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라딘 서재의 첫 리뷰는 역시 김승옥으로 시작하고 싶다. 1960년대에 쓰인 글이라고 믿기지 않은 세련과 섬세가 정도를 지킨다. 어느 날 문득 산다는 것이 참고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 때, 김승옥 책을 펼쳐보게 된다. 나는 그의 글에서 위안을 얻고 싶을 걸까.

'내가 읽은 김승옥 무진에서 돌아오는 길' 이응준

   
  김승옥이란 소설가는 내게 있어 빛과 그림자였다. 빠져들어 닮고 싶어했을 때는 찬란한 빛이었으되, 빠져나와 다른 것을 쓰려고 했을 때는 잔혹한 어둠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의 쿠테타에 절망한 나머지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먼지의 방'을 중단했고 이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문학에서 종교로 망명했다는 것을 정설로 여기는 듯 한데, 나는 그의 절필이 역사라든가 신앙의 문제보다는 그의 미학적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 판단했고 그 판단은 내가 지독한 탐미주의자로서 시의 늪에 빠지지 않고 산문의 숲을 통과해나가기 위한 반성의 틀로 작용했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적 특성도 용맹한 변화와 온전한 발전을 거치지 못하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한계로 전락해버리기 십상이다. 아마도 그것이 시인 김수영이 '반시론反詩論'의 첫머리에서 주장한 '문학의 곡예사적 일면'인 것 같은데, 극과 극은 통하는 법. 김승옥의 소설들은 나에게 흠모의 대상이자 동시에 경계의 대상, 합하면 아슬아슬함이었다. 그러나 내 모순된 두 가지의 김승옥곤은, '작가는 자기를 지켜며 자기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가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는 강령을 각성케 해준 큰 스승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환상수첩'의 마지막에서 춘화(春畵)를 팔아 약값을 대는 폐병쟁이 임수영의 위악적인 독백을 통해 나는 얼마나 자주 사랑의 밀어(密語) 같던 자살충동들을 이겨냈던가.  
   

문학동네에서 나온 김승옥 전집을 보면 소설가 김응준의 '내가 읽은 김승옥 무진에서 돌아오는 길' 이라는 작가에게 바치는 글이 실려 있다. 그 글을 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이 위안인지 어떤 종류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 평안을 느끼는 대목을 써보면

   
  바람은 무수히 작은 입자로 되어 있고 그 입자들은 할 수 있는 한 욕심껏 수면제를 품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그 바람 속에 신선한 햇살과 아직 사람들의 땀에 뺀 살갗에 스쳐보지 않았다는 천진스러움 저온 그리고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길을 에워싸며 버스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산줄기 저편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소금기, 그런 것들이 이상스레 한데 어울리면서 녹아 있었다. 햇빛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압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     
   

이러한 글도 있는 반면 곧 폭풍이 찾아올 예감을 갖게 하는 글도 있다. 다음에 계속한다. 그리고 '잠' 시리즈는 발견하는 대로 올릴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