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굴러다니는 강아지통을 꽃이나 별, 무지개만큼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아동 문학가, 권정생 선생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문장 하나에 권정생 선생님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 했습니다.
어쩌면 가장 소소하고 보잘것 없는 이름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소중하게 관심을 갖고 바라봐주신 선생님은 생명을 불어넣어주셨어요. 그래서 원래의 모습이 찾아주고 본디 귀했고 아름답다고 알려주셨거든요.
화려하지도 않았고, 반짝반짝 빛나지도 않았고, 최고아 아니지만 그래서 더 우리가 더 관심을 갖고 잘 들여다봐주기를 권유해주는 듯 다양한 그림책과 이야기로 표현해주셨습니다.
우리 엄마아빠 시대는 몽실언니라는 드라마를 먼저 생각할테고, 저와 우리 아이들은 강아지똥 그림책을 떠오르게 만드는 권정생선생님의 마법이 바로 그런거겠죠?
평탄하지도 않았고, 전쟁터 속에서 오히려 지독한 가난과 가족의 상실감으로 하루하루 버티기가 더 어려웠던 선생님의 유년시절을 보면 이렇게 아이들에게 소중한 꿈을 꾸게 만들었는지 새삼 놀랍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비록 지금 우리와 함께 글과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내가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그림과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공감은 가능하니 말이죠.
몽실언니는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강대국간의 이념 대립속에서 사회적인 통념 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는 부모와 가장의 노릇까지 모두 해내야만 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얇은 무명한복에어 동생을 업고 있는 몽실ㄹ언니의 모습이 새삼 떠올려집니다. 그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소녀가 자신의 꿈은 꾸지도 못하지 않았을꺼?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