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인터뷰 특강 시리즈 3
김동광, 정희진, 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거짓이란 진실이 폭로되었을 때만 드러난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한 당사자이든 타인이든 거짓이 폭로되지 않으면 그것은 영원히 ‘진실’로만 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거짓말’에 관한 논의는 ‘진실을 폭로하는 자’들만이 할 수 있다.
내가 이 강의의 주제에 솔깃했던 것도 결국은 ‘진실의 폭로’에 있었다. 지식인으로서 사회의 진실을 바로보고 정의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면 지금까지 진지하고 대단해보였던 것들의 속내와 치부를 알게 되었을 때의 통쾌함과 재미는 솔직하고도 주된 이유였다.
우리는 연일 정보의 홍수 속에 묻혀 살고 있다.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 습관적으로 켜게 되는 정보(바보)상자인 텔레비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빼곡하게 올라와있는 기사와 광고들, 무료로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는 인터넷신문...... 이러한 매체들에서 수없이 많이 봐서 가장 잘 알 것 같은 분야는 뭘까? 그게 바로 이 강의의 주제들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와 북한, 남자, 인도, 한국사 등에 대한 정보를 우리는 매일 접하고 있다. 그러나 쏟아지는 정보가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고 있을까? 우리는 정말 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걸까?
정답은 ‘아니오’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잘 못 알고 있는가는 강사들이 ‘폭로’한다. 강사들의 말투와 강의 사이의 청중 웃음까지도 그대로 책에 옮겨놓았으니 혹시라도 지루할까 걱정 따위는 안 해도 된다. 구어체로 되어있으니 술술 읽히고 내용들도 신선해서 읽다보면 현장강의 때 말을 했던 속도보다 내가 더 빠르게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사람에 대한 거짓말
정혜신은 정신과의사다. 그래서일까. 작년에 참여연대에서 강의를 들었을 때 그가 쓴 칼럼들에 비해 의외로 말투가 조곤조곤하시고 얌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말 내가 환자라도 그에게 모든 것을 맘 편히 털어놓고 싶을 정도로. 이 강의를 읽으면서는 급기야 간접적으로 상담을 받고야 말았다.
황우석은 우리 국민은 물론 전 세계 과학계에 거짓말을 한 사람이다. 진실이 밝혀지고 나서 사람들이 했던 얘기는 ‘어떻게 속였을까’보다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였을 것이다. 그의 행동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이해가 안 가는 측면이 많다.
정혜신에 의하면 그는 나르시즘(자기도취, 자기애)이 강한 사람이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엔 도덕적이고 순결해보이지만 순간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며 조금이라도 공격을 받으면 바로 상대를 공격한다. 어떤 경우에도 문제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투사(投射,프로젝션)이 강한 사람이다.
이들이 가장 쉽게 희생양을 삼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사(인트로젝션)이 강한 사람. 투사가 강한 사람과는 반대로 이들은 부당한 대우도 지나치게 자기 탓으로 돌리고 화살이 오면 받아치지 못한다.
내사가 강한 사람, 이게 바로 나였다. 내가 이런 유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소득이었다. 이젠 너무 상처받지 말고 방어도 좀 해야지.
정말 그의 말 대로 ‘자기인식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 같다.

과학에 대한 거짓말
보통은 이러한 강의에 과학자나 과학사회학자가 오는 일이 드문데, 초청된 것은 당연히 황우석 때문이었을 것이다. 역시나 강의내용은 대부분 황우석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다음은 내가 궁금증들과 답.
-우리는 왜 속을 수밖에 없었을까?
스타과학자에게 속기 쉬운 여러 욕망이 우리사회에 있었고, 그걸 이용하려는 유무형의 권력, 이르나 기득권층의 움직임들이 공동으로 작용하면서 집단적 환각증세를 일으킨 것이다.
-외국에는 안 그러는 거 같은데 그런 것도 방지하지 못할 정도로 학계가 허술한가?
외국에서는 이미 그런 사건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노력이 많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사이언스’와 같은 외국잡지를 너무 맹신하는 경향이 있는데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인지도가 높지도 않으며 미국 내에서 연구규제를 완화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도 무시할 수 없다.
역시 전문가가 오니까 답이 명쾌해서 좋다.

한국사의 거짓말을 논쟁하다
한홍구의 이야기에 박노자가 질문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방식이었다. 한국 고대사에서 단군을 정말 한국인으로 봐야 하는가, 역사는 왜 이렇게 정치인들과 장군들 중심으로 서술되는가, 박정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비교적 많이 접했던 이야기라 그런지 특별하다기보단 그들이 가진 한국사 지식들을 좍 풀어놓는 느낌이다. 워낙 많은 역사내용들이 나와서 이 책 중에서 가장 빡빡하다.

