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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저자 은유 추천
낸시 슬로님 애러니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평점 :
책 읽기가 인터넷의 등장으로 과거의 위상을 잃어버렸음에도,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글쓰기의 인기는 반가운 현상이다. 글쓰기는 자기표현이 필수인 시대에 중요한 소양이다.
글쓰기가 치유 행위란 말에 새삼 신선함이 느껴진다. 저자는 글쓰기를 통해 아픈 아이의 엄마라는 정체성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아가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글로 옮김으로써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니 놀랍다. 자신의 삶에 대한 글쓰기가 갖는 특별한 점은 삶을 간단히 요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들이 부르는 대로 간단히 요약되던 삶을 수많은 디테일로 묘사한다. 이를 통해 삶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울면서도 웃을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치유의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글쓰기가 삶에 대한 사랑의 행위라니 정말 매력적인 말이다. 경쟁이 심할수록 힘없는 개인은 더 쉽게 다칠 수 있지만, 자기 회복을 위해 글쓰기를 해 나갈 때 자신에 대한 사랑과 긍지도 회복하게 된다. 어느 누구나 들려줄만한 삶의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글로 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나에 대한 물음,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16년간 아픈 자식을 돌보며 글쓰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전적 에세이 쓰기의 전 과정을 소개하고 있고 글쓰기의 단서와 풍부한 일화, 구체적 조언과 지침을 망라하고 있다. 저자는 엄마로서 “글쓰기가 부서진 마음의 최고의 치료제”라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이 책은 자기 이야기를 쓸 때 일어나는 진실에 대한 증언이자 자전적 에세이 쓰기의 안내서이다.
이 책이 특별한 건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자기 목소리를 내도 된다고 격려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고 다른 질문만 한다.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 비결을 묻느라 쓰는 일의 의미를 잊는다. 저자의 말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해도 된다. 자신의 목소리로 진실을 쓰고 싶다면 내가 느끼는 감정의 진실을 쓰면 된다. 글쓰기에 대한 고정관념이 흔들리는 대목이다.
저자의 신선한 시각이 삶의 진실에 접근하도록 우리를 계속 이끌어 준다. 책은 말한다. 통찰력을 주는 일화와 자신의 글에서 찾은 사례들을 통해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책은 평범한 삶의 경험에 관한 책으로, 그런 경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써야 할지를 가르친다. 어리석음과 어려운 과제들로 점철된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의 삶에서 살아남게 말이다.
저자는 거듭 말한다. 자전적 에세이 쓰기는 부서진 마음을 달래준다고. 단지 일어난 일만을 기록해서는 안된다.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가 중요하다. 왜라는 질문을 파고들 때 이야기는 보편성을 얻는다. 진실을 들려주면 된다. 자전적 에세이는 자신의 책이다. 어떻게 들려줄지는 자신이 정한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면 그로 인해 침묵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책은 평범하고 지루하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할 의지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다르다. 저자의 얘기를 듣고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기록한다는 것에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그래도 아직은 글쓰기를 할 용기가 선뜻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전적 에세이는 어떻게 쓰는가? 독자는 알 수 없다. 정확한 단어로 묘사해줘야만 알 수 있다. 위로의 단어들, 삶의 방향을 바꿔주는 단어들, 사려 깊게 선별된 단어들. 그런 것들이 현실 치료에서 중요하다. 거의 대화로만 채워진 글을 쓰라. 혼잣말 같은 대화도 좋다. 자전적 에세이를 쓸 때 고통스러운 부분을 건너뛸 수 없다. 글을 통해 나의 경험들을 반드시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다만 자전적 에세이는 단순히 서사를 묘사하는 게 다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 본다. 그 일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변화 과정을 보여줘야 한다. 이렇게 책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는 기술적 방법론과 치유와 해방감에 이르는 법을 동시에 보여준다.
저자는 글 쓰는 방법에 대해서 더 세심하게 안내한다. 글쓰기 워크숍에서 활용한 글감들과 좋은 예, 나쁜 예, 다양한 예들을 실어 글쓰기를 시작하거나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팁들을 알려준다.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에서 발췌한 문장과 글쓰기 워크숍의 사례는 창작에 필요한 단서가 되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한다. 길잡이를 통해 글쓰는 연습을 해볼 수 있게 했고 작가의 글과 자신이 쓴 글을 비교, 분석해 볼 수 있게 했다.
