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보면 공무원으로 행정복지센터, 구청 등에서 일하면서 10년을 보낸 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하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게으른 사람은 시간만 때웁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아첨하는 사람이 더 빨리 진급합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고 어디나 억울한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자는 공무원으로 7년을 일한 후 휴직 신청을 해 영국에서 6개월 동안 공부를 하고 옵니다. 그 경험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부서에 배정받았지요. 자신의 실력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직무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더 노력해서 실력도 높이고 주민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참 따뜻하네요. 사실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6개월의 휴직은 쓸 수조차 없기에 이런 휴직 기간에 자아실현을 하고 돌아온 저자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정도는 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보통 공무원들은 튀면 안 된다, 무엇을 잘한다고 하면 업무가 가중해진다는 암묵적인 진리 때문에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고 주어진 일만 하다가 칼퇴근합니다. 저자는 이런 공무원 현실을 비판하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책을 출간하기 위해 겸직 신청서를 낼 때 서명한 '공무원의 품위를 손상시키면 안 된다'라는 문구 때문에 초고를 몇 번이나 고쳐서 재미없는 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품위 유지 조항 때문에 최대한 자제해서 쓴 내용인데도 공무원 세계는 답답함 투성이입니다. 9급 공무원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매뉴얼만 지키면 되고 공통 양식이 있어서 프로그램을 열어 처리하면 됩니다. 단순 반복의 작업을 계속하다가 급수가 올라가면 점점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혈기왕성한 신입 때는 반복 작업만 맡겨서 그런 일에 익숙해졌는데 급수가 올랐다고 갑자기 새로운 일을 맡기면 열의 있게 일하기보다는, 전임자가 했던 일을 공문서에 날짜만 바꿔 그대로 답습하는 수준에 그치게 된다고요. 자주 바뀌는 근무지, 인사에 불이익이 있을까 봐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태도, 근무 실적에 반영하기 위한 현장 사진만 열심히 찍고 그때마다 현수막을 제작해 재정을 낭비하는 일, 회의 시 값비싼 다과 준비에만 열을 올리고 정작 회의 시간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 구태의연함 등 저자는 공무원 10년 동안 느꼈던 점들을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저자가 곧 이민을 가면서 공무원을 그만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책을 쓸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을 읽으면서 주목했던 부분은 저자의 공무원 인생이 6개월간의 해외 연수 전과 후로 나뉜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대학 졸업 전부터 공무원 생활을 했습니다. 다른 직장의 경험이나 아르바이트조차 없이 공무원으로 처음 일을 했고, 그 세계에 익숙해져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살아왔을 겁니다. 하지만 해외 연수 기간 동안 다른 세계를 경험하면서 갇혀 있던 틀을 깼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할 말을 당당하게 하는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가 공무원 생활을 떠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내린 결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까지 여직원의 이름을 부르며 반말로 커피를 타라고 하는 상사가 있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저자를 제외한 여직원들은 군말 없이 커피를 탄다는 점도 마음 아프네요. 공무원 문화는 아직까지도 이 정도인가 봅니다.
물론, 책에 나온 일들이 대한민국 9급 공무원들의 모든 모습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공무원 문화와 구조가 '대강 일하는 공무원'을 양성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책 속에는 마을에 아이들의 놀이터를 만들어 주기 위해 공무원과 주민들이 함께 애쓰는 눈물겨운 장면도 나오고, 공무원이 거리 청소나 산불 진화에도 투입되고 궂은 날씨에 비상근무를 하는 것도 나옵니다. 저자가 롤모델로 삼는 지적이고 기품 있는 선배 공무원도 나오지요. 이런 좋은 일들이 다 묻히는 것은 일부 공무원들의 일탈과 경직된 문화 때문이겠지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인정받지 못하는 문화에서는 누구도 새로운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열정 있는 신입 공무원들이 소신껏 새로운 사업을 기획해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여건도 조성되고, 이런 실적이 진급에 반영된다면 열심히 하는 공무원도 늘어나겠죠. 튀지 않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 존중받는 문화가 조성되려면 아직 멀었을까요. 재직 10년 차에 이런 고민을 하는 공무원이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 내부에서 이미 이런 흐름이 있을 것이고 시간이 흘러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 공무원 스스로도 자아실현을 하면서 직장에 다니는 문화가 정착될 거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