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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보헤미안 - ‘앙상블 디토’ 포토에세이
앙상블 디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서평으로 만나게 된 앙상블 디토.
4명의 아침을 맞는 순간부터의 일상들이 사진으로 담겨 있고,
목차에 따른 주제의 짧막한 글들이 에세이 형태로 실려 있다.
짧으면 몇 줄, 길면 1~2쪽을 차지하는 글 속에 개개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만나는 리차드 영재 오닐의 날카로움과 엉뚱함을 느끼며
페이지를 넘기기 위한 손가락을 열심히 놀렸다.
네구역으로 나뉜 각자의 페이지 안에는 독사진들이 담겨있는데,
멋쩍은 웃음을 꾹 참은 듯한 표정의 리차드 영재 오닐이,
마치 모르는 일행처럼 지나가는 사진이 참 재밌었다.
(혹시 이런 의도가 아니었다면 어쩌지?)
예술가는 생각도, 감정도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런 표현들은 탁!하고 떠오를 때도 있지만
이 부분을 이어,이어서 생각하다 나온 결과물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단어와 느낌을 주는 글이 읽으면서도 많이 탐이 났다.
생각이 많은 나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한 걸까 싶었다.
마치 빙의처럼 여러 사람이 작곡한 곡들의 의도를 음미하며
내 느낌을 골고루 섞는 쉽지 않은 노력만큼.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도 가득 담겨있었는데, 읽는 나조차도 그리움이 느껴지는 그 때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과거의 노을빛에 젖어들었다.
몇년 전,이라고 하면 바로 엊그제처럼 가까운 것 같지만 재개발 되어
허물어진 집들을 다시 볼 수 없는 만큼 세월만큼 멀게 느껴지는 옛 집.
열쇠가 없는 날이면 오래된 집에 어울리지 않게 회백색의 돌담위를 거니는 내 머리꼭지를
은행나무잎이 간질여주었던
동네 구석구석의 무수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과거에 연주했던, 좋아하는 곡에 대한 얘기를 하며 작곡가의 당시 일화들의
이야기 보따리도 조금 풀어주었는데
너무나 즐겁게 얘기한 그 곡들 모두 들어보고 싶었다.
cd에는 왜 그곡들이 실려있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랬다면 단순 클래식 서적이었겠지 싶었다.
듣는 건 좋아해도 곡과 제목을 매치시켜 기억해두는 저장고는 가지고 있지 않은 나여서
당연히 아는 곡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기대는 더욱 부풀어 오른다. 나중에 꼭 하나하나 찾아서 들어보리라는 숙제를
머릿속 한구석에 담아넣어두며 또 책장을 바삐 넘긴다.
에세이는 여름에 가장 어울리는 글이 아닌가 싶다.
큰 생각과 고민 없이, 저자가 주는 느낌을 고스란히 받아 느끼는 것으로
머리는 쉬고, 가슴을 대신 달리게 한다.
날이 더운 날도, 비가 주룩주룩 세차게 내리는 날도 잠시나마 잊으며
휴식을 취하게 해 주었던 '앙상블 디토'.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보다 여름에 도서 판매량이 더 많다고 하던데,
열대야에 잠 들지 않는 밤을 잠시 잊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책 뒤쪽에 곱게 넣어진 cd의 곡들을 듣다 보면 감성적인 여름밤으로]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샌타바버라의 새벽 바다는 아몬드 블루 빛을 지니고 있어. 아몬드 블루가 무슨 색인지 모르겠다고? 당연하지. 내가 이름 붙인 색이니까. 아몬드 블루는 새벽바다의 출렁이는 물결속에 태양이 섞여 있는 색이야.'
'예술은 줄지 않는 국 솥 같다. 언제든 누구든 퍼내기만 하면 된다. 예술에 대해 잘 몰라도 예술이 말하는 아름다움을 즐긴다면 충분하다.'
'드뷔시의 음악은 도도하지만 따뜻한 입매를 가진 그녀와 많이 닮았어.'
'대학교에 갓 입한학, 단정하게 빗어내린 검은 머리에 소박한 코트, 단화를 신고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내려오는 청순한 소녀가 걸어나올 것 같다.'
'겨울밤. 보랏빛 향기로 가득한 나의 연주가 잠들어 있는 내 어머니의 머리맡과 온 마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첼로는 긴 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부러질 듯 가냘프고 우아한 그 목에서 지상의 것들을 모두 감싸 안는 매혹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지난밤 달빛 사이로 나의진짜 그림자를 찾아냈어. 그 그림자 녀석은 나의 얼굴과 몸을 하고, 열심히 피아노를 두드리고 있더군!'
'그러나 한편으로 예술가는 죽는 날까지 끝없이 배우고 탐험해도 내일을 알 수 없어서 삶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