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 컬러판
생떽쥐베리 / 문예출판사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라디오를 듣다가 '어린 왕자'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책에 관해 얘기하던 라디오 코너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의 '어린 왕자'에 대한 얘기는 이러했다. '어렸을 때, 난 이 책을 30분만에 읽고 이 책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대에 내가 이 책을 다시 펼쳤을 때, 난 내가 어떻게 이 책을 다 이해했다고 말한 건지.... 나 자신이 정말 어리석어 보였다.' 라고. 어린 왕자가 가진 단순함과 깊이를 잘 말해주는 표현 같았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어린 왕자와 여우가 처음으로 조우하던 부분만 교과서에 실려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 '어린 왕자'가 단편인 걸로 혼자 착각하면서 '길들인다'라는 말에 나름대로 감동해서 고개를 끄덕거리던 기억도 난다. (이 표현은 김춘수의 '꽃'과 더불어 연애편지에 제일 많이 쓰이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그 후로도 '어린 왕자'에 대한 명성은 정말 많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유명한 책은 잘 읽지 않는 나의 이상한 괴벽(!)으로 인해 이 책을 정독할 기회는 빨리 주어지지 못했다.

결국 수능을 마치고 나서 가볍게 읽을 거리를 찾던 도중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린 왕자와. 사실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계산대 앞에 진열되어 있었을 뿐이다. 아마 아무 책이나 고른다는 행위가 가볍게 읽을 거리나 찾아보자는 생각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열심히 정독(!)하게 된 어린 왕자......그는 정말 사랑스러운 인물이었다. 장미를 정성스럽게 돌봐줄 수 있고, 상자 안의 양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고, 어른들의 잘못된 모습에서 의문을 제시하는 순수한 면을 지닌 인물이었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인물을 창조해낼 수 있었을까? 이런 혼탁한 세상에, 비록 작가가 어느 정도 옛날 사람이라고 해도, 그때의 세상이 특별히 아름답고 순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영악하고, 계산적이었을 것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어떻게 어린 왕자를 창조해 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런 물음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이미 난 순수하지 않다는 면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르고.

어린 왕자는 이런 세상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막으로 대표되는 삭막한 세상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려 애쓰던 그는 결국 뱀에게 자신을 부탁한다. 책을 보고 우는 게 가장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웃던 난 결국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나무가 넘어지듯 조용히 쓰러진, 모래라서 소리도 나지 않던...'그의 죽음. 그의 죽음은 이 세상의 순수 하나가 조용히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었고, 순수함이 파괴되어도 아무 대답이 없는 무정한 세상을 향한 조용한 메아리였다.

난 화가 났다. 그가 사라진 게 화가 났고, 그처럼 될 수 없는 내가 미웠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되고 싶어하던 어른이 된 지금, 오히려 어른도 아닌, 아이도 아닌 채로 어정쩡한 상태로 순수함만 잃어가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결국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 숫자를 좋아하게 되고, 길들임의 의미를 알지 못하게 되는.....

지금 내가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건 아직도 어린 왕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답답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에서 맹목적으로 그의 순수함만 찾으려 하는 내 모습. 과연 옳은 것일까? 순수함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단지 순수함 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 책을 이해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 같다. 언제쯤 이 책이 품고 있는 의미를 더 알아갈 수 있을까?

어렸을 때 생각이 난다. '꼬마 니콜라'라는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어했던 기억. 그러나 며칠 전에 그 책을 다시 읽어보면서 '이 녀석들 공부는 안하고 되게 시끄럽네'라고 중얼거리다 그런 나 자신에게 놀란 적이 있다.

난 이제 순수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정말 슬픈 얘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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