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혜수가, 프랑스산 버터가 듬뿍 들어간 쿠키와 졸깃한 생초콜릿을 먹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괜찮은 물품들을 누리는 것을 보면, 정원은 자기 안에 어딘가 뻥 뚫려 있는 구멍이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거 사구고 보여주고 먹여주는 놈이랑만 만나. 너 돈 쓰게 하잖아? 바로 걷어차."
"받기만 하라고요?"
"여자는 받는 거야."
"에이, 그런게 어딨어요."
웃는 혜수에게 정원은 백 퍼센트 캐시미어 코트가 담긴 상자를 내밀었다. 조명이 부드럽게 흐를 정도의 윤기를 반사하는 코트를 만져보는 혜수에게 정원은 말했다.
"근데 너 결혼 안 하냐?"
"저 아직 스물일곱이에요. 너무 마음이 급하신 거 아닌가요?"
"서른 되기 전에 결혼해서 애 낳아. 내가 혼인성사랑 유아세례도 해주고 묵주팔찌도 사줄게. 셋 이상 낳아도 다 사줄게"
"결혼은 그다지..."
"뭐? 여자는 잘난 남자 만나 결혼해 애 낳고 사랑받으며 남자 그늘 안에서 사는 게 최그의 행복이라고."
"요즘 그런 말씀하시면 다 별로라고 생각하는 거 아세요?"
"결혼해라. 네 애는 정말 예쁠거야."
웃어 넘기는 혜수를 보며 정원이 묵주를 만지막거렸다. 알고 있다. 내 이기심이란 걸. 그렇다 하더라도.
혜수만은 정원 자신과 다른 세상에서 살았으면 했다. 사랑하는 이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세상과 겹쳐지는 삶. 정원에게 있어서 혜수는 그가 갔을 수도 있는, 아니 가고 싶었던 미래이기도 했다. 혜수가 좋은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멀쩍이서,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만 기웃대며 혼자 흐뭇해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베투는 것도 결국은 저 스스로 마음 편하고자 하는 것 아닐까. 돌아올 걸 바란적은 없으나, 혼자만의 자선이라 자족하는 것 또한 실은 이기심이 아닐까.
검은 옷의 남자와 그가 주운 고양이 p.7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