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포올러스 지음, 김명우 옮김 / 종이연 / 1994년 4월
평점 :
절판


지금,이 암울한 시대.우리는 희망을 얘기한 적이 있는가? 오히려 그 단어를 얘기하면 얼굴을 찌푸리며 '그래,너 참 여유있어 좋겠다!'라고 짜증을 내지는 않는가.

내가 이 책을 선물받은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 때에 절망을 알 수 있었을까? 애벌레가 죽어라 노력하며 정상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려왔다가 결국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내용이 참 당연해보였다. 오히려 그때는 희망을 몰라서 희망을 더 잘아는 시기였다. 모순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 들은 지금 다시 이 책을 읽어보니,애벌레의 고통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어느 정도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애벌레의 삶은 우리 인간의 삶일지도 모른다.단순히 먹기만 하면서 때로는 연인을 만나 사랑도 하다가,목표가 생기면 무섭게 돌진도 하고,목표 상실에 대한 아픔도 맛보는....다만 인간의 삶에서는 행여나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인간은 그렇게 약해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애벌레는 결국 나비가 된다.연인이었던 또다른 애벌레의 인도를 받고 말이다.그리고 그들만의 생명의 결정체를 남겨두고 어디론가 다시 떠난다.그들만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말이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결말은 아주 이상적이고 바람작한 결론으로 보인다. 마치 옛날 우리가 읽었던 동화처럼 말이다.이러한 결말은 인간들에게 희망을,때로는 절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그래,이렇게 살아야지'라거나 '쳇,결국 이런거지.현실과 이상은 다르다구!'라고 말이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어떠하든,결국 현상을 직시하게 하는 건 자신만의 눈이다.현실이 쓰레기 한더미 같아도 작은 채송화 같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건 우리 자신의 마음이니까.

이제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내 자신이 지금 그렇지 않더라도.훗날 더 나은 내 모습을 원한다면 말이다.애벌레가 방황한 것도,죽을 힘을 다해 정상으로 올라간 것도,지친 몸을 이끌고 고치를 만든 것도,결국 원동력은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20대의,이제 다가올 암울함에 휩쓸려가지 않게 희망의 한 자락을 붙들 수 있게 해준 '꽃들에게 희망을'.'어린 왕자'와 더불어 '희망'과 '순수'를 알게 해준 계기가 되주었다.

이제,다시 바라보기.
2학년 때의 시각으로.다시 세상 바라보기.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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