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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ㅣ 당비의생각 3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지음 / 산책자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다음의 글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 나오는 여러편의 글 중 한 편에 대해서만 읽은 소감을 쓴 것이다. 별 넷은 책 전체에 대한 평가다. 필자들의 글의 수준이 들쭉날쭉해서 별 하나 뺐다.
‘애도와 민주주의: 포스트-노무현 시대의 기억 문화를 위하여‘(전진성)는 첫 문장에서 우선 역사상 한 시대를 일개인의 이름으로, 그것도 국가 최고 통치자의 이름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낡아빠진 역사인식이라고 말하며, 주인공만 볼 것이 아니라 무대 뒤의 각본과 연출자, 스태프 간의 조정과 갈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후부터 끝까지 그의 글에서 각본과 연출자, 스태프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노무현만 본다.
그에게 인권을 위해 싸웠던 정치인 노무현과 국가수반으로서 대통령 노무현 사이의 괴리는 없다. 노무현의 2002년의 시대정신이 ‘변절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개인적 자아의 분열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오로지 그가 맡은 직무상 차이에서 비롯된다.(p175)
노무현 대변인스러운 이 생각은 그가 첫 문장에서 자신 있게 소개한 ‘신식’ 역사개념과는 달리 국가의 역할에 매우 ‘낡아빠진’ 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는 국익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더 높은 위상,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타국과 경쟁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하게 ‘합법적 폭력’에 호소한다고 말한다.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노선이 정말로 국익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신념이 있었다면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과거 운동권 출신으로 조국의 발전상을 보고 뉴라이트로 전향한 사람들은 ‘그들이 젊을을 불태우며 열망했던 바가 겨우 그런 것이었는지 ’참으로 씁쓸하다‘고 말한다. 노무현은 대통령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자유주의 노선을 택하고 2002년의 시대정신과는 멀어진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과거 운동권 출신 중 일부는 그러한 명분으로 뉴라이트로 전향하면 안 되는 건가? 그는 국가(혹은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 이기적인 존재이고 시민사회는 이상주의자라는 이분법적 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논리정연하게 이어지는 글이 아니라 맥을 잡기가 쉽지는 않으나 면면에 흐르는 행간을 읽으면 그렇다.
그는 국가의 개념에 ‘낡아빠진’ 잣대를 대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은 더욱 당황스럽다. ‘필자는 민주주의가 모든 사회적, 정치적 진보의 궁극적 목표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걸기에는 너무나 두루뭉실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p178) 민주주의는 각 진영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고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호소하기에 두루뭉실하고, 그러므로 국가권력의 전횡 및 시민사회 내부의 불의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가능성은 항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은 이 앞 문장에서 밑줄 친 부분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눈치 챘겠지만 사실 그는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글 속에서 명확하게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시민사회를 노무현 정부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확실하다.
‘참여’정부는 분명 국가의 불필요한 개입을 자제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론장을 마련하고자 부심했지만, 국익이나 사익은 앞세우면서 공익은 뒷전인 한국식 시민사회에 휘둘려 어정쩡하게 대응하는 가운데 좌초하고 말았다. (p179)
‘노무현의 희생’으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국가가 적극 나서 비주류의 이견이 존중받는 공론장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쎄, 이건 글의 초반부에 그가 얘기하던 국가의 역할과는 많이 다른데.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어떤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나는 그의 글을 끝까지 열심히 읽으면서도 결코 파악하지 못했다. 국가가 나서서 낙후된 농가를 개발해주는 새마을 운동 같은 걸 바라는 것일까?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글의 면면에 흐르는,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2페이지 이상 온전히 할애된 노무현에 대한 그의 평가를 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가 지금까지 왜 이렇게 노무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위해 이런저런 짜맞추기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기술한 내용으로도 그가 어떤 평가를 내렸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것이리라.)
그는 노빠진영의 X맨이 틀림없다. 구구절절 노 정부와 노무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무마하려 노력했지만 이걸 읽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기니 말이다. 아무리 국가는 악한 존재고 노무현은 그런 국가라는 존재를 이끄는 대통령이라 해도 정치인으로서 그의 임기 기간 내에 죽어갔던 억울한 죽음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순 없다. 백번 양보해서 아무리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개념이 ‘두루뭉실’한 개념이라고 해도 국민이 주인이 되는 개념과 경제 자체가 아닌 사람을 위하는 개념이 서 있는 인물이라면 뻔뻔하게 모른 체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노무현도 그렇게는 말 안할거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회적, 정치적 진보의 궁극적 목표, 맞다. 그는 노무현을 옹호하기 위해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건 노무현 본인이 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