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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놀라게 하라 - 삶으로 전도하는 크리스천의 다섯 가지 생활 습관
마이클 프로스트 지음, 오찬규 옮김 / 넥서스CROSS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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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을 놀라게 하라>. 마이클 프로스트. 넥서스cross

이 책을 읽게된 것은 단순하다. 마이클 프로스트의 책이기 때문이다. 
그의 책들을 통해 미션얼 처치, 즉 선교적 교회론의 개념을 소개받았고, 그로 인해 실제 현장에서 고민하게 되었기 떄문이다. 

이번에 발간된 이책은 철저하게 실천적인, 즉 실용적 서적이다. 
과연 미션얼 신앙을 가진 크리스챤들이 어떻게 삶의 현장가운데서 살아갈 것인지를 구체화 했다. 

간결하다. ‘삶으로 전도하는 크리스천의 다섯 가지 생활 습관’ 그것을 설명한다. 
책도 얇고 금방 읽을 수 있다. 

물론 기존의 전도개념의 실용서적과 맥을 같이 한다고 무시할 수도 있으나, 
국내에 마이클 프로스트의 책을 처음 소개하기 시작하였고, 
국내에서 미션얼 처치의 개념정립과 보편화를 위해 수고하고 계시는 지성근 소장이 작성한 
책 가장 뒤의 추천사가 아마도, 이 책의 가치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전제는 다섯 가지 습관이 라이프스타일을 낳고, 이 라이프스타일이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반복을 통해 우리가 된다. 덕은 단순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저자는 
복음 전하는 사역이 모든 교회에 부여된 기본적인 사역이기는 하지만, 모든 신자가 그럴 수 있는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다. p.26
라고 설명한다. 복음 전도자로서의 은사를 지닌 이가 따로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전도되었던 대다수는 복음전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범하게 자신의 삶가운데 대안적인 삶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던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들이 사람들을 매력적으로 끌어당겼음을 적시한다. 결국 그 매력적인 삶의 양식을 구현할 5가지 습관들에 대해 설명한다. 

5가지 습관은 각 단어의 앞자를 딴 약어로 ‘BELLS'라고 정리된다. 즉 
     1.  BLESS: 세 사람 축복하기(적어도 한명은 비그리스도인) - 확신을 주는 말, 친절한 행동, 마음을 담은 선물EAT: 세 사람과 식사하기(적어도 한명은 비그리스도인) 
  1. EAT: 세 사람과 식사하기(적어도 한명은 비그리스도인) 
  2. LISTEN: 최소 주중 한번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한 시간을 갖기
  3. LEARN: 최소 주중 한번 그리스도를 배우기 위한 시간, 집중하는 시간 갖기 - 복음서, 예수님에 관한 책, 영상물
  4. SENT: 파송일기 쓰기. 

이것들은 선교적인 삶을 위한 습관들임을 기억해야한다. 그 습관들이 설계된 이유는 우리를 밖으로 내보내서, 자신의 틀을 벗고, 다른 사람의 인생 속으로 들어 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날마다 갖는 경건의 시간처럼 매우 개인적인 경험은 쉽게 형식에 매이는 사람이 되게 하지만,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후하게 대접하며, 자기 자신을 파송 받은 자로 여기는 ‘관계 중심의 고상한 습관들’은 대외적으로 책임성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 매주 불신자와 식사하는 습관의 경우에도, 믿지 않는 친구들과 그렇게 습관적으로 교류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p.56

전통적 교회의 모습 속에 신앙인들은 단지 예배출석과 새벽기도, 그리고 헌금생활을 전부라고 생각했고 조금 발전하여 Q.T문화가 정착되었다.이와 동시에 삶의 맥락과 단절되 공격적 전도, 달란트와 신학적 배경 고려없는 실용적 전도법만이 범람하였다. 
허나 이런 소극적 신앙행위를 넘어, 예수께서 명하신 제자삼는 제자가 되기 위한 
삶을 통한 선교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마련된 통합적인 다섯가지 습관을 제안한다.

