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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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리를 구원하는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지 한참 되었다. 더 이상 연애 소설이나 드라마를 봐도 떨리지 않게 된 건 내 속에 연애 세포가 다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러기엔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이 알기 때문이다.'

비비언 고닉은 11개의 챕터 안에 무려 58개의 소설 속 연애를 언급하며, 사랑을 했던 안했건 한다고 믿었건 여자들이 결국 택한 결혼으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happily ever after)라는 결말은 없었음을 조목조목 밝힌다. 재판정 변호사 같은 정교한 해설 덕에 소설 속 주인공들과 그들을 만든 작가마저 고닉 앞에 다소곳이 무릎에 손을 올리고 나처럼 경청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여야 할 것만 같다.

너무 오랫동안 사회가 믿어온 관념은 우리 유전자에 박혀 당연하게 여기게 한다. 그러나 이젠 그 유전자를 가지고 있더라도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한다. 자기 삶은 자신이 꾸려야 한다는 걸. 고닉이 든 사례 중 인상적이었던 건 한나 아렌트다. 아렌트는 자신의 모순을 합리화하려 했다. 그 때문에 내적 갈등을 직시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고, 나치에 협력한 하이데거를 택하면서도 자신을 정당화하는 과오를 범했다. 그토록 명민한 사유의 소유자마저 사랑 앞에서는 자신을 속였던 것이다.

사랑, 연애, 결혼은 내 삶의 과정이며 환경의 변화이리라. 나에게 많은 걸 경험하고 사유하게 하는 자리이리라.

최근 인기리에 방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모자무싸)에는 끌리는 남녀도 나오고 결혼한 커플도 나오지만, 드라마 전체에서 그들의 사랑엔 행위보다 결의, 공감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 사랑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싫든 좋든 인간은 홀로 노력해야 한다. 사랑이 대신 해주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 '연애 소설의 종말'은 마지막 챕터의 제목이기도 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마지막 챕터부터 읽고 나서 첫 챕터를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건 앞에서부터 다 읽고 난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 사랑에 대해서도 우린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사유를 담아 작성했습니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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