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해석전문가 - 교유서가 소설
부희령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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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자꾸 넘어가는 게 아쉬운 소설을 읽은 게 오랜만이다. 6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이 책 덕분에 부희령 작가를 처음 알게 됐는데 《구름해석전문가》는 무려 11년만에 출간한 소설집이라고 한다. 다른 책들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그 공백기간 동안에는 번역가로서만 활동한 것 같다. 단편집을 읽을 때 보통 한 두 편은 호불호가 있는 편인데 이 책은 전부 다 재밌게 읽었다.
책을 펼친 후 역시나 순서대로 읽지 않고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던 <구름해석전문가>부터 읽었다. 선우의 생각이 맴도는 채로 네팔로 떠나온 이경은 우연히 만난 한국인 두 명인 상운, 진상과 며칠을 함께 한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 중에서는 무슨 일이든 가장 전문가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알쏭한 소개를 한 상운이 구름 걷힌 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상운이 구름해석전문가는 아니지만. 이후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느라 산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안개인 줄 알았던 구름의 한 가운데서 이경은 문득 깨닫는다. 골머리를 앓던 일도 완전히 통과해 지나가버리면 '구름이 걷힌' 완전한 생각을 만날 수 있음을. 이 글에 이어서 <완전한 집>이라는 네팔 이야기가 한편 더 실려 있는데 네팔 포카라의 풍경이 좀 더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두 글은 주인공이 전혀 다르지만 어쩐지 이어지는 고민과 감정에 이어진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책의 첫 이야기인 <콘도르는 날아가고>에서 주인공이 '그 애'를 보고 의식하는 과정은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에서 읽었던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장면이 생각난다. 어딘가 붕 떠서 호기심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주인공의 감정 흐름이 비슷하다. 마지막에 실린 <귀가>와 <내 가슴은 돌처럼 차갑고 단단하다>는 앞의 이야기들과 다르게 분위기가 오컬트적이다. '이별'하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해설가의 말처럼 각 6편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어떤 것'에서 벗어나기에 성공하기도 하고 벗어나려 노력하기도 한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받아들임'과 비슷하다. 남을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 소원을 빌고, 보트 밖으로 빠져나가려면 물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함을 깨닫고, 관계가 전혀 없는 젊은 사람을 데려와 의식을 치르기도 하며 윤회의 사슬을 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일부는 번뇌가 드디어 "전생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며 받아들이기에 성공한다.

*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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