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아래에서 읽었으면 하는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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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혁명 - 피의 나무에서 슬기의 나무로, 우리가 직접 정치하고 직접 경영하는 즐거운 혁명
손석춘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해 켜졌던 촛불이 장맛비에도 꺼지지 않고 있다. 되레 불씨는 곳곳에 닿았다. 촛불문화제에서 거리행진으로, 쇠고기 문제에서 언론 문제, 대운하 문제로 그리고 정권 퇴진 운동으로 불꽃이 옮겨 붙는 양상이다.
그냥 촛불이 아니라 삼단 같은 불길이다. 촛불문화제에서 들리는 시민들의 구호와 시민들의 피켓은 분노 그 자체다. "이명박 물러가라!"는 말은 점잖은 축에 속할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 답답하다. 힘이 빠진다. 수많은 밤을 촛불과 함께 지새웠지만 세상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미국 쇠고기 재협상은 아직도 요원하고 정부의 낙하산 인사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은 한자릿수로 떨어진 지지율에도 요지부동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촛불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그 길의 실마리를 <주권혁명>(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 지음, 시대의 창 펴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혁명의 사전적 의미는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다. 좀 과격한가. 그만큼 현재 세상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손석춘 원장은 "21세기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수탈과 야만적인 제국주의를 넘기 위해서는 민중이 직접 정치하고 직접 경영하는 즐거운 혁명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손 원장은 우선 프랑스 단두대에서 시작된 핏빛 혁명부터 시작해 근대 민주주의 탄생까지 톺아본다. 민중의 나라 건설을 부르짖었던 소련과 동유럽 실존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도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실존사회주의의 공백을 인정머리 없는 신자유주의가 메웠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기득권세력의 정의 그대로 '자본이 누리는 절대적 자유'다. 더 간추리면 '자본독재'다. … 신자유주의의 중심에는 민주주의 탄생기의 시민도, 성숙기의 노동자도 없다.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 시민과 노동자를 대체한 중심에는 사람이 자리하고 있지 않다. 자본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혁명이다. 국민이 아닌 자본에 봉사하는 국가를 이대로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손 원장은 "경제주권과 정치주권을 비롯해 모든 권력의 주권을 민중이 주체가 되어 행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 주권운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치주권? 지금도 우리 손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지 않나'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선출로 끝이 아니다. 탄핵하고 감시할 권리까지 필요하다. 민중을 위한 헌법개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국민 건강권과 관련된 미국 쇠고기 수입이나 한반도 대운하 등 중요 정책도 국민이 직접 결정해야 옳다.
"아래로부터 강력히 통제되는 정치구조를 지닐 때 정치는 비로소 참여의 대상을 넘어 정치 자체가 민중의 창조물이 된다... 신자유주의 자본독재를 넘어서려면 자본의 논리를 통제해야 하며 그 방법은 법과 제도에 근거해야 한다."
손 원장은 인터넷을 통해 직접 소통이 가능해진 지금 중요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와 대통령,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국민소환 그리고 국민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는 국민발안권을 정치주권 행사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경제주권은 어떨까. 손 원장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포장된 '자본독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물론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국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무턱대고 민영화나 노동 유연성을 최고가치로 받드는 것도 아니다. 대신 시민과 노동자들의 보호자가 되라는 것.
"국민과 국민경제를 보호하고 육성지원하는 기구가 될 때, 국가는 비로소 지배기구라는 낡은 틀을 벗을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산업정책을 수립하는 일,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부를 보호하고 금융을 공공화하여 생산력 발전의 동맥으로 활용하는 일, 노동의 창조성을 최대한 고취할 수 있는 기업 구조를 유도하는 일을 비롯해 민주경제 체제를 건설하는 데 국가의 기능은 실로 크다."
또한 손 원장은 북한과의 경제협력도 주목했다. 그는 "통일민족경제 건설이라는 전략적 목표 아래 남과 북이 빠른 속도로 경제협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이는 신자유주의를 벗어난 민주 경제 체제 건설에 새로운 활로"라고 밝혔다.
민중을 위한 사회가 그려진다. 이제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어 보자. 손 원장은 '주권운동 3단계'를 책 말미에 썼다. '국민주권운동 준비위원회 출범'과 주권혁명의 이상을 담은 새로운 헌법 만들기 운동 그리고 선거혁명이다. 즉 민중이 깨어나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중 또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바꾸려는 열정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시인해야 옳다. 민중의 다수가 역사적 현실에 침묵하거나 외면할 때 역사는 반드시 보복하기 마련이다."
그래서다. 숨 막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민중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든 것이다. 지긋지긋한 장맛비에도 서슬 퍼런 공권력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주권혁명>을 이룰 때까지 해야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