거짓말 권하는 사회
헌법의 풍경을 읽으면서 김두식의 글 안에서 법조인으로서의 어떤 자부심(혹은 자만심)이나 특권의식이 없다는 것과 그가 매우 평이하고 편안하게 글을 풀어가는 것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정직하고 곧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고민하는 삶의 자세도 좋았다. 강연에서도 역시 그런 모습이다. 억지 결론을 도출하거나 어떤 사명의식에 불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건 금방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고 강의 내용도 우리 생활과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라 부담 없이 읽혔다. ‘한홍구·박노자’에서 느꼈던 약간의 긴장이 일시에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주로 자신의 분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던 것에 비해 김두식은 전체 사회와 학계의 거짓말을 주로 다뤘다. 가장 ‘일반적인’ 거짓말 강의인 셈이다.

북한에 대한 거짓말
김형덕은 북한출신이다. 요즘 신조어로는 ‘새터민’이고 과거에는 탈북자로 불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평남 속도전’출신이다. 속도전이 뭐지? 혹시 과격한 북한찬양자였던 거 아냐? 황장엽처럼 권력의 중심에 있다가 완전히 돌아섰거나 먹고 살 길 찾다보니 보수교회에서 간증하는 걸 직업으로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평남속도전은 내게 그런 혐의를 풍겼다.
속도전 돌격대는 군대 대신 가는 곳으로 국가의 주요 건설정책을 집행하는 일을 한다. 김형덕은 거기 가서 열심히 하면 대학 보내준다는 말에 지원했다가 출신성분과 배경이 좋지 않아 대학을 가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에서, 중국에서, 베트남에서 수감되었다가 모두 탈옥하고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남한에서 결국 자본주의 사회를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경영학을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실제 강의를 들으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책으로 읽으니 중간중간 논리의 허점이 보인다. 그러나 그가 학자가 아니므로 오히려 그 말들이 솔직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나는 국가보안법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지만, 북한에 있는 형제를 만나러 북으로 밀항했을 때 보안법 위반으로 걸린 것이 그렇게 억울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그는 형제 만나러 가도 보안법 위반이라니 우스운 나라라고 한다. 아무리 형제가 만나고 싶어도 탈북자가 북으로 밀항을 하다니 몇 번이나 탈옥을 감행하고 성공한 그 답다는 생각이 든다.
김형덕은 주로 우리의 한쪽으로 치우쳐진 시각에 대해 지적하였다. 북한이 출신성분에 따라 차별대우 하는 것은 남한으로 말하면 돈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남자'의 거짓말과 말의 권력관계
나에게 정희진 강의의 가장 큰 장점은 여성학에 대해 좀 잘난 척 해줄 수 있게 만들어주는 데에 있지 않다. 전에도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일상적이고 사소한 표현들 안에 숨어있는 정치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나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사물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준다.
현실과 갈등하지 않고, 투쟁하지 않고,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참 세상 살기 편하겠다. 나는 자꾸 문제점만 보이고 현실에 고민할 것 투성이인데.’
그러나 정희진에 의하면 그들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자기를 일치시키기 때문에 의견이 없을 수 밖에 없고, 감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감정적’이라는 말은 ‘정치의식이 있다’는 말과 동의어다.

인도에 대한 거짓말
프라풀 비드와이는 인도에서 온 세계적인 평화전도사다. 그가 말하는 인도에 대한 거짓말은 두 가지. ‘현자의 신화, 경제대국의 신화’ 하긴 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했다. 인도엔 정말 영적인 사람들만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IT산업만으로 경제가 그렇게 빨리 성장하나? 프라풀 비드와이는 이런 대조적인 듯 보이는 두 가지 거짓말과 인도의 핵과 인도사회의 모순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이 사회의 거짓말이란 바로 ‘부조리’다. 가만히 따져보면 거짓인 게 틀림없는데 사람들은 왜 그냥 그렇게 살고 있을까?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의 권위가 두려워서, 먹고 살기 바빠 거기까지 헤아릴 시간이 없어서 사람들은 기득권층의 거짓말에 속고 산다. 마치 원래부터 그들의 말이 ‘참’이었던 것처럼. 그래서 이런 ‘폭로’가 필요하다. 거짓말은 폭로하는 자 없이는 진실인 척 남아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