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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트로이카 -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8월
평점 :
트로이카.
러시아 말로 '삼두마차'라는 뜻이다.
세 마리의 말이 동시에 같은 힘으로 수레를 끌면서 가야하는 구조.
이것이 바로 이재유가 1930년대 경성 일대에서 노동운동을 이끌면서 만들어내고자 했던 이상적인 조직의 형태, 바로 '경성 트로이카'의 모습이다.
요새 어쩌다보니 해방전후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책 저책 뒤져보고 있던 차였는데,
안재성의 멋진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침 우리집에서 버스타고 10여분을 달리면 나오는 도서관에 이 책이 있었고, 나와 경성 트로이카의 만남은 이렇게 손끝의 파르르한 떨림을 느끼면서 시작되었다. ^^;; (이런 책을 가까운 공공 도서관에서 이리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어찌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사실 시립, 구립 도서관을 조금만 뒤져보면 이런 보물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실 나는 이 책 제목만 보고 이 책이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소설은 아니라도... 아, 그럼 이 책은 어떤 부류로 넣어야 하나?
단순한 역사책이라고 부르기에는 '역사책'이라는 말이 너무 투박하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핵심 인물로 다루고 있는 이재유라는 인물의 평전인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그에 대한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동덕여고 출신들의 운동사에 대한 이야기의 비중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 이 책은 남북한 어디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그래서 역사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굴의 투사들에 대한 정당한 기록, 바로 진정한 역사 다큐멘터리다. 특정인물에 대한 평전이 쉽게 범할 수 있는 영웅사관 따위와는 거리를 두면서도 그 당시 국내파 사회주의자들의 고뇌와 열정의 숨결들을 세심하게 포착해 낸, 역사실록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든 첫 번째 느낌은 무엇보다 경성 트로이카의 구성원들 모두 결과적으로 매우 불행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남한에서는 물론이고, 북한에서조차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현상, 김삼룡같이 남한 땅에서 죽임을 당해 북한에선 혁명열사로 추앙받게 된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이들이 지도했던 남로당도 북한 노동당에게는 외면을 당했고, 그렇게 염원하던 공산주의가 북한에서는 실제 너무나 강압적이고 연고주의의 고루한 것으로 서서히 드러나자 낙담하고 운동을 포기한 이들도 있고, 그 이전에 일본 경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트로이카의 우두머리 이재유 등이 있다.
나는 어쩌면 우리 현대사에서 이들의 존재가 잊혀진 것이 사회주의 운동의 크나큰 비극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재유를 비롯한 트로이카의 일원들은 철저하게 대중의 힘의 근거한 사회주의 운동을 도모했고, 현장에 기초하지 않은 어설픈 이론주의로 대중을 계몽하려 하지 않았다. 때론 이런 입장 때문에 국제선을 주장하는 다른 사회주의 그룹이었던 권영태 그룹과 마찰을 빚기도 했으며, 이재유는 아직 초기단계에 있는 경성의 노동운동을 지도해야 한다는 이유로, 원산으로 옮겨 이주하 등과 노동운동을 함께하라는 코민테른의 명령도 거절한다. 경성 트로이카는 그야말로 일제치하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자주파 사회주의자'들의 본거지였던 셈이다. 그에 비하면 사실 김일성 등이 말하는 '자주'는 얼마나 빈약하기 그지 없는가? 그는 압록강 인근에서 무장투쟁을 하다가 탄압이 심해지자 소련으로 쫓겨가 적군부대 밑에서 수십명의 유격대만을 거느리고 활동했을 뿐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소련의 지시에 따라 국내 여론을 무시한 채 진행된 신탁통치 지지운동은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국내 좌파세력의 괴멸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경성 트로이카의 주축 인물이었던 김상룡(당시 남로당 책임지도자)은 국내 인민의 여론을 감안하여 찬탁운동에 신중한 뜻을 내비쳤다.
그에 비하면 이재유의 트로이카는 아무리 심한 탄압에도 조선의 혁명은 국내 노동자 인민의 힘으로 이뤄야 한다는 일념으로 경성지역에서 연쇄총파업을 일으키는 등 엄청난 '자주적' 성과들을 만들어 냈다. 어쩌면 김일성 등의 해외파가 이재유 사후에 남은 국내파들을 압도한 것이 우리 역사의 엄청난 비극이지 않나 생각한다.
또한 이들은 사회주의는 철저히 대중운동에 기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권영태 그룹과의 통합논의 과정에서도 상부 단위의 음모적 논의를 통한 통합이 아니라, 공동의 대중투쟁 과정을 통한 사상적, 행동적 통일을 꾀했다.
2009년 벽두에 80년 전의 혁명가들의 족적을 따라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본 경찰의 미행을 피해 신출귀몰해대는 식민지 혁명가들의 장엄한 삶의 파노라마를 보면서 때론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들의 역사를 통해 다시 21세기 좌파의 새출발을 상상해 본다. 어차피 이젠 코민테른같은 국제적 지도부도 없다. 다시 이 땅에 진정한 '자주적 사회주의'가 꽃피울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트로이카의 마차를 끌 말들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