이는 또다른 된다하는 실용적 전도법이 아니라, 철저히 미셔널 처치의 개념 속에서, 성경적이며 동시에, 실제로 시행해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에 대한 이론적 공감이 있다면, 충분히 실천할만한, 그리고 아주 실제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고민하고 적용해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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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학교 게리 토마스의 인생학교
게리 토마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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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학교>. 게리 토마스. CUP


영성학자로서. 고민해볼 만한 우리의 실생활의 영역에 대한 신앙적인 답변고 제언을 주는 목회자이다. 연애/결혼을 테마로 사역을 진행하기에 앞서 읽었던 책 가운데, 가장 신앙적으로(복음주의권) 균형잡히면서도 실제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성경의 가치를 우선으로하여, 실제로 일어나는 많은 상담사례와 문제들을 적절히 적용하여 , 실제적이고 유용한 제안과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 올바른 결혼과 연애는 무엇인지. 하지만 교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무관심 하거나 말을 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유교문화에 의거한, 보수적 신앙에 의거한 함구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분명히 고민하고 있다. 다만 실제의 적용없이 그냥 이 세상의 가치관과 방식대로 연애와 결혼을 진행하고 있다. 신앙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모르기 때문이기도하다. 그러면에서 이 책은 이 영역에 대한 담론에 있어서 실제적인 문제들을 노골적으로 다루며 귀한 배움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내 나름대로 내용을 정리해보자면(책에는 이런 분류가 아니다)


제1 원칙. 

누구와 결혼하느냐보다 왜 결혼하느냐가 중요하다. 

성경적인 결혼은 단 한번뿐인 일이기 때문이다. 허나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는 아직도 결혼을 행복 제일주의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 여기서 행복이란 로맨스의 강도와 성적인 끌림으로 정의된다. 감정이 강렬하다는 이유로 연애와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오히려 눈을 가린다. 우리가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감정이 강렬해서가 아니라 좋은 짝을 만났기 때문이어야 한다. 상담자라면 누구나 똑같이 말하겠지만, 외로운 미혼자가 외로운 기혼자보다 훨씬 낫다.  


제 2원칙. 

좋은 배우자를 찾으려면 자신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배우자의 성품이 좋아야 한다. 감정이 사그라질 때 당신 인생의 사명을 지탱시켜주는 것은 배우자의 성품이다. 상대의 성적 매력이나 로맨틱함이 아니다. 결혼을 생각할 대상은 겸손한 영성을 지닌 그리스도인이면 좋겠다.

제 3원칙. 

자신의 사랑을 점검하라. 

당신에게는 사랑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당신은 사랑하기에 그 사랑 안에서 더 강해지는가, 아니면 더 취약하고 나약하고 심지어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느껴지는가? 그것은 성경적 사랑이 아닌, 플라토릭 사랑일 뿐이다. 평생의 배필을 구할 때 우리는 상대에게 아쉬워 매달리지 않늗나. 오히려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삶 속에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갈 사람을 참을성 있게 구한다. 


제 4원칙. 

열심히 찾아 나서라. 

사랑에 게으른 그리스도인이 너무 많다. 그들은 자신의 나태함을 하나님으로 때우려 한다. 결혼은 의지적으로 추구해야 할 일이며, 행복한 결혼의 대상은 딱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제 5원칙. 

대화하라. 

당신이 원하는 결혼에 대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관계를 잃을까 봐 두려워 솔직해지지 못하고 거짓말을 한다면 이것은 당신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사기다. 


핵심 원칙. 

운명의 배우자는 없다. 

