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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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람, 그리고 그에 관한 이야기들.
이 책에 대해서
정말 단순하게 말했을 때의 얘기다. 


 

그리고 역시 살인, 사람, 그리고 그에 관한 이야기들.  
 ‘군포 여대생 살인사건’ 및 매일 일어나고 있는 살인사건들에 대해
정말 단순하게 말했을 때의 얘기다.   


 

그리고 이 단순함이란 것은  ‘살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대처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끔찍하고 무서운 일, 그렇지만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그리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 이렇게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지만 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가벼운 죄책감이 섞인 안도감.
눈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그 후로 10분 쯤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는.
많은 살인 사건을 접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타인’인 우리들의 단순함은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어기제일 것이다.
그 수많은 끔찍함 들을 다 기억한다면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책 ‘이유’는 우리의 소위 ‘방어기제’라는 차양을 들어 올려 무언가를 내민다.  
하지만 무턱대고 들어오는 불한당 식은 아니다.  
그냥 사건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씩 던져준다.



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살해된 것은 ‘누구’이며, ‘누가’ 죽였는가.
그리고 사건 앞에는 무엇이 있고, 뒤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본문 p.13)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 웨스트타워라는 고층 아파트에서  
아라카와 일가족 4인 살해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사건의 용의자인 ‘이시다 나오즈미’라는 남자가  
카타쿠라하우스라는 , 자신의 집에서 운영하는 여관에 있다고  
신고하러 온 여학생이 등장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사실 3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의 내용은 위에 인용한 3문장에 대한 답이다.  
살해된 사람이 누구인지도, 누가 죽였는지도 첫 부분에 다 나온(일단은) 셈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사건이 일어난 이유와 사건 전의 상황과 사건의 후일담이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을, 우리가 읽어야 할까? 알아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마지막에) 일단 "Yes"를 선택해보자.


그 후에는 다소 지루하다고 생각될 만큼의  
배경과 인물에 대한 서술과 묘사가 펼쳐진다.  
아파트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세워질 당시 일본의 시대적 상황,  
최초 목격자의 직업과 가족관계,  
아파트 관리인의 나이 및 현재 상황, 아파트가 운영되는 방식,  
하다못해 피해자(로 여겨지는)의 누이의 교육관(그녀의 직업은 교육자이다.)까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헤매다 보면 약간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아까 읽었던 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된다.  
이 내용이 맞나?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이 사람이 맞나?  
그런데 뭔가 변화가 생긴다.  
새삼스럽게도, 이 모든 게 나 같은 사람들에게 정말 일어난 일이었구나―라는,  
어떻게 보면 허탈할 정도의 간단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연민도 아닌, 그렇다고 동감이라고 할 수 없는, 차가운 자각이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 왜 몰랐을까?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은 이상 피해자도 살인자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이고 동료일 텐데.  




등장인물들의 이름, 성격, 가족 관계, 경제 사정, 실패 등의 속사정이 더해지면서 
 ‘타인’이었던 그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이 책을 덮고 난 후에 알게 된 지금 살아남은 자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피해자 가족들의 우는 사진들, 범죄자의 차가운 눈빛,  
사건 후 몇 년이 지난 후의 인터뷰에서도 
 ‘아직도 우리 애가 꿈에 나타난다.’라고 눈물짓는 사람들을  
멀거니 바라보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들을 이해한다고 한다면 교만일 것이고,  
내가 잘못한 건 없다고 하면 무책임한 일일 것이다.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고, 나는 살인자와 다르다고?  
그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후의 일에는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적어도 ‘내 일이, 내 책임이 아니야-’라고 반응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항상 선이 승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좋은 사회가 유지되려면 선과 악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
어떤 사회에서 악이 선을 누른다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위의  문단은 매거진 T, 에픽하이의 멤버 타블로 군의 인터뷰에서 발췌했습니다.)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남은 이야기들을, 과연 우리가 알아야 할까?



Yes, 그렇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그게 적어도 살아남은 자의, 남겨진 자의 슬픔에 대한 작은 성의이다. 
지금은 단순함을 접고, 끔찍함과 아픔을 기억해야 할 시간인 것이다.
누군가가 또 그 아픔들을 담은 채 이 사회를 떠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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