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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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어령 선생님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중 하나로 '너 어디로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소리'이다. 부제처럼 이 책은 이어령 선생님의 어린시절 에세이 또는 자서전의 색깔이 강한 책이었다.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중 가장 이어령 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유추해볼 수 있는 일화들이 많이 담겨 있어서 재밌었다. 이어령 선생님은 1933년생으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소학교까지 다녔기 때문에 식민지 교실에서 있었던 여러 부당하고 서글픈 일화들과 여러 소재들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읽으면서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많이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1928년생으로 이어령 선생님처럼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여자지만 외증조부의 교육열로 소학교까지 다니시고, 평생을 촌부로 살다가 돌아가셨지만,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시고 일본 동요를 곧 잘 부르셨다. 팔십이 넘으셔서까지 어린 시절에 배운 외국 동요가 어떻게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을까 매번 궁금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어령 선생님이 책을 집필하시는 과정에서 물론 자료 조사를 하셨겠지만, 아마도 이 책에 실린 일본 동요 대부분은 이어령 선생님이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처럼 줄줄 외우고 계셨을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일제강점기, 625전쟁과 거리가 먼 세대다 보니, 학창시절 역사시간과 다양한 매체들을 통하여 그 시대를 짐작할뿐이다. 하지만 어떠한 매체보다 이 책이 진정성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할머니와 함께 잠들던 어린 시절, 할머니는 본인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곧잘 해주셨고, 우리나라 전래동화뿐만 아니라 일본 민담들도 즐겨 이야기해주셨다. 

(나이가 들어서 우리나라 전래동화, 민담 책들을 많이 찾아 읽어봤지만, 할머니가 이야기 해주셨던 기이한 이야기들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민담 또는 괴담 쪽에 가깝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

자기 연민보다는 담백하게 그 당시에 본인이 겪었던 일화와 그 소재를 통하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어, 오히려 그게 더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단순히 식민지 시대의 일화만을 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어령 선생님 특유의 확장되는 글쓰기를 통해서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예를 들어 '학교'란 말이 옛날 맹자에 나오는 말이며, 영어의 학교 '스쿨'(School)은 고대 희랍어의 '스콜레'에서 나온말이며 그 뜻은 '여가' 즉 '논다'는 뜻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또한 태초의 인간들이 무얼 보관하거나 옮길 때 나뭇잎으로 싸거나 나뭇등걸안에 넣는데, 싸는 쪽이 아시아형 보자기 문화고, 나뭇등걸을 파고 넣는 것이 서양형 가방문화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 게타는 한국의 짚신처럼 오른발 왼발을 가리지 않고 어느 발에나 신을 수 있도록 한가운데 구멍을 뚤ㅀ어 좌우 개념을 하나로 어우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서양의 구두와 달리 한국인들은 좌우가 없는 융통성과 신축성이 있는 신발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반도적 특성이다. 이 정신은 일본 문화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이웃나라인 한국과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보면 이해가 충돌하는 적국이지만 지리문화적 소통관계를 통해서 보면 이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보자기형 짚신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제(篩弟)요 친구다. 그러고 보면 한국과 일본의 보자기 문화, 짚신 문화를 죽인 것은 다름이 아닌 일본의 군국주의 군화였다.

너 어디로 가니 p.183

이어령 선생님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중 가장 배운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알찬 구성은 '젓가락 문화유전자 : 너누구니?'였고, 안읽혀서 겨우 읽은 책은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 : 너 어떻게 살래?'였다. 이 책은 내가 읽어본 이어령 선생님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중 가장 수월하게 읽히면서 가장 마음이 가는 책이었다. 성인 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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