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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대가 - 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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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저서 불평등의 대가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그 이후 미국 사회의 대응을 분석함으로써 자유 시장체제에서 불평등이 형성되고 심화되는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경제학자로서 경쟁을 통한 효율 증대와 시장의 분배 기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시장이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심판자가 필요한데 현재 정부와 사법체제는 이러한 공정한 심판자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것이 금융위기 이후 미국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은 미국 정부가 자본가와 금융업자의 지대추구 행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함으로써 극대화되고 있다. 주택 담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한 중산층이 몰락하고 실업자가 대량으로 양산되고 있은 상황에서도 미국의 상위 1퍼센트는 국민 소득의 65퍼센트 이상(2002~2007년 기준)을 거머쥐었으며 2009년 대비 2010년 추가로 창출된 소득의 93퍼센트를 상위 1퍼센트가 차지했다(83페이지). 한 마디로 경기침체 속에서 돈이 돈을 낳는다는 부익부 빈익빈 상황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201410월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상위 10%가 미국 부의 61.9%를 차지하며 상위 10% 중 주식 보유자는 93%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최근 2년 간 미국인 가운데 최상위층 부자 7%가 보유한 부는 28% 증가한 반면 나머지 미국인들의 부는 4% 하락했다[연합뉴스 1121자 기사]).

스티글리츠는 이러한 양극화의 원인이 우선적으로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지적한다.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금융기관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제제보다는 경제부양의 명목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유화적인 정책을 취하게 한 것이 경기침체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각종 사기술로 파생상품을 판매하고 허술한 신용관리로 중산층의 거액의 주택 담보 대출을 유인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금융위기 이후 중산층은 몰락했지만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금융기관은 국회의원에 대한 로비를 강화하고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실력있는 변호사 집단을 고용하고 여론을 통제하여 정부의 간섭으로 인하여 경제가 연쇄적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각종 협박으로 사고를 포획함으로써 사법적 처벌과 정치적 규제로부터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다. 경제적 정의와 합리적인 규제가 사라진 자리에는 최상위층의 부는 더욱 증대되는 결과만이 고스란히 남았다. 지대 추구행위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정치적, 사법적 수단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으며 이를 통해 기회의 평등이라는 미국적 가치, 민주주의마저 위협당하고 있다는 것이 스티글리츠의 주장이다.

스티글리츠는 파이를 크게 만들면, 즉 총생산량이 늘어나며 낙수효과를 통해 저소득층의 생활조건이 개선될 것이라는 예측 또한 현 미국사회에서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도입된 저금리와 감세정책은 기업가와 자본가들에게만 유리하며 반대로 중저소득층의 복지혜택을 줄이는 역효과만 양산하고 있다. 저금리와 감세정책으로 유용할 수 있는 자금이 늘어난 미국의 기업주와 자본소유자들은 자금의 유동성이 증가된 세계화 체제에서 높은 투자수익이 보장되는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실제로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경제 활성화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총생산량이 늘어나도 미국 대다수의 시민들의 생활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은 시장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나와야 한다. 스티글리츠는 우선적으로 상위 1%의 조세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높으면 소득이 높아야 한다한계 생산성 이론은충분한 보상과 대가가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현재 최상위층의 부는 그들이 사회적 기여가 높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금과 자산을 동원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의 규칙 만들고 그에 따른 지대 추구 결과 현재의 부를 축적했다. 그들이 취득한 부에 대한 과세기준은 당연히 높아져야 한다.

또한 상위계층에 대한 조세부담을 늘려 확충된 재정을 근거로 정부의 재정지출이 확대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긴축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경제가 더욱 위축되는 부작용을 나을 것이며 긴축경제로 인해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이 축소될 수 있다. 사회보장혜택의 축소는 저소득층이 빈곤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하여 사회양극화를 심화할 뿐만 아니라 경기가 부양될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의 경제정책은 기업을 살려야 경제가 산다는 공급 주도 경제학에 함몰되어 있었다. 스티글리츠는 경제가 진정으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수요가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정부의 공적자금을 더 많이 지출되어야 한다. 공공사업은 더 높은 효율을 보이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안정망을 확대되어 미국인들이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발생할지도 모르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부작용보다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것이다. , 스티글리츠는 정부가 소득분배에 더 적극적으로 가담함으로써만이 미국의 불평등 현상이 조정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본의 힘이 사회불평등의 원인이며 자본의 힘이 물리적·정신적으로 포획된 정부와 사회여론이 자본의 힘을 보위하고 공고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사회과학계에서 신선한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와 그 후계자들은 지난 백여 년 동안 끊임없이 그 위험성을 지적해왔다. 세계는 이미 몇 차례에 걸쳐 금융위기를 경험했으며 자본을 길들이고자 하는 시도는 반짝 등장했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중국학자로서 중국 불평등 구조를 스티글리츠의 이론을 통해서 검증해보는 것도 매우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1999년 수정된 헌법을 통해서 노동에 따른 분배를 기초로 다양한 분배 방식의 병존을 보장하고 있다. 이는 자본, 자산을 통한 일종의 불로소득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늘어나는 인구와 산업구조의 전환 등을 고려하여 3차산업의 비중을 높여가는 것이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경제정책이다. 3차산업의 비중은 사회 전반의 불평등과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을까? 지역별 시기별 3차산업, 특히 금융기업의 비중 증가와 소득격차와의 상관관계, 금융기업의 영업소득에 따른 소득분배의 격차와의 상관관계를 검증한다면 중국 불평등을 자본력이라는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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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공간 - 세계화.신체.유토피아, 한울공간환경시리즈 14 한울공간환경 14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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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는 과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실패의 원인으로 그들이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공간의 재조직화 현상을 간과하였음을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분업화 현상은 생산과 소비 공간을 재조직화하였으며 지리적 불균등현상을 야기하였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한 공간의 해체와 파편화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자본주의 비판을 교조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되었다. 일견 시대에 흐름을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하비는 세계화체제 내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니, 오히려 세계화로 인해 마르크스주의가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발전이 가능해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세계화에 주목한다.

