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리모 레비’ 읽기 - 우리는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가?

 

쁘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개 

서경식,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창비
 


 

쁘리모 레비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서경식과 김상봉의 대담집 『만남』을 통해서였다. 재일조선인 2세이자 자기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뿌리와 모국어 상실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서경식과, 서로주체성의 철학자 김상봉. 이 두 학자의 고뇌 가운데에는 쁘리모 레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기 삶과 학문 속에서 이 세계의 총체성을 온 몸으로 고뇌하는 이 두 사람에게 쁘리모 레비는 대체 어떤 의미란 말인가? 스스로 ‘인간’이라 여겨왔던 내가 아직까지도 온전히 보고 받지 못했던 인간의 어떤 모습을 쁘리모 레비가 폭로했기에 그들은 ‘쁘리모 레비’라는 화두를 끌어 안고 있는 것일까?

쁘리모 레비가 전하는 경험과는 좀 다르지만 내가 겪은 얘기부터 시작해 보자면, 고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에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라는 장애인 시설에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다. 사실 봉사활동이라기보다는 무급노동을 하고 왔다는 느낌이 더 강하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과 함께 뭘 같이 한 것도 아니고, 공장 같은 분위기의 세탁실에서 나오는 세탁물을 카트에 실어 나르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같이 갔던 다른 이들도 그리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지나가다 창문 너머로 시설 장애인과 가끔 눈을 마주치는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 후 10년여가 지난 오늘에 와서 그 창문을 사이에 두고 그 익명의 장애인과 내가 나누었던 눈빛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의 동공에 비치고 시신경을 타고, 마지막엔 내 뇌리에 박힌 그는 그 짧은 순간 나에게 어떤 존재였던가? 나는 정말 그를 바라봤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동공이 그리로 향해 있던 순간에 신경세포의 운동으로 그의 이미지를 잠시 뇌 속에 담아둔 것일까? 그 봉사활동을 가면서 잠시라도 스쳤던 모든 이들은 굳이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에게 인지시키고 있었다. 참가자들을 인솔하던 사람은 근로복지공단 직원 일테고, 여러 참가자들은 대전 어디쯤에서 온 내 또래의 산재 노동자 자녀들이다. 우리 스스로가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우리에겐 자신의 ‘사회적 근거’를 드러낼 하나 이상의 표식이 있다. 이것을 통해서만 나는 타인을 하나의 ‘존재’로서 대할 수 있다. 그러나 잠시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되었)던 그 장애인과 나는 서로 어떤 표식을 나누었던걸까? 혹시 나에게 잠시 세탁물 카트를 잠시 세워두고 그와 마주앉아 이야기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나는 그날 만났던 다른 친구들에게처럼 다니는 학교는 어딘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동생 또는 형은 있는지를 물어 볼 수 있었을까? 내가 마음을 좀 열고 입을 연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왠지 그 대화 속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을 것 같다. 장애인 수용 시설이라는 벽의 존재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그를 처음부터 뿌리 없는 존재처럼 여기도록 만들고 있었다. 꽃동네 시설 생활 장애인 누구누구라는 호명은 그런 인상을 지워내기엔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다. 
 

유태인 강제수용소에서 겪었던 1년 동안의 경험을 전한 쁘리모 레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 장애인과 내가 나눴던 눈빛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 레비가 수용소에서 마주쳤던 독일인들의 시선이 바로 내가 그 장애인을 향해 던졌던 그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유태인이 던지는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인간으로서 레비는 절망했던 것이다. 아마 수용소에서 근무하던 독일인들에게 유태인의 질문에 대답하지 말라는 규칙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고, 유태인의 눈이 아니라 그 뒤의 벽을 쳐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던 것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장본인이자, 독을 풀어 페스트를 퍼뜨린 ‘범죄자’로 역사에 낙인 찍힌 ‘불결한’ 유태인들을 온전한 하나의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독일인들에겐 없었던 것이다.
 

