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냉철히 투영하고, 현재를 돌아볼수 있게 만드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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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는 곰브리치 세계사 1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이내금 옮김 / 자작나무(송학) / 2005년 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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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세계사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5년 3월
12,800원 → 11,520원(10%할인) / 마일리지 6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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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 문명과 문명의 대화, 개정판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1월
24,000원 → 21,6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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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지음, 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04년 11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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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만화를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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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시옷-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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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소년 뉴욕에 가다- 만화로 보는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외 지음, 천초영 옮김, 매튜 운터베르거 그림, 최성각 해설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5,000원 → 4,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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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초로 아저씨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기- 만화로 보는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역사
엘 피스곤 지음, 김명신 옮김 / 부광 / 2005년 1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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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스타- 이희재 단편집
이희재 지음 / 글논그림밭 / 2001년 7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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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이론과 실천
마이클 프리먼 지음, 김철효 옮김 / 아르케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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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 4분의 3정도 읽었는데요, 이렇게 좋은 책이 아직 리뷰가 없다는 사실에

괜히 분개하며...^^; 제가 몇자 적어봅니다.

인권 분야의 다른 책과 비교해보자면...

미셸린 이샤이 '세계인권사상사' vs 마이클 프리먼 '인권: 이론과 실천'

전자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고대에서부터 있어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각 문화권의 종교에 담겨있는 인권사상부터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각 시대별 인권사상들을 소개합니다. 인권담론 내부의 소리보다는 인권이란 무엇인가, 인권 사상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모습을 갖추어왔는가를 주로 알 수 있습니다.

후자는 인권이 2차대전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논의되어온 주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인권의 세부분야별로 학자들이 어떠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혹은 그들 논리의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주로 다룹니다.

저는 전자를 먼저 읽은 후 후자를 읽었는데 순서상으로 아주 좋았습니다. 먼저 개괄적으로 쫙 훑어주고, 안그래도 궁금했는데 다양한 인권이론들을 접하고 그것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알게 되니 비교적 정리도 잘 되는 것 같습니다.

두 책의 공통점은 번역이 아주 잘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번역이 엉망이면 읽을 맛이 떨어지는데 두 책은 짜증스러운 번역어투도 없고 문장도 간결해서 읽기에 좋습니다.

[인권: 이론과 실천] 중에서...

아쉬운 점 

여러 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한 사람의 이론만 집중적으로 나오는 데가 있습니다. 특히 4장 인권의 이론 부분은 도널리의 이론이 너무 많이 나와요. '차라리 이 부분은 도널리한테 쓰라고 하지'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저자가 사람인 이상 어느 부분에서 한 사람에게 치우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도널리가 인권학 내에서 학문적인 영향력이 엄청 큰 사람이라 그런건가, 싶은 의문도 드는데 그건 앞으로 인권공부를 더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요.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

서로다른 인권개념이 충돌하면 어떻게 하나, 궁금했었는데 그런 예가 생각보다 많더군요. 제가 궁금했던 건 사람들이 티벳사람들의 문화를 지켜줘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을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놔둬야 한다고 할 때 그 공동체 내에서 인권침해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어떡하나, 하는 거였어요. 소위 문화적 권리와 경제,여성의 권리가 충돌을 하게 되는 건데...책을 읽으면서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지금까지 절대선이라고 믿고 있던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저에게는) 신선한 접근도 좋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화상대주의란 자문화우월주의와 반대되며 타문화를 배려하는 매우 바람직한 사상이라고 배웠는데 이게 인권과 연결되니까 꼭 좋은것만도 아니네요. 이 책에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이 모든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인권침해를 인정하는 문화는 그것이 단지 문화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보편적 인권에 부합하지 않는문화가 어떤 측면에서는 가치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문화상대주의를 근거로 인권의 보편주의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인권을 지지하면서 이누건을 침해하는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문화 혹은 최소한 특정한 문화의 특정한 측면은 존중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

