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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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이후로 나는 일본에 대한 거부감을 어느 정도 벗어버리게 되었다.그러던 중에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누구나 책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을만한데,나도 이 책에 대한 추억거리가 하나 있다.

신문에 '키친'에 관한 광고가 크게 나왔었다.광고카피가 아마 '우울한 젊음에 관한 어쩌구~'였다. 그 책이 읽고 싶어진 나는 엄마한테 이책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신문광고를 잘라내어 엄마한테 주면서 꼭 사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

하지만 엄마는 사오지 않으셨다.

이유인즉슨,'우울한 젊음'으로 시작하는 카피를 보신 엄마는 이 책이 나의 정서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왜 책을 안사왔냐고 투덜거리는 나에게 엄마가 하신 말씀이셨다.이런 책은 보면 안된다고.(나중에 보니 그런 내용도 아니었다.) 그때 내 나이 20살이었다.내가 초등학생도 아니고....지금도 나는 그 얘기를 엄마에게 하며 웃곤 한다.

결국 내 돈으로 사서 보게 된 키친.(여러가지 단편이 실려져 있지만 키친과 키친 2를 중심으로 얘기한다면.) 제목 그대로 '부엌'에 관한 이야기이다. 부엌을 사랑하는 주인공 미카게.그녀는 모든 희노애락을 부엌과 함께 한다.후의 직업도 요리사이니 말 다한 셈이다.

미카게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알게 된 유이치와 그의 어머니와 우연히 살게 된다.여기서 이상한 설정.유이치의 어머니는 원래 남자였으나 대수술(!)을 통해 여자가 된다.유이치의 어머니(자신의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건지.... 살길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한 그는 여자가 된 후 술집을 경영하여 유이치를 먹여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이치는 굉장히 밝고 명랑하다.이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바나나의 황당함은 하루키 못지 않다!) 마치 영화 '내 어머니에 관한 모든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후에 유이치도 어머니를 살인사건으로 잃게 되고 미카게와 유이치는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며 조금씩 사랑을 키워나간다. 이 소설에는 정확한 결말이 없다. 다만 독자가 짐작하게 할뿐이다. 이 소설은 '부엌'이란 공간을 통해 인간을 나타내고 있다. 사람과 사람으로 인해 생길수 있는 감정들. 사랑,슬픔 등 바나나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키친'은 온세계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미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노르웨이 등 30여개국에서 번역되어 바나나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것이다.작년만 해도 '키친'은 영화로 안 나오냐는 팬들의 얘기가 있었으나 영화로 나온 지금,보지 말라는 얘기만 들었다. 역시 유명한 원작소설을 훌륭한 영화로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쯧......
'
키친'은 깔끔한 소설이다.주인공들의 아픔이 세밀하게,그러나 아파보이지 않게 그려진다. 결말 부분에서 미카게는 돈까스 덮밥을 가지고 유이치를 찾아간다.유이치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여행을 간 것이다. 그런 유이치에게 미카게는 눈길을 헤치고 담을 넘는 등 고생을 해가며 돈까스 덮밥을 내민다. 자꾸 어두운 곳으로 도망가지 말라고.죽음은 버거운 일이지만,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겠지만 함께 이겨내자고 말이다.

음식은 인간에게 필수요소가 아니던가.죽음이란 무거운 일을 겪은 그들에게 '돈까스 덮밥'은 가벼워보이지만 따뜻함으로 그들에게 다가선다. 음식으로 인간사를 풀어낸 바나나의 탁월한 필력이 놀라울 뿐이다.

국내에 번역된 바나나의 작품은 키친을 포함해 여섯권 정도 된다. 도마뱀, 하치의 마지막 연인, N.P, 멜랑코리아(암리타로 최근에 다시 나옴), 허니문 정도이다.(푸른 방이라는 소설집이 있었으나 절판되었다고 한다.) 모두 따뜻한 분위기와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들이다. 게다가 책디자인도 이쁘니까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시는 분은 내용과 겉표지가 다 맘에 들듯.

그리고 하루키와 비교해 읽으면서 상상력을 견주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둘다 상상력,즉 기묘한 상황 설정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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