레비의 글은 증언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실제로는 질문(또는 요구)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진술은 여지없는 질문이자 요구이다. “당시 우리를 박해했던 사람들은 이름도 얼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멀리 있었고, 눈으로 볼 수 없었으며, 접근할 수도 없었다. 나치스 체제는 용의주도하게 노예와 주인이 최소한의 접촉만 하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도 주인공인 필자와 SS와의 만남은 딱 한 번만 묘사되며 그것도 나치스 체제가 붕괴되고 수용소가 해체되던 그 마지막 며칠 사이에 일어났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쁘리모 레비, 「독자들의 물음에 답한다」中)
 

이런 고통스러운 고백 속에서 레비는 ‘이것이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가’라고 절규하며 좌절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그는 책 속에서 유태인을 박해했던 이들에 대해 온갖 저주를 퍼부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성과 토론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를 증오 앞에 놓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쓸 때 의도적으로, 희생자의 한탄 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날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들을 사용하고자 했다. 나는 내 언어가 객관적일수록,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을수록 신뢰를 주고 유용하게 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정당한 증언이 제 기능을 할 것이며 바로 그 때 심판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심판관은 바로 여러분이다.”(같은 글)
 

레비의 마지막 발언, ‘심판관은 바로 여러분이다’라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독자 개개인이 나름대로 객관적인 판단과 평가를 해보라는, 저자의 여유를 내비치는 말도 아니고 우리에게 선뜻 심판관의 자격을 부여해주는 선의의 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 스스로 심판관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라는 ‘요구’라고 생각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전범재판이 한국전쟁의 발발과 같은 급작스러운 사태로 인해 유야무야 흘러가고,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경제재건’이라는 미명하에 가해자들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복귀하는 것을 보면서 레비는 분노 속에서 다시금 온전한 심판이 이뤄지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심판관이 되기보다는, 태연히 심판관의 가면만을 훔쳐 쓰고 뻔뻔스럽게 공범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전후 수많은 독일 국민들은 아우슈비츠, 반유대주의와 같은 단어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이제 과거는 잊자고, 그런 기억들은 새로운 출발대 앞에 선 우리의 발목만을 잡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몇몇 사람들은 부정과의 투쟁에서 고통 받고 죽어간 수없는 독일인이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해내며 이 비극을 ‘독일인의 죄’로 이해하길 꺼려했다. 한나 아렌트도 『파리아로서의 유대인』에서 (독일인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수치스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많은 이들은 아렌트가 했던 이런 류의 말에 기대어 죄를 저지른 독일인과 자신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으려 했다. 그러나 서경식이 말하듯이 아렌트의 이 말은 누가 어떤 입장에서 말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망명 유대인인 아렌트가 “인간임을 수치스럽게 느낀다”고 말할 때, 만약 그녀 앞에서 어떤 독일인이 “그렇다, 당신 말 그대로다”라며 어깨 위의 짐을 벗고 떳떳해한다면, 그 광경은 그로테스크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는 개인으로서 ‘죄’가 없는 경우에도 자신이 독일인임을 수치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때야 비로소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일한 평면 위에서 서로 마주한 채 ‘인간’ 공통의 책임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서경식, 212쪽)
 

서경식이 강조한 것처럼, 우리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역(易)유토피아를 지상에 불러온 우리들의 ‘전통, 관습, 역사, 언어, 문화의 총체’를 우리 스스로가 피 흘릴 정도의 노력으로 해부하고 개조해가야 한다. 내가 그의 말처럼 ‘독일인’이라 하지 않고, ‘우리’라고 말하는 이유는 역(易)유토피아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레비는 이탈리아 국민으로 태어나 이탈리아적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으나, 어느 순간 사회의 ‘불순물’로 색출되어 영구 제거 대상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자기 내부에 외부자를 만들어 고립시키고 절멸하고자하는 욕구는 지금도 여전하다. 꽃동네에서 눈을 마주쳤던 나와 익명의 장애인도 그런 장벽 앞에서 머뭇거렸던 것이다. 그 머뭇거림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 나는 스스로 ‘한국인(또는 비장애인) 전체가 그를 이름 없는 존재로 몰아넣은 것도 아니고, 나는 그런 짓을 했던 이들과는 다르다’고 스스로를 위안해 왔던 것이다. 그런 무력한 눈빛의 관계 속에선 그도 나도 인‘간’(間)일 수 없었다. 
 

