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 작가정신 소설향 5 작가정신 소설향 23
배수아 지음 / 작가정신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철수.

흔한 이름이다.어릴 적 교과서에서는 '철수와 영희'가 어김없이 발견되었고 관공서에서 서류작성의 예를 들때는 어김없이 홍길동과 함께 등장하는 그 이름 '김철수'. 어쩌면 배수아는 그 평벙함과 안일함으로 적셔진 '철수'라는 이름을 통해 그 안에 숨겨진 독을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히스테릭한 어머니,책임지려고 했으나 결국 버린 꼴이 된 오빠,유일하게 희망이라는 것을 꿈꾸는 동생이라는 가족 사이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주인공.그러나 배수아 특유의 교묘하고도 나른한 분위기 탓으로 주인공은 그렇게 힘들어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서는 남자,철수. 수많은 여자를 거치면서도 별다른 연애전략을 보이지도 못하는,철수는 희미하고도 흐리멍텅해 보이는,다소 알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철수의 집에서 잠깐의 관계를 가진 후 철수는 그녀에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철수의 어머니를 통해서,그 자신을 통해서. 특히 철수의 어머니는 과도하고도 세속적인 관심을 퍼부어대는,배수아 특유의 '역겨운 인물 묘사하기'의 방법을 보여주는 듯 하다.마치 그것은,소설 도입부분에서 묘사되는 관료적인 모습을 떠올린다면,굳어버린 '국가거대권력'과도 같은 듯하다.

사실 배수아의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녀와 관료적 성향은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실제로 공무원이라는 사실은 접어두고라도, 소설 곳곳에는 열혈당원,이상주의자,감옥에 있는 아버지,소설 후반에 등장하는 남자 등등 관료적 모습과 그에 대한 다소 냉정한 시각을 엿볼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개인을 알게모르게 속박하는 권력의 모습을,그 독을 배수아는 발견한 것이 아닐까.

소설 후반에 그녀는 철수의 면회를 가고,계속 헤맨 뒤 철수를 만난다.그리고 그가 건네준 닭을 변소에 버린다. 철수라는,그녀를 속박하려는 그림자가 준 선물을 거부해버리고 너의 의무는 다 됐다고 말하는 그녀.그녀는 배수아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비록 그녀는 자신의 소설에 개인적인 것은 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단호한 거부를,그 고집을 엿볼수 있다는 것은 한없이 설레이면서 한없이 슬프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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