인권운동을 하거나 인권학을 공부하신 분들에게

인권운동 하시는 분들은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인권담론도 부재하고 인권에 관한 책도 너무 없다고 하시는데 저는 아직까지는 부족한 줄 모르고 사서 읽고 있습니다. 물론 얼마 안 가 한계를 느끼고 외국의 서적들을 기웃거리게 되겠지요? 인권학을 독학하면서, 출판계나 인터넷 서점에서 크게 입소문 나진 않았지만 정말 질 좋고 열심히 만든 흔적이 보이는 책들을 발견하면서 기분 좋았습니다. 그만큼 열정과 진정성을 가지고 연구하고 책을 쓰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책들 많이 읽고 언젠가는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저같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좋은 책 많이 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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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인터뷰 특강 시리즈 3
김동광, 정희진, 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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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이란 진실이 폭로되었을 때만 드러난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한 당사자이든 타인이든 거짓이 폭로되지 않으면 그것은 영원히 ‘진실’로만 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거짓말’에 관한 논의는 ‘진실을 폭로하는 자’들만이 할 수 있다.
내가 이 강의의 주제에 솔깃했던 것도 결국은 ‘진실의 폭로’에 있었다. 지식인으로서 사회의 진실을 바로보고 정의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면 지금까지 진지하고 대단해보였던 것들의 속내와 치부를 알게 되었을 때의 통쾌함과 재미는 솔직하고도 주된 이유였다.
우리는 연일 정보의 홍수 속에 묻혀 살고 있다.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 습관적으로 켜게 되는 정보(바보)상자인 텔레비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빼곡하게 올라와있는 기사와 광고들, 무료로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는 인터넷신문...... 이러한 매체들에서 수없이 많이 봐서 가장 잘 알 것 같은 분야는 뭘까? 그게 바로 이 강의의 주제들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와 북한, 남자, 인도, 한국사 등에 대한 정보를 우리는 매일 접하고 있다. 그러나 쏟아지는 정보가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고 있을까? 우리는 정말 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걸까?
정답은 ‘아니오’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잘 못 알고 있는가는 강사들이 ‘폭로’한다. 강사들의 말투와 강의 사이의 청중 웃음까지도 그대로 책에 옮겨놓았으니 혹시라도 지루할까 걱정 따위는 안 해도 된다. 구어체로 되어있으니 술술 읽히고 내용들도 신선해서 읽다보면 현장강의 때 말을 했던 속도보다 내가 더 빠르게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사람에 대한 거짓말
정혜신은 정신과의사다. 그래서일까. 작년에 참여연대에서 강의를 들었을 때 그가 쓴 칼럼들에 비해 의외로 말투가 조곤조곤하시고 얌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말 내가 환자라도 그에게 모든 것을 맘 편히 털어놓고 싶을 정도로. 이 강의를 읽으면서는 급기야 간접적으로 상담을 받고야 말았다.
황우석은 우리 국민은 물론 전 세계 과학계에 거짓말을 한 사람이다. 진실이 밝혀지고 나서 사람들이 했던 얘기는 ‘어떻게 속였을까’보다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였을 것이다. 그의 행동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이해가 안 가는 측면이 많다.
정혜신에 의하면 그는 나르시즘(자기도취, 자기애)이 강한 사람이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엔 도덕적이고 순결해보이지만 순간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며 조금이라도 공격을 받으면 바로 상대를 공격한다. 어떤 경우에도 문제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투사(投射,프로젝션)이 강한 사람이다.
이들이 가장 쉽게 희생양을 삼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사(인트로젝션)이 강한 사람. 투사가 강한 사람과는 반대로 이들은 부당한 대우도 지나치게 자기 탓으로 돌리고 화살이 오면 받아치지 못한다.
내사가 강한 사람, 이게 바로 나였다. 내가 이런 유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소득이었다. 이젠 너무 상처받지 말고 방어도 좀 해야지.
정말 그의 말 대로 ‘자기인식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 같다.

과학에 대한 거짓말
보통은 이러한 강의에 과학자나 과학사회학자가 오는 일이 드문데, 초청된 것은 당연히 황우석 때문이었을 것이다. 역시나 강의내용은 대부분 황우석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다음은 내가 궁금증들과 답.
-우리는 왜 속을 수밖에 없었을까?
스타과학자에게 속기 쉬운 여러 욕망이 우리사회에 있었고, 그걸 이용하려는 유무형의 권력, 이르나 기득권층의 움직임들이 공동으로 작용하면서 집단적 환각증세를 일으킨 것이다.
-외국에는 안 그러는 거 같은데 그런 것도 방지하지 못할 정도로 학계가 허술한가?
외국에서는 이미 그런 사건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노력이 많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사이언스’와 같은 외국잡지를 너무 맹신하는 경향이 있는데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인지도가 높지도 않으며 미국 내에서 연구규제를 완화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도 무시할 수 없다.
역시 전문가가 오니까 답이 명쾌해서 좋다.

한국사의 거짓말을 논쟁하다
한홍구의 이야기에 박노자가 질문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방식이었다. 한국 고대사에서 단군을 정말 한국인으로 봐야 하는가, 역사는 왜 이렇게 정치인들과 장군들 중심으로 서술되는가, 박정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비교적 많이 접했던 이야기라 그런지 특별하다기보단 그들이 가진 한국사 지식들을 좍 풀어놓는 느낌이다. 워낙 많은 역사내용들이 나와서 이 책 중에서 가장 빡빡하다.

