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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 무라카미 류의 요리와 여자 이야기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만약,당신 주위에 돈도 많이 벌고,그 돈을 거침없이 쓰면서,당신에게 '나 외국여행도 가구,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어~당연히 최고급 코스로만 달렸지!'하고 깔깔거린다면 뭐라고 반응하겠는가? 성질있는 사람이라면 한방 날릴테고,조금 온건한 사람이라면 속으로만 '그래,너 정말 잘났다!'하고 투덜거릴 것이다.
여기,거침없이 그 내용들을 제시하는 작가가 있다.게다가 남자라면 부러워할 여성들에 대한 자신의 편력까지 거침없이.
무라카미 류(이하 류)는 이 책에서 자신의 미식가적인 감각을 거침없이 자랑한다.흔한 평민이라면 듣도보도 못할 음식들이며 이국적인 풍경들은 어쩔 수 없이 이끌린다.마치 부자들을 욕하면서 뒤에서는 그들을 부러워하듯이 말이다.아니,어쩌면 음식이라는 것과 여자들 얘기는 미각과 성욕이라는 1차적 감각에 속하는 얘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로서는,이 책의 내용보다 그안에 내재되어 있는 그의 가치관에 더 마음이 끌렸다.당당하고 솔직하고,그래서 유쾌해보이기까지 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숨겨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곳이다.돈도 많이 버는 건 상관없지만 쓸때는 눈치를 보면서 써야하고(빈민층의 원성을 언제 살지 모르니까),여자를 볼때 가슴으로 눈이 가면서 괜히 점잖은 척 하느라 '전 눈을 봐요.마음의 창이잖아요.'라고 넌지시 말하고(우리나라 모든 남자들은 다 눈을 본다!!).
우스움의 극치다.겉과 속이 다른 것이 확연히 드러나 보일때,인간은 어떤 희극배우보다 웃겨 보인다.
하지만 류는 그렇지 않다.그는 벌만큼 벌었고,그가 쓰고 싶은데 마음껏 쓴다.설령 돈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또 벌어서 쓴다.그것은 그가 인기작가인 탓에 돈을 많이 만질(?)수 있는 환경 탓만은 아닌 것 같다.인생을 대하는 거침없고 솔직한 태도에서 그만의 가치관이 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인생은 유한하다'라는 것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것을 무시하고 싶어서,모른 척 하고 싶어서 사람들은 그 절대명제에 멀리 있다.이것을 하고 싶은데도 남들이 욕한다고 저것을 하고,저 여자랑 사귀고 싶은데도 그냥 지나쳐 버리고.우리는 인생에 너무 많은 점잔을 떨다가 인생의 끝으로 밀려나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그것을 발산해내는 류.그의 안에는 인간의 욕망,절망,순수,쾌락 등등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들어있는 듯 하다.인생을 정말로 즐겁게 살고 싶은 그의 노력 또한 거기에 있을것이다.
이 책은,적어도 나에게는,단순한 요리에세이는 아니었다.조금 소극적인 나에게 '한번,이리와서 부딛쳐봐!'라고 조금은 불순한 의도로 나를 '꼬시는' 책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인생은 짧고,우리가 누릴 즐거움 또한 앞으로 조금씩 달아나고 있는 것을.조금 더 불순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