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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잊히고 지워졌던 목소리들을 문학의 힘으로 다시 불러낸다.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를 다룬 이후, 한강은 또다시 학살과 상처의 땅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이번에는 그 상처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은 자들의 숨결에 집중한다. 소설 속 주인공 경하는 역사 다큐멘터리스트 친구 인선의 부름을 받고 제주로 향하며, 눈보라 속을 헤치고 과거로, 그리고 고통의 근원으로 다가선다.
작품의 문장은 여전히 한강 특유의 시적이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눈이라는 소재는 소설 전반에 걸쳐 상징적으로 배치되어, 차가운 죽음과 동시에 부드럽고 포근한 생명력을 동시에 상기시킨다. 한강은 이중성을 지닌 이미지로 폭력과 사랑, 절망과 희망을 교차시킨다. 특히 "눈송이는 녹지 않는다"는 문장은 죽은 자들의 고통과 그것을 기억하는 자들의 책무를 깊게 각인시킨다.
그러나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지 역사적 증언에 머물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그들의 불완전한 화해의 과정에 주목함으로써 이 소설은 인간 존재의 존엄성과 회복 가능성을 탐색한다. 인선과 경하의 관계는 단순한 동료애를 넘어, 시대의 폭력에 맞선 연대의 상징으로 읽힌다.
읽는 내내 이 작품은 독자에게 묻는다.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비극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작별하지 않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한강은 그 대답을 서둘러 내놓지 않는다. 대신, 얼어붙은 눈밭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말을 잇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대신한다. "작별하지 않는다" 는 무겁고 고통스럽지만, 그래서 더욱 필요한 책이다. 이 작품을 통해 한강은 다시 한번 한국문학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 책임과 예술적 정점에 다다랐다.
이 소설은 독자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쉽사리 작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