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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평점 :
황석영의 할매는 인간의 시간을 넘어선 생명의 서사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장편소설이다.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개똥지빠귀의 죽음에서 시작해 600년을 살아온 팽나무 ‘할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역사가 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쌓이며 이어진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몽각, 고창댁, 유분도, 배경순 등 이름 없는 민초들의 삶은 팽나무의 나이테처럼 한 시대씩 더해지며, 개인의 고통과 희망이 어떻게 공동의 기억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새만금 간척사업을 거치며 훼손되는 자연의 모습은 인간 중심의 문명이 남긴 상처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순환한다는 생태적·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사라짐 이후에도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을 담담히 그려낸다.
할매는 한 그루 나무를 통해 우리가 잠시 머무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는 동시에, 잃어버린 근원과 기억을 되찾게 하는 깊고 묵직한 위로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