하나님은 관계를 통해 두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것이지 당신이 평생 함께 지내고 싶은 그 한 사람을 찾아 주시는 게 아니다. 백마탄 왕자는 없다. 우리에게 허락된 사람이 단 한사람이 아닐 수 있다. 두드려라.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다. 충분히 생각할 꺼리와 적용할 꺼리를 던져준다. 그래서 특별히 자체적으로 이 책으로 가지고 연애를 꿈꾸는 이들, 결혼적령기의 동성의 사람들이 소그룹을 통해 공부해 나가는 것도 매우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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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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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인플루엔셜


프로이트와 융이라는 두 대가에게 가려져서,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하게 들릴만한 사람이지만

이 책은 아들러라는 심리학자의 학설을 바탕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이 책이 지닌 독특한 점이자, 최고의 장점은 독자들 대부분이 공감하겠지만 대화체로 구성된 논리전개이다. 딱딱할 수 있는 심리학 용어들과 내용들을, 한 ‘철학자’와 그에게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구도자 ‘청년’의 대화를 통해 소개하고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할 만한 실제의 내면의 어려움들과, 질문할 만한 내용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결국 아주 교묘하고 기술적으로 아들러 심리학의 개론을 풀어내고 있다.  


저자도 책 말미에 밝히듯, 소크라테스와의 대화 형식으로 대화록을 기록한 플라톤의 기법을 차용하고 있다. 참신하기도 하지만, 그정도 논리력과 맛깔스럽게 표현하며 적절하게 배치하는 작가의 필력이 새삼 돋보이는 책이다. 책은 밑줄친 큰 글씨들을 통해 아들러 심리학의 내용을 중간중간 정리해주고 있다. 그렇게 강조된 내용을 기반으로 풀어 기술하자면, 


우선 아들러 심리학은, 대세로 내려오던 프로이트의 심리학, 즉 현재의 문제를 과거의 요인으로 모든 원인을 돌리던 ‘원인론’에서 벗어나, 과거는 과거의 것으로 놔두고 현실을 직시한 후 미래를 지향하기 위한 ‘목적론’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한다. 목적론의 대전제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변할 수 있다’이다. 


때문에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만약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외부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불만이 있더라도 결국 ’이대로의 나’로 사는 편이 편하고, 안심되기 때문에 안변하는 것이다. 우리를 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결국 환경과 조건이 아닌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아들러 심리학을 일컬어 ‘용기의 심리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진정 용기를 가지고 행복한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핑계를 버리고 지금의 생활양식을 버리겠다고 결심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과 생활양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흔히들 열등감을 가지고 비루해지는데, 그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 해석일 뿐이다. 그리고 열등 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로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더 악화될 뿐이다. 아니다. 어떤 인과관계도 없는 것을, 스스로 속여 납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지향적 해석은 잠깐의 위로는 될지 몰라도 변화될 동력을 차단한다. 물론 적절한 열등감은 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하기에 필요하다. 건전한 열등감이 필요한 것이다.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의 비교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 말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시대 인생들은 경쟁에 지쳐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개인’은 ‘인간관계’속에서만 정의가 가능한데, 이런 필수적인 인간관계 중심에 ‘신뢰’가 아닌 ‘경쟁’이 있으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경쟁으로만 바라본다면,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떄문에 축복하지도 못하고, 자신도 불행하기만 하다. 


  결국 아들러 심리학은 타인을 바꾸기 위한 심리학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기 위한 심리학이다. 자신을 바꿔 과거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고 변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기존의 프로이트 심리학이 ‘소유의 심리학’, 즉 무엇이 주어지느냐라는 과거의 요인이 현재를 결정한다면, 아들러 심리학은 ‘사용의 심리학’, 즉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라는 현재를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임을 확언한다. 그리고 나아가 나를 확증하고, 내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간관계, 즉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수직적인 아닌 수평적으로, 즉 서로를 대등한 인격체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으로 바뀌어야 함을 역설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느다. 인간의 행복을 깨고, 타인을 수평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우리의 일상적 감정이 바로 ‘인정욕구’이다.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을 부정한다.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이다. 이 질문의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해야한다.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반대로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러할 때 우리는 나를 나 자체로 바라보고, 타인을 타인 자체로 바라보며 신뢰를 가지고 타인과 관계할 수 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과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국 책 제목 ‘미움받을 용기’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거나 혹은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아니다. 책 제목은 미움받을 용기가 생겼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 자유롭고 인간관계도 달라지게 된다는 역설적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를 지닌 이는, 인간관계의 카드를 타인이 아닌 자신이 쥐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들러 심리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타인의 반경을 넗힌다. 타인이 단 한명이라면, 아무리 내가 건강해도 나를 미워하기만하는 타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반경을 넓혀 ‘공동체 감각’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그 의미는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거기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범위를 이야기한다. 허나 그 범위가 사람이나 한정된 시공간으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가정이나 학교, 직장,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국가와 인류 등을 포괄한 전체와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 축, 나아가서는 동식물과 무생물까지도 공동체에 포함되는 초광역적인 개념이다. 


