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조기 은퇴 후 부모님과 함께 밭으로 출근하는 오십 살의 인생 소풍 일기, 2023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
황승희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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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밭농사보다 사이보그 가족이라는 말에 끌렸다. (보조기기를 사용하진 않지만 종합병원인 신체를 가져서 그럴지도..) 보청기가, 틀니가, 임플란트 나사가 심어진 이 가족의 귀농 일기는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저자의 아빠가 "심어만 놓으면 힘 하나 안 들고", "진짜 할 게 없는" 농삿거리를 찾는 모습에 딸사랑이 극진하시구나,, 싶다. 아주 나중에 나중에 자신들이 없어도 딸 혼자 편하게 먹고 살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어하셨던 게 너무 잘 느껴진다. 결국 감자로 시작해서 고구마, 배추, 상추, 쪽파, 보리, 시금치 등 온갖 농작물을 다 심으며 지내고 있지만.

책 제목에 걸맞게 손수 농사를 짓고 판매하며 깨달은 이야기는 1부 뿐이다. 2부와 3부에는 연세가 있는 부모님과 1인 가구로 살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가 서술돼 있다. 아직 나는 저자의 나이가 되려면 많이 남았지만 형제자매가 없는 외동인지라 부모님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공감이 되는 때도 있었다. MBTI의 IS성향이 매우 강한 나와 EN 성향이 매우 강한 듯한 저자의 생각에서 오는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예를 들면 나도 저자처럼 타지에서 1인 가구로 살고 있는데, 긴급 수술을 해야 했을 때 그냥 말하긴 해야할 것 같아서 부모님께 전화했을 뿐이고 병실에 며칠을 누워 지내면서도 답답해하는 것 하나 없이 너무 잘 지냈었다. 반면 저자는 몸이 아파도 집에 있기보다 외출을 택하고 겨울 생일을 잘 챙기지 못하는 설움을 격렬하게 느끼며 친구와 동맹을 맺기도 한다. 여러 차이 덕분에 나보다 더 생각하는 게 소녀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본 저자의 계정에는 고양이 두 마리도 있었는데 책에서 냥이 나뷔와 벙벙이를 위한 글이 4부로 따로 모아 실려 있었다. 가벼운 일기 형식의 에세이라 금방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사심을 가득 담아 키보드의 ESC 키만 베고 눕는 나뷔랑 벙벙이 사진이 실렸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의 기운을 받아 직장 한켠에 키우고 있는 옥수수가 풍년이었으면 좋겠다.



*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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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우연 -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3
김수빈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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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자리에서 금방 다 읽지만 여운은 오래 가는 이야기였다. 여러 개의 인스타 계정을 만들고, 공기계를 한 개 더 가지고 다니거나 한 가지 음식에 꽂혀 맨날 버블티만 마시러 다니는 모습이 소름 돋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우리 애들은 버블티가 아니라 마라탕에 꽂혀 있긴 하지만.)

책의 모든 이야기는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이야기의 주된 등장인물인 수현이, 고요, 우연이, 정후는 유별난 평범함을 지루해하거나 눈에 띄는 특별함을 저주하는 고등학생 1학년이다. 본모습을 어느정도 숨기는 학교 생활과 달리 자신의 정체를 어느 정도 숨긴 sns에서 오히려 가감없이 스스로를 드러내며 위로 받고 성장한다. 작가는 책의 모든 부분에서 쓸모 없는 것은 없다고 계속 이야기해준다. 항성은 아니지만 그 빛을 반사해서 자기만의 밝기를 가지는 금성처럼, 특별 한정판은 아니지만 어딘가엔 꼭 필요한 피규어처럼, 9번째 행성이라는 자격을 잃었어도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는 명왕성처럼.

실제에서 학생들의 관계는 더 복잡하고 미묘하고 해결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일 투성이다. 속사정을 다 알지 못하는 어른의 눈으로 볼 때 위태로워보일 때도 간혹 있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관계를 형성하고 해답을 찾아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책에서는 수현이가 보여준 정도의 배려와 용기도 해결책의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학생들에게 말로 전달하기에는 잘 와닿지도 않고 쑥스러울 수 있는 표현을 책으로 대신 해줄 수 있다면 이 책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에도 슬쩍 적어두었다.


*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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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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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생각지 못했던 내용이다. 예전에 저임금 노동자의 건강과 직업 보건에 대해 다룬 《보이지 않는 고통》을 읽은 적이 있어 그 책과 결이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청소 이야기보다는 저자의 삶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이 담겨 있다. 저자는 백야가 있고 추위가 누그러졌는데도 영하 10도인 겨울이 추운 나라 스웨덴에서 청소 노동자로 살고 있다. 이혼하여 혼자 다섯명의 자녀를 혼자 키웠고, 가장 나이가 많은 야간 학교의 학생이기도 했다. 일기가 쓰인 배경은 1965년~1969년이다. 아직 정식으로 책을 출간하기 전의 삶이라 팍팍한 나날에서 오는 우울감이 깔려 있지만 대체로는 저자가 좋아하는 공부와 글쓰기를 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처음 출간한 책이 바로 이 책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다.) 청소를 하고, 강의를 듣고, 집안일을 하고, 다시 청소를 하고, 책을 읽고, 틈틈이 글을 쓰는 삶은 '칼스쿠가에서 대학과정 역사학 강의를 듣는 청소부'라는 이야기로 신문에 실리기도 한다.