거짓말 권하는 사회
헌법의 풍경을 읽으면서 김두식의 글 안에서 법조인으로서의 어떤 자부심(혹은 자만심)이나 특권의식이 없다는 것과 그가 매우 평이하고 편안하게 글을 풀어가는 것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정직하고 곧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고민하는 삶의 자세도 좋았다. 강연에서도 역시 그런 모습이다. 억지 결론을 도출하거나 어떤 사명의식에 불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건 금방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고 강의 내용도 우리 생활과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라 부담 없이 읽혔다. ‘한홍구·박노자’에서 느꼈던 약간의 긴장이 일시에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주로 자신의 분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던 것에 비해 김두식은 전체 사회와 학계의 거짓말을 주로 다뤘다. 가장 ‘일반적인’ 거짓말 강의인 셈이다.

북한에 대한 거짓말
김형덕은 북한출신이다. 요즘 신조어로는 ‘새터민’이고 과거에는 탈북자로 불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평남 속도전’출신이다. 속도전이 뭐지? 혹시 과격한 북한찬양자였던 거 아냐? 황장엽처럼 권력의 중심에 있다가 완전히 돌아섰거나 먹고 살 길 찾다보니 보수교회에서 간증하는 걸 직업으로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평남속도전은 내게 그런 혐의를 풍겼다.
속도전 돌격대는 군대 대신 가는 곳으로 국가의 주요 건설정책을 집행하는 일을 한다. 김형덕은 거기 가서 열심히 하면 대학 보내준다는 말에 지원했다가 출신성분과 배경이 좋지 않아 대학을 가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에서, 중국에서, 베트남에서 수감되었다가 모두 탈옥하고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남한에서 결국 자본주의 사회를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경영학을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실제 강의를 들으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책으로 읽으니 중간중간 논리의 허점이 보인다. 그러나 그가 학자가 아니므로 오히려 그 말들이 솔직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나는 국가보안법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지만, 북한에 있는 형제를 만나러 북으로 밀항했을 때 보안법 위반으로 걸린 것이 그렇게 억울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그는 형제 만나러 가도 보안법 위반이라니 우스운 나라라고 한다. 아무리 형제가 만나고 싶어도 탈북자가 북으로 밀항을 하다니 몇 번이나 탈옥을 감행하고 성공한 그 답다는 생각이 든다.
김형덕은 주로 우리의 한쪽으로 치우쳐진 시각에 대해 지적하였다. 북한이 출신성분에 따라 차별대우 하는 것은 남한으로 말하면 돈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남자'의 거짓말과 말의 권력관계
나에게 정희진 강의의 가장 큰 장점은 여성학에 대해 좀 잘난 척 해줄 수 있게 만들어주는 데에 있지 않다. 전에도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일상적이고 사소한 표현들 안에 숨어있는 정치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나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사물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준다.
현실과 갈등하지 않고, 투쟁하지 않고,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참 세상 살기 편하겠다. 나는 자꾸 문제점만 보이고 현실에 고민할 것 투성이인데.’
그러나 정희진에 의하면 그들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자기를 일치시키기 때문에 의견이 없을 수 밖에 없고, 감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감정적’이라는 말은 ‘정치의식이 있다’는 말과 동의어다.

인도에 대한 거짓말
프라풀 비드와이는 인도에서 온 세계적인 평화전도사다. 그가 말하는 인도에 대한 거짓말은 두 가지. ‘현자의 신화, 경제대국의 신화’ 하긴 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했다. 인도엔 정말 영적인 사람들만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IT산업만으로 경제가 그렇게 빨리 성장하나? 프라풀 비드와이는 이런 대조적인 듯 보이는 두 가지 거짓말과 인도의 핵과 인도사회의 모순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이 사회의 거짓말이란 바로 ‘부조리’다. 가만히 따져보면 거짓인 게 틀림없는데 사람들은 왜 그냥 그렇게 살고 있을까?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의 권위가 두려워서, 먹고 살기 바빠 거기까지 헤아릴 시간이 없어서 사람들은 기득권층의 거짓말에 속고 산다. 마치 원래부터 그들의 말이 ‘참’이었던 것처럼. 그래서 이런 ‘폭로’가 필요하다. 거짓말은 폭로하는 자 없이는 진실인 척 남아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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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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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고 나서 버릇처럼 입에 붙은 말이 있다.

“진부해..”

요즘처럼 감성이 예민해진 때에는 접하는 작품마다 엄청나게 영향을 받아서, 나도 어느 정도 ‘문유정화’되었나 보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전근대적인 사고방식’ 또는 ‘비상식적인 정치인들’ 대신에 ‘진부해’라는 한마디로 표현을 끝내는 일이 잦다.