  공동체 감각은 중요하다. 우리가 남을 지나치게 신경쓰며, 또한 관계가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은 타인을 위해 사는 부자유스러운 삶이고 그것의 이유가 공동체 감각이 없어서 그러하다. 즉, 더 큰 공동체의 일부분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마치 너무 미세한 그와의 관계가 공동체의 전부로 착 자각한다면  부자유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아니다. 우리는 그 관계보다 더 큰 공동체에 포함되어있는 존재이다. 공동체 감각을 깨닫고 그 지경을 넓힐 때, 우리는 부자유로부터 자유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의미에서 ‘인간관계’의 측면을 넘어 ‘공동체 감각’ 측면에서라도 아들러 심리학은 온갖 ‘수직관계’를 반대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수평관계’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심지어 동양문화권에서 참으로 넘기힘든 관계인 부모자녀간의 관계마저 그렇게 변해야한다. 그리고 이렇게 수평관계가 성립이 될 때, 우리는 타인을 평가하지 않을 수 있고, 개입이 아닌 지원, 즉 ‘용기 부여’를 할 수 있다. 수직적 관계에 근거하면 타인을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수평적 관계에 근거하여 용기를 부여할 때 ‘고맙다’라는 말을 통해 상대의 공헌을 인정할 수 있고, 인정 받을 수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자신이 가치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낄 때. 즉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라고 느낄 때 진정 행복하게 된다. 수평적 관계란 결국 타인을 행위의 차원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 인간 그 자체이기에, 즉 인간성에 기반한 ‘존재’의 차원에서 살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한 사람이라도 수직관계를 맺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인간관계를 ‘수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 한명이라도 좋으니 다른 사람과 수평관계를 맺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물론 모든 것을 해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기 최면에서 시작하는 자기 긍정일 뿐이다. 때문에 책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 모든 작업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적절한 ‘자기 수용’이 필요하다. 즉,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적절히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허나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은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적절한 자기 수용이다.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내야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용기가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 단계로 ‘타자신뢰’가 필요하다. 신뢰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결국은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고, 타인의 반응과 관계없이 신뢰가운데 자신의 관계를 내가 맺어가면 되는 것이다. 


 마지막 ’타자공헌’이다. 허나 오해해서는 안된다. 타인을 위한 무조건적 희생이 아니다. 나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한 행위이다.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불행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허나 자신의 가치는 공동체에 공헌할 때 증명된다. ‘나는 공동체에 유익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통해서만 자신이 가치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반복해서 말하지만 인정욕구를 통해 얻은 공헌감에는 자유가 없다. 우리는 자유를 선택하면서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작업들이 어렵다고 회피할 필요는 없다. 현 상황속에 적용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미움받을 용기’ 이전에 ‘평범해질 용기’를 가져보는 것이다. 특별해 지려고 하는 것은 ‘평범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기에 자기수용의 단계를 시작해보는 것이다. 평범해질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평범은 무능해지는 것과 다르다. 일부러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할 필요가 없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생이 선처럼 보이나 점의 연속일 뿐이다. 즉 찰나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 밖에 없고,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 주인공은 타인도, 세상도 아닌 나이다. 세계는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