저자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조언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진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 힘든 시기, 두려운 시기에 글을 쓰라. 개인적 전환기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을 때, 무엇보다 깊은 상처를 받은 시기에 써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의 잠재의식에 있는 것들을 믿으라고.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쓰기 전에 반드시 사전 자료조사를 하라고 권한다.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쓰고, 다르게 바꿔 씀으로써 관점에 따라 표현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날짜를 기록한 일기를 쓰라. 이것이 글쓰기의 기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평생 글을 써왔고 45년간 글쓰기 워크숍을 운영하면서 글쓰기를 가르쳐 왔다. 아픈 아들을 간병하며 느꼈던 마음속 깊은 이야기에서부터 주변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왜 이런 글들이 필요한지, 자전적 에세이 쓰기에 관련된 기본적 준비부터 출판, 그리고 에세이를 통한 치유과정 등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저자의 노하우를 전해 받으면서 그 동안 잊고 있었거나 숨겨두었던 내 안의 이야기를 끌어낼 직접적 용기를 갖게 된다. 저자는 덧붙여 말한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어떤 주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며, 그 과정은 글쓰기를 통해 다양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글을 잘 쓰기보다는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과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게 말한다. 그리고 얼마나 정직하게 쓰는가에 따라 독자들의 시선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글쓰기에 부담을 가질 평범한 우리들에게 분명한 자신감을 일깨우고 있다.
나아가 저자는 일관된 논리로 우리를 글쓰기로 유인한다. 분명 합당하고도 강력한 어조가 느껴진다. 자전적 에세이를 쓰는 이유, 의미는 무엇인가? 저자의 답변을 들어보면 그 동안 생각하지 못한,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글 쓰는 행위를 통해 내가 정말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를 쓰다 보면 대전환이 일어나는 순간이 나타난다. 의식과 행동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동안 거부하던 것을 받아들이고, 아주 오랫동안 괴롭혀온 걱정거리가 사라진다.저자의 말을 빌려본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디에서 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게다가 운이 좋으면 새로운 통찰을 얻고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다."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가 고통을 느끼는 걸 피하기만 해서는 그 길에 다다를 수 없다. 진정한 치유를 위한 글쓰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저자는 자전적 에세이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 자전적 에세이를 쓰면 스스로 치유되는 마법을 경험한다. 이처럼 글쓰기로 얻는 이점들이 정말 많다. 반성, 치유, 회복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마음의 치료까지 일어난다.
책은 많은 다양한 글감을 '길잡이'로 제시한다. 또 워크샵 참여자들의 글을 통해 다양한 표현법도 접하게 해준다. 길잡이에 맞게 직접 글을 써보면서 어떤 식으로 써야하는지 가늠해볼 기회를 얻는다. 이처럼 책이 제시한 실질적 도움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가 쓴 자전적 에세이를 누가 읽을까? 내 치부를 읽고 욕하진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겨 또한번 머뭇거릴 수 있다. 저자는 그런 마음까지 읽고 자전적 에세이가 갖는 놀라운 효용성으로 흔들리는 우리를 붙들고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을 만난건 자신감 부족한 우리에겐 분명 행운으로 보인다. 글을 쓰면서 헤매고 있거나, 마무리 짓지 못하고 멈춰 서있다면,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창작의 과정을 끝맺을 수 있도록 그리고 삶의 문제 해결과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자전적 에세이를 쓰는 이유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음으로써 마음속 상처가 치유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이제야 분명하게 이해된다. 글을 써서 자기만의 목소리로 자기 삶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각자 주인공이자 한 사람의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자전적 에세이 쓰기는 삶을 성찰하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마침내 자기에 대한 긍지를 회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은 각자 자신만의 상처와 외로움과 고민이 있다. 저자가 권하는 자전적 에세이 쓰기를 통해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상처가 치유되고 삶의 활력을 얻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 책은 이 시대에 특별한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