 

소설에서 문유정은 맞선자리에서 만난 남자의 ‘진부한’ 과거를 듣고 가족의 원성을 들으며 파혼하고, ‘진부하게도’ 정윤수가 끝까지 증오를 품지 않고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한 것에 냉소를 보낸다.

그녀에겐 세상이 진부한 것 투성이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매일 아침이 두렵다. 그러나 문유정이 느끼던 세상의 다양한 진부함 중 정윤수는 달랐다. 그녀는 갓 태어난 어린 새처럼 진부함의 틀을 깨고 나온 정윤수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정윤수 역시 ‘회개하면 구원받는다. 눈물로써 회개하라’는 암묵적 메시지조차 달지 않은 채 오히려 ‘손해보는 거 싫거든요. 이젠 제 얘기도 들어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문유정의 당돌함에 뒤통수를 맞은 듯 그녀를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목요일 10시부터 1시까지의 시간을 일주일동안 기다린다.

진부함의 반대말이라면 참신함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면하고, 기꺼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용서를 실천하고, 이어 참사람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어린아이처럼 배워나갔던 두 사람의 화학작용은 ‘기적’이라 불러야 옳다. 

 

교도소의 천주교 만남의 방에는 탕자가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무릎을 꿇고 눈물로 용서를 비는 그림이 걸려있다. 마치 죄인은 세상 끝날까지 눈물로 용서만 빌어야 한다고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이후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벌었다는 사실을 그 그림을 본 수감자 중 몇 명이나 알고 있었을까.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비는 그 모습은 마치 비수감자들(일반인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에게 수감자들이 무조건 싹싹 빌어야 한다는 메시지처럼 얼마나 오해하기가 쉬운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아름다워야 할 젊은 생을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만 살아왔던 두 사람이 그걸 깨닫는 것은 유대인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눈꺼풀이 벗겨지고 새사람 된 것에 비견될 만하다 하겠다. 바울이 그 이후 자기의 생명을 내어놓고 예수의 도를 전했던 것과 같이 그들은 ‘자살’과 ‘사형’ 이라는 기이한 죽음의 형식 앞에서 뒤늦게 아름다운 생을 꿈꾸었다.

나 역시 건강이 무너졌을 때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어 겨우 걸음을 떼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내가 가장 미워했던 사람은 ‘요즘은 우울해’‘살 빼야 되는데’라고 말하는 여대생들이었다. 그때 내가 좀더 공격적이고 혈기왕성했다면 나 역시 그들에게 욕설이라도 퍼부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인데, 평범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만 있어도 평생 감사하며 살 것 같은데 우울하다니. 살을 뺀다니. (이런 걸 생각하면 내가 정윤수의 내면보다 크게 잘난 것도 없다)

 

그들의 고민도 그들 삶에서는 우주처럼 크고 무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정윤수가 문유정을 이해하는 방식 또한 그랬을 것이다. 병원과 대학을 거느린 이사장 집안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라 대학시절엔 가수로서 유명인사가 되는 행운을 누리고 현재는 대학교수로 살고 있는 그녀에게 부족한 게 뭐가 있을까. 그러나 문유정의 상처와 고독도 자신의 고통보다 결코 가벼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음을 정윤수는 얻게 된다. 그저 온 마음을 다해 문유정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피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정윤수 처럼 고생하면서 살아온 아이는 내 주위엔 없으니까 어쩔 수 없고, 삼촌의 짓궂은 장난 때문에 울었다는 말을 믿고 관심을 닫아버리면 타인의 아픔은 결코 알 수가 없다.

 

혹시 이거 ‘엄마 없는 하늘아래’류의 신파극 아냐, 하고 이 책을 피하려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네티즌들이여, ‘안심해~’ (사모님버전)

눈물을 짜기 위한 장치는 이 소설 안에는 없다. 오히려 소설은 감정을 하나하나 짚어내기보다 상황을 설명하고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서술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저 상황을 서술하였을 뿐인데 우리는 감동을 받고 울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

이상한 사람,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버리고 말았으니.

 

l이들을 알게 된 이상, 우리는 그저 ‘사형제폐지론’으로 옮기는 수준으로 끝내선 안 된다. 아파트촌과 키 높은 빌딩들이 즐비한 도시의 어두운 곳에서 눈물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어딘지 모르게 사회를 겉돌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자. 지금 바로 어떤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파렴치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것, 사람을 포기해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을 읽고 소위 ‘은혜’를 받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실천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정윤수와 문유정이 내내 고민하고 끝내는 이뤄냈던 ‘용서’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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