'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어린이들에게 권력을 주면 그들은 세상을 파괴할 것이라고. 굳이 어린이들에게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의 추악한 면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것. 그것 자체가 벌써 커다란 권력이다. 그리고 제어장치가 없는 권력을 가진 인간의 모습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미 우리는 대답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