이 지점에서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절규 어린 질문에 머물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내려 분투한다. 파시즘이 레비를 이탈리아라는 국민성 외부로 쫓아내고 절멸시키려 했음에도, 그는 역설적으로 ‘야만적인 파시즘’에 대한 ‘문명적인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한다. 그는 아우슈비츠의 외국인 동료에게 단테의 [신곡]을 들려주다가 어떤 구절에서 기억이 떠오르질 않는다. 여기서 그는 오늘 이 구절을 그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수용소에서는 목숨과도 같은 죽 한 그릇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수용소의 다른 이들을 통해서도 더 이상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인간의 마지막 보루’를 확인한다. 수용소에서 만난 슈타인라우프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똑똑히 목격하기 위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한 문명의 골격, 골조, 틀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연히 비누가 없어도 얼굴을 씻고 윗도리로 몸을 말려야 한다. 우리가 신발을 검게 칠해야 하는 것은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존중과 청결함 때문이다. 우리는 나막신을 질질 끌지 말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걸어야 한다. 그것은 프로이센의 규율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레비, 57-8쪽)
 

그의 이런 시도와 발견은 기어이 다시 ‘국민’이라는 동일성의 내부자가 되겠다는 의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강제수용소의 지옥조차 소멸시킬 수 없었던 인간성에 대한 증언을 이탈리아인의 방식으로 해 낸 것이며, 이를 통해 근대의 보편적 인간상이자 유일하게 인권의 담지체가 된 ‘국민’ 범주 외부에서 인간의 척도를 다시 정의내리고 있는 것이다.(서경식, 156쪽 및 162쪽 참조) 마침내 그는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절규에서 ‘바로 이것이 인간이다’라는 외침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여전히 ‘문명과 야만’이라는 과학주의적 합리성의 이분법의 한계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한계의 극한에서 사고하고자 하는 위대한 시도의 일면을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다.
 

쁘리모 레비의 삶과 고민을 담은 책을 읽고 나니 김상봉이 서경식과의 대화 속에서 왜 그렇게 레비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지 알 것 같다. 그것은 단지 대화의 상대가 레비의 고민을 따라 인간의 척도를 고민하며 그의 묘지에 까지 다녀온 레비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이토록 극한의 자기상실을 경험한 레비가 던진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결국 그가 내놓은 ‘서로주체성’이라는 철학적 화두에도 온전한 답을 내릴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이라는 동일성에 스스로를 가두고 우리안의 외부자를 ‘타자’라는 변두리로 내모는 현실 속에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진정한 서로주체성의 형성은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심판관이 될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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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레디앙에 20대와 진보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양승훈의 블로그(http://flyinghendrix.net/684)에 가보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저항’에 어울리는 가요는 ‘록’보다는 ‘힙합’이고, 안치환이나 윤도현 같은 목소리를 참을 수 없다고 한다. 모종의 ‘진정성’을 요구하는 노래 형식과 목소리를 그는 거부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운동이 가지고 있던 남성 노동자 중심의 계급성을 진정성과 동일시하는 정서가 기존의 민중가요 속에 녹아들어 갔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의 취향은 그와 정 반대다. 남성 노동자 중심의 계급성을 요구하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보다 안치환과 윤도현의 노래가, 또 그보다는 정태춘과 윤선애의 노래가 레비처럼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절규,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인간이다’라는 외침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 저항의 형식과 재기발랄함, 전복성에서는 그가 좋아하는 그루브와 힙합이 더 나을 수 있지만, 대개 그런 노래들에는 인간의 자기상실에 대한 슬픔과 연민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적어도 저항의 노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아파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노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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