엄마로서의 삶은 많이 힘들어한 것 같다. 자녀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때, 브릿은 교사가 되었어도 잘 했을테지만 현실은 주 3회 나가는 공장에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평생 저임금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자녀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부분이 종종 등장한다. 그럼에도 일자리가 나면 자녀와 함께 아파트 청소 일을 하고, 딸과 함께 사는 이민자 남자친구의 일자리도 알아봐주며 주어진 삶에서 열심히 살아간다.

'정치소설' 분야에 공모한 이야기 답게 60년대 후반의 사회적인 모습이 곳곳에 서술돼 있다. 3차 중동전쟁, 베트남 전쟁, 스웨덴의 청년실업 현실, 그로 인해 커져가는 빈부격차 등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미국의 배가 북한에 나포된 이야기도 나온다. 스웨덴에서 우측통행은 1967년 9월 3일에 처음 시작했다는 tmi도 알게 됐다. 이처럼 다양한 사건이 등장해서 그때그때 검색해가며 읽었다.

* 출판사 서포터즈에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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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해석전문가 - 교유서가 소설
부희령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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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자꾸 넘어가는 게 아쉬운 소설을 읽은 게 오랜만이다. 6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이 책 덕분에 부희령 작가를 처음 알게 됐는데 《구름해석전문가》는 무려 11년만에 출간한 소설집이라고 한다. 다른 책들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그 공백기간 동안에는 번역가로서만 활동한 것 같다. 단편집을 읽을 때 보통 한 두 편은 호불호가 있는 편인데 이 책은 전부 다 재밌게 읽었다.
책을 펼친 후 역시나 순서대로 읽지 않고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던 <구름해석전문가>부터 읽었다. 선우의 생각이 맴도는 채로 네팔로 떠나온 이경은 우연히 만난 한국인 두 명인 상운, 진상과 며칠을 함께 한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 중에서는 무슨 일이든 가장 전문가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알쏭한 소개를 한 상운이 구름 걷힌 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상운이 구름해석전문가는 아니지만. 이후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느라 산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안개인 줄 알았던 구름의 한 가운데서 이경은 문득 깨닫는다. 골머리를 앓던 일도 완전히 통과해 지나가버리면 '구름이 걷힌' 완전한 생각을 만날 수 있음을. 이 글에 이어서 <완전한 집>이라는 네팔 이야기가 한편 더 실려 있는데 네팔 포카라의 풍경이 좀 더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두 글은 주인공이 전혀 다르지만 어쩐지 이어지는 고민과 감정에 이어진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책의 첫 이야기인 <콘도르는 날아가고>에서 주인공이 '그 애'를 보고 의식하는 과정은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에서 읽었던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장면이 생각난다. 어딘가 붕 떠서 호기심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주인공의 감정 흐름이 비슷하다. 마지막에 실린 <귀가>와 <내 가슴은 돌처럼 차갑고 단단하다>는 앞의 이야기들과 다르게 분위기가 오컬트적이다. '이별'하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해설가의 말처럼 각 6편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어떤 것'에서 벗어나기에 성공하기도 하고 벗어나려 노력하기도 한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받아들임'과 비슷하다. 남을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 소원을 빌고, 보트 밖으로 빠져나가려면 물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함을 깨닫고, 관계가 전혀 없는 젊은 사람을 데려와 의식을 치르기도 하며 윤회의 사슬을 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일부는 번뇌가 드디어 "전생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며 받아들이기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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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청춘 - 지나온 시대와 지나갈 시절의 이야기
구가인 지음 / 모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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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청춘은 아니고 초딩이었던 나. 아직 진지하게 고민하며 사는 나이는 아니었기에 대체로는 어릴 때 같이 놀았으나 지금은 어디에서 뭐하고 지내는지도 잘 모르는 몇 살 위의 언니들 생각이 났다. 아이돌 가수가 뭔지도 모르면서 아랫집 언니가 좋아하니까 H.O.T.를 따라 좋아했다. 가수 이름은 hot도 HOT도 H.O.T도 아닌 마지막 T 뒤에까지 꼭 점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해서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같이 기억이 난다. (영어 줄임말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어린이들인지라 왜냐고 물어보면 겨우 초등학교 고학년인 그 언니는 '그냥 그렇게 적어야 원래 이름이다'라고 했다.)
세기말 추억을 더듬던 1부와 달리 책의 2부에서는 81년생 중 한 명의 눈으로 바라본 요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시나 MZ라는 언급이 빠질 수가 없다. 늙은 MZ도 아니고 젊은 MZ도 아닌 나는 일부는 공감하고 일부는 왜 이렇게 생각하지 하며 읽었다. "정치적 지향 차이와 별개로" 오랜만에 지친 삶에서 한숨 돌리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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