  독특하며 재미있고, 유의미한 내용의 책이었다. 무엇보다 심리적 불안함에 휩싸여 전혀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 그리고 과거가 그려낸 전통적 가치에 융화되지 못해 고통받는 낀 세대 청년들. 그리고 개인주의의 개념에 생소하여 항상, 그릇된 집단주의 속에서 행복을 상실하고 있는 동양권, 특히 한국인들의 마음에 위로와 빛을 비춰줄 만한 참 시의적절한 소재이자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나를 포함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스트레스의 원인이 일 자체이기 보다, 함께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는 부분은 인상깊었다. 나아가 한국사회에도 계속 제시되는 담론인 ‘공동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공동체 윤리를 통한 인간 도덕의 회복을 말했다면, 아들러 심리학은 공동체 감각을 통한 인간 행복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참으로 맛깔나는 문장과 구성, 그리고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고,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다만, 이 책의 내용이 좋은 인사이트와 위안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느껴지는 불편함이 있었다. 과거에 대한 것은 미래를 위해 무논의로 하자는 듯한. 즉 가치 없다는 듯한 논조가 좀 불편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공동체 감각은 단순히 넓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경을 넓혀서 영역이 넓어지면, 옆으로만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깊이도 깊어진다. 개인도 공동체도 평면적 개념인 원형이 아니라 구형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역사를 외면할 수 없고. 외면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절대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을 강제분리하고 있다. 개인안에서 결정되는 문제에는 너무 적절한 접근일 수 있으나, 우리는 공동체와 분리될 수 없고, 공동체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역사를 통해 형성된 사회구조를 우리에게 강요한다. 그런데 이부분을 간과한채, 미래에만 촛점을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켜 관점을 바꾸고, 나아가 공동체에 공헌함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행복론이자, 조금더 나아가면 일종의 정신적 쾌락주의가 아닐까 싶다. 


결국 불편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을 알 수록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아들러 심리학의 완성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수 있을까? 또한 무균실에서나 가능한 정신승리가 아닐까?


  여기까지가 나의 개인적인 평론이었다. 그리고 덧붙이고자 한다. 닫힌 세계관에서 열린 세계관으로 나아가면 전혀 다르지 않을까? 닫힌 세계관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임을 말한다. 허나 열린 세계관은 무언가의 개입이 가능한 세계이다. 기독교 개념에서 신, 즉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이다. 점과 같은 인생의 순간에 집중하고 즐겁게 사는 것은 중요하나. 인간은 그리고 단순하지 않다. 목적이 분명할 때 느끼는 행복이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의 목적을 분명히 상정하고 그 점들을 이어서 선으로 만들어 이끌어가는 존재이다. 이런 신과 신이 선물한 목적이 상실된 무의미한 점들의 연속은 언젠가 더 큰 불행으로 끌고간다. 인간자체가 인생을 선으로 받아들이는 존재인데, 점에 충실하라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가 아닐까?


  기독교는 인간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미래지향적 질문만 던지지 않는다. 인간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가치가 있고,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수평적으로 봐야하며,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의미가 있고, 하나님의 형상을 인정할 때 타인을 위해 공헌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때 행복을 찾는다. 그렇다면 자기 계발과, 엄격한 과정을 통한 레벨 업. 그리고 정신승리를 통해 행복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된 것을 되찾고, 그것마저 신의 적극적 개입을 통한 은혜. 그 은혜를 단지 수용하는데서 회복함을 이야기하는 기독교의 논리가 보다 더 정확하게 인간성을 반영하면서도, 더 간단하고 쉽게 행복을 되찾는 최선의 통로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의 저자는 지속적으로 관점을 바꿀 때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닫힌 세계관 속에서의 관점 변화만이 아니라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열린 세계관으로의 전환도 한번 모색해봄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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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문장수업 - 미움받을 용기 고가 후미타케
고가 후미타케 지음, 정연주 옮김, 안상헌 감수 / 경향BP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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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문장수업> 고가 후미타케. 경향BP


작가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밝히듯이 이 책은 ‘문장 쓰는 법’이라는 인터뷰 기사로 게재할 목적으로 시작된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저한 실용서이다. 그것도 국어국문학이나, 특별한 문학수업을 사사받은 이가 아닌, 필요에 의해, 필요를 위해 작성된 작문 실용서이다. 그래서 깔끔하다. 그리고 공격적이다. 허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어려움과 불필요한 오해들을 걷어내게 만든다. 

