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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보리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여 뚜렷한 근거가 떠오르거든 어리석음이 커져서 행동을 방해하기 전에 그대를 묶고 있는 것들로부터 멀어지라....나무와 물에게 그대가 필요하게 하라...." (투서 ..좋은 농부가 되는 오백가지 방법..중에서) 첫 장을 펴는 순간 보이던 글귀다. 지금의 삶을 모두 버리고 나무와 물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조화로운 삶'일까? 책을 처음 접할 때, 재생지로 된 이 책이 좀 지루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읽어나가면서 이 부부의 꾸밈없는 삶과 재생종이의 느낌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첨부된 사진 또한 그들이 얼마나 '조화로운 삶'을 살았는지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니어링 부부가 뉴욕 생활을 그만두고 버몬트의 외딴 산골로 들어가 살았던 20년 동안의 생활을 기록한 것이다. 니어링 부부가 도시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이유는 부를 축적하려고만 하는 사회에서 멀어져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째, 다른 나라로의 망명. 둘째, 그냥 순응해서 살아가는 것. 셋째, 시골로 내려가 자급자족하는 것 중 세 번째 방법을 택하여 일할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그 나머지 시간을 연구와 책읽기, 글쓰기, 대화 등을 통한 "조화로운 삶"을 살기로 했다.
"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 되는대로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 아니면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더 나은 길을 찾아 성실히 사는 것이다."(헉슬리...생물학자의 생각..)에서도 알 수 있듯이 흔히 도시를 벗어나 농사를 짓고 산다고 하면 대충 농사나 짓고 시간가는 대로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부부는 그렇지 않았다. 버몬트에서의 10년 계획을 세우고 "삶의 원칙"을 정했다. 그리고 이것들을 성실히 지키며 살아갔다. 간단히 정리하면 하나, 먹고사는데 필요한 것을 반쯤은 자급자족할 수 있게 한다. 둘, 먹고사는 것만 해결하고 더 이상의 돈은 벌지 않는다. 셋, 은행에서 절대로 돈을 빌리지 않는다. 넷, 우리 땅에서 아무 것도 내다 팔지 않는다. 채소나 곡식이 남는다면 이웃에게 필요한 만큼 나눠준다. 다섯, 집짐승을 기르지 않는다....이러한 그들의 원칙은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생활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이들은 손수 주변의 돌과 밭을 갈다 나오는 돌을 나르고 쌓고 해서 자연과 하나되는 집을 지었다. 이웃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스무 해 동안 열두 채나 돌집을 지었다. 집 짓는 것을 작은 것까지 하나하나 적어서 마치 집 짓는 것을 옆에서 구경하는 듯 했다.그리고 유기농법으로 곡식, 채소, 과일 등을 키웠다. 또 저장고를 꾸며 채소를 겨울에도 먹을 수 있게 했으며 이들은 인정 넘치고, 분수에 맞으며, 깨끗하고, 단순한 생활 방식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육식은 하지 않았다. 이렇듯 이들은 "집짓기" 와 "농사짓기"를 통해 결코 도시를 벗어나 살아가는 삶이 단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단순히 어떻게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림을 꾸릴 것인가 따위의 '귀농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는 동떨어진 버몬트의 산골에서 대안으로서의 삶을 찾으며 그렸던 꿈을 현실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던 '단순한 생활,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남, 무엇이든 쓸모 있는 일을 할 기회'를 누리는 생활을 말이다.
니어링 부부는 꼼꼼하게 산골에서의 삶을 묘사했다. 마치 귀농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전해주듯이 잡초 제거하기, 양식을 보관하는 법,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기, 농기구 다루는 법 등 세세한 방법들을 일러준다. 그리고 이들은 도시에서 농약이 가득한 채소와 과일, 표백제로 영양분이 다 빠진 밀가루를 먹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했다."제대로 먹는 것이 가장 훌륭한 치료이니, 충분히 신경 써서 건강을 지켜야 한다."(섭생..중에서).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땅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유기 농법으로 자기가 먹을 것을 조금이라도 기르고 화학 약품이 들어간 식품 대신 자연 식품을 사서 집에서 요리해 먹기를 권한다. 또 도시에서는 항상 무언가를 소비하며 살아가는 우리도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음을 믿게 해준다. 하지만 솔직히 그들의 숲 속 농장을 방문했던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이것은 좋은 생활 방식이나 이런 생활 방식은 그이들에게는 훌륭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가 그 생활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고 했듯이 이 부부처럼 철저하고 꼼꼼한 삶을 살 수 있을지는 아직 자신이 없다. 이 부부는 문명이 주는 분주함, 편의 시설, 흥분 등이 없이는 살 수 없고 따라서 이런 생활을 따를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철저함, 꼼꼼함 때문에 산골에서의 그런 '조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철저함을 나타내는 부분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밭일 공책'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모든 연장을 쓰고 나서 기름칠을 해 제자리에 놔두고, 태양열을 이용한 온실을 만들고, 손님이 와도 자신들이 일할 시간이면 그저 일하며 이야기하는 등...솔직히 놀라울 뿐이다.
이들은 또 일한 후 네 시간은 자유롭게 쉬고, 취미 생활을 즐겼으며, 일요일에는 음악을 연주하거나 감상했다. 또 이웃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일들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했다 ."기운을 돋우기 위해서도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 누구보다도 농사꾼에게 이런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어느 만큼은 여가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마컴...만족스러운 시골 생활..). 이 얼마나 문화인다운 생활인가!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음악을 감상하고 토론하는 일이란 일부러 만들어도 잘 즐기지 못할 것이다 .즐긴다고 해도 무언지 모르게 쫓기는 느낌이 들것이다. 그러나 이 부부는 진정으로 삶을 느끼며, 즐기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이들은 서두르고 속도를 내서 살아가야 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평온한 속도의 삶을 즐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독자에게 가르치려 하지는 않는다. 또 자신의 가치관을 피력하지도 않는다. 다만 솔직한 삶을 보여주면서 독자 스스로 삶을 돌아보게 할뿐이다. 니어링 부부가 보여준 것은 자본주의 경제와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 자급자족을 하면서도 인생에서의 자아를 실현하고 여가를 즐기며 개인의 재능을 향상시키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책은 소박한 삶의 방법론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 경쟁과 시기가 가득한 사회 질서에 등지고 모두 함께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을 보여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이익을 늘리는 목적 하나만을 갖고 일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 이렇게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어 살 때, 모든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도널드슨 ...행복의 지름길..중에서) 니어링 부부가 버몬트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 당신이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이 모든 일을 다시 시작하겠습니까?" 라는 질문이었다. 이들의 대답은 "틀림없이 거의 그대로 살아갈 겁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삶에 거의 후회 없을 정도로 살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들처럼 후회 없이 살 수 있을까?
이 글의 끝 부분에서 "삶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소유와 축적이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다." 라는 이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나에게도 희망이 있었던가? 지금껏 희망이 있어 달려왔다기보다는 단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데 급급해 정말 나의 '희망'이 무엇인지는 생각지 못했다. "희망"이 없다면 삶에 열정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노력"이 없다면 그 열정을 채워 줄 수가 없을 것이다. 내 삶도 "조화로운 삶" 이 되길, 후회 없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