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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사샤 세이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평점 :
이 책은 ‘잘 쓴 글’이라는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생각’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기술적으로(technically), 혹은 형식적으로(formally) 잘 서사 된 글이라고 이 책을 소개하기보다, 글로 서사 된 가치관, 사고방식, 생각이 마음에 드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물론, 이 책에 서사 된 내용이 오직 작가 자기 일만은 아니다. 그녀의 가족사이기도 하다.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그녀의 선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그의 아들. 그 아들은 가족의 종교에 수긍할 수 없었다. 집안 최초로 대학을 다닌 아들은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됐고 종교적 회의에 빠졌다. 그는 부모를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는 율법을 지키지도, 기도를 올리지도, 금요일 밤마다 예배당에 가지도 않으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박해를 피해 엄청난 희생을 무릅쓰고 탈출했으며 신세계에서 본래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려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자식들에게도 열심히 믿음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웃음을 띠고 이렇게 말했다.
“믿지 않으면서 믿는 척하는 것만이 죄다.”
현재 화자는 1장(chapter)을 읽고 있다. 이미 서문에서 이 작가의 생각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이렇게, 벌써, 책에 관한 생각을 쓰고 있다. 쓰고 싶었다.
이 책의 생각이 마음에 든 이유는 또 있다. 천문학자이자 교육자인 칼 세이건의 딸인 작가는 어려서부터 과학적 접근법에 익숙해 있다. 과학적 접근법은
“과학은 다른 사상과 비교하고 대조해볼 수 있는 사실 체계가 아니라, 어떤 견해가 면밀히 들여다보아도 무너지지 않는지 검증하고 확인하는 방식”
이라고 했다. 작가의 부모는
“과학을 통해 밝혀진 자연의 신비야말로 위대하고 가슴 벅찬 기쁨의 원천”
이라고 했다.
작가는 신앙을 갖지 말라거나 종교를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기뻐할 만한 것을 더욱 늘리라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자신을 무교자, 무신앙자, 불가지론자, 무신론자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입증할 수 있는 기적과 심오한 의미로 가득한 곳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 신앙이 꼭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중히 지켜온 의식들을 포기하라고도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격식을 갖춘 의식을 수행한다는 느낌 없이 진심으로 전통과 조상을 기리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화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타인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 상황이 마음에 든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진실은 아니다. 자신에게 진실일 수 있지만, 진실은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켜나가는 것은 기쁜 일이다. 타인이 옳다고 믿는 것을 굳이 인정하고 받들 필요는 없다. 그리고 타인이 옳다고 믿는 것을 비판하고 변경할 이유를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과학적 접근법으로 세상의 기적을 밝혀내고 자연의 신비를 파악하는 것도 기쁨의 원천이자 마음의 중심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점점 굳어지는 사고방식 혹은 가치관이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강요하지 않는 것. 타인이 옳다고 믿는 바를 공존하는 하나의 현상으로 즐겁게 듣는 것. 가장 위험한 순간, 타인이 옳다고 믿는 것이 정확히 내가 옳다고 믿는 것과 대치되는 순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집착을 입 밖으로 끌어내지 않는 것.
그래서 지금 화자는 이 책을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예전 한 교수가 독서하는 방법을 출판사가 정하는 것이냐고 일침을 놓았을 때 동의의 한 표를 던졌다. 지금 화자는 이 책을 ‘소개’한다. 읽던지, 좋다고 느끼던지, 타인에게 소개하던지 그것은 당신 세계의 일이다. 그런 의미의 독서 감상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