본인이 고민했던 내용들을 기반으로 노골적으로 문제해결에 뛰어들기에, 그래서 우리 누구나 글을 쓰면서 한번쯤 고민해봤을 만한 내용들을 거의 다 다루기 때문에 더 실용적으로 다가온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실용적 지침들을 다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저자는 매 챕터마다 그 챕터에서 다루고 있는 글쓰기의 스킬들을 한장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 요약본만 보고 흐름을 따라가며, 보다 관심있는 부분을 체크하고 책을 읽을지 말지를 가늠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다. 

 

꼭 작가 뿐만 아니라, 독자, 즉 대중을 상대로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침서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예언에 대해 적어보고 싶다. 이 예견을 접하면 더더욱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앞으로 더욱더 ‘쓰는 시대, 작성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문장을 쓸 기회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일은 없다. 17년 전의 직장인은 메일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2007년의 직장인은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사용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서 문장을 쓸 기회가 얼마나 늘어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글쓰기=생각하기’이므로 그것만큼은 기계에 맡길 수 없다. 오히려 예측 변환 등 문장 입력 도구가 일반화될수록 결과물로 진정한 문장 실력을 가늠할 만큼 뚜렷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문장 수업을 접하는 당신이 몇 살이든 간에 이 책을 통해 문장력이라는 무기를 손에 넣는다면 미래에 대한 최상급 투자가 될 것이다’  p. 36~37


 

끌리는 예언이지 않는가? 그의 말은 진짜이다. 알림장조차 적지 않고, 일기 따위 써본적 없는 내가 지금 이렇게 적고 있다는 것이 그 반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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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의 기원>. 서은국. 21세기 북스.



페이스북을 보다 우연이 만난 책소개 글. 그 소개글 속에 심리학 분야의 추천도서였고, 책 제목에 솔깃하여 이 책을 접하게되었다.


저자는 한가지 전제를 가지고 책 전체의 내용을 이끌어 간다. 

'인간은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행복을 추구한다.'

 

저자가 처음에 설파하고 있는 이 명제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내려온 뭔가 심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의미있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존의 언어로 치환한다. 인류의 최대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한 방법으로서 본능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발한 제안이고, 어찌보면 충격적 제언이다.


허나 천천히 읽어갈 수록, 반전이라기보다는 저자가 기저에 깔고 있는 세계관에 의한 주장이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부분에 동의할 수 없기에, 조금은 맥 없이 읽었달까?


저자는 철저한 물질주의자이다. 즉 인간의 영혼과 같은 비가시적 영역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인간과 인간과 심리의 영역을 분석한다. 저자도 후반부에 반복해서 사용하듯이 저자의 저 명제와 논리들은 결국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 한다.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물이 생존을 위해 적응하고 도태되는 과정을 거쳤고, 결국 생존에 대한 본능이 진화를 이끌었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심리의 영역으로 옮긴 것이다. 육체만 진화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심리적 영역도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결국 생존을 위해 행복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적응’이라는 진화론의 용어를 반복 사용한다. 


실제의 삶 속에서 충분히 접할만한 심리학자로서의 제언들은 소소한 인사이트들을 준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한 그의 전제는 심히 우려스러운 제언을 이끌어 낸다. 예를 들면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p.122


다른 영역에서 이와같은 주장을 했으면 관계없으나, 진화심리학 입장에서의 이와같은 주장은 위험하다. 쾌락 자체가 생존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용하다는 것은, 훗날 쾌락을 위해 저지르게되는 윤리적 일탈에 대해서 충분이 용인할 수 있는 문을 너무도 쉽게 열어놓기 때문이다. 공공선과 공동체의 쾌락에 대한 부분이 다루어지지 않는 개인의 쾌락과 그의 생존을 위한 허락은 분명히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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