첫째, 하비는 자본주의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에서 자본주의가 가진 혁신성에 주목한다. 자본주의는 수익을 높이기 위한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이동을 시도하고 그 결과 세계적 생산/소비 체계가 형성되었다. 하비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확장이 인간의 창의성을 해방한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창조해내고 시도한다. 물론 자본주의는 인간의 창의성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이를 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계속적인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정적이기보다는 동적인 존재이며 이러한 인간의 정신적/신체적 운동성은 새로운 가치관을 발견해내기 위해 능동적으로 활동한다.

둘째, 자본주의는 세계 분업체제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노동을 분절화하고 파편화한다. 분절되고 파편화된 공간은 일견 집단주의적 노동운동을 불가능하게 하며 노동의 자본의 종속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의 재조직화는 개인과 환경의 관계를 강화시켰으며 이로 인해 환경과 신체의 유기적 연결은 보다 더 강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신체정치의 실현가능성이 높아졌다. 생활임금 운동과 볼티모어의 문이 있는 지역사회 등이 바로 이러한 예이다. “신체정치는 기존 마르크스의주의가 획일적인 세계관에 입각해 혁명적 유토피아 건설에 함몰되었던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하비는 유토피아가 기존 질서와 맥락적 연결을 간과하고 존재하지 않는 곳을 건설하려고 함으로써 지지기반을 상실하였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분절되고 파편화된 공간에서 신체정치가 실현되는 것은 변증법적 유토피아를 건설하는데 적절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하비에게 있어서 자본주의로 인한 세계화 체제는 자본주의의 영구적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변태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환경에서의 개인도 이에 적절하게 대응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차원(혹은 신체적 차원)이 정치가 단순하게 지역적 한계 안에서 집단이기주의(혹은 민족주의)로 성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한다. 특수성을 강조하지만 공통성, 혹은 보편성의 창출은 여전히 큰 의미를 가진다. 다만 하비는 보편성의 창출이 변증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비는 자본주의 속성이 인위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환경이며 변증법적으로 이를 대응하여 공통성,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하비는 마르크스가 이루고자 했던 원대한 목표보다는 방법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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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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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하고 설명을 하는 방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왜 어떤 지역에서는 현대와 같은 발전이 어떤 지역에서는 발전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주제를 맥락을 잃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인류 발전의 보편적인 발전이 어떠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서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자식의 본래 전공인 생물학 뿐만 아니라 지리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등을 총동원하여 명실상부한 학문융합적 저작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러한 불가능할 것 같은 작업이 꽤나 설득력 있게 먹힌다. 인류 발전이 불균형하게 각자 다른 속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각 지역의 환경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다이아몬드의 주장은,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거시사는 거시사와 크게 저촉되지 않는다. 이러한 거대한 작업을 단 한사람의 학자가 해낼 수 있었다니 대단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작업을 해낸 학자의 학문적 배경이 이공계라는 점, 그리고 이공계 출신들이 보편적 원칙 도출에 성공해내는 것을 보면서 이들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문제을 좁히기보다는 확대하여 이를 간의 유기적 관계를 밝혀내고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내는 해결 능력이 혹시나 이공계에서 학문 융합적 연구 문화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 그리고 최근 도시연구에 있어서 사용되는 복잡이론(complex theory)도 과학연구의 학제간 연구에서 도출된 것이다. 학문적 최근 사회과학계에서 이공계 출신의 학자들이 보편적 원칙 도출에 유리한 방식으로 훈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들게 한다.

한편으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작은 일견 환경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흐름-그것이 인간이든 물자이든 언어이든 기술이든-또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또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다. <, , . 7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가 어떻게 이동을 시작했는지에 대하여 논의하면서 지역 별로 정착 시기가 달랐다는 점을 지적한다. 농경은 정주문화를 낳았으나 농경문화의 경쟁력을 천천히 타지역으로 확장되어지며 농경문화에 대한 우수성이 수럽채취를 압도하게 되면서 서서히 지역의 생산방식을 교체해나갔다고 한다. 이러한 흐름에 유리하여 외부로부터 새로운 문화나 기술을 받아들이기 유리한 지역은 계속적인 인구나 물자, 지식의 성장을 해나가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지역의 경우에는 정착이 시작했던 그 시절의 생산방식과 삶의 방식을 유지하게 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이러한 관점은 두 가지를 시사한다. 첫째, 우리는 결국 하나의 원천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문명과 발전을 가져왔지만 결국은 우리는 하나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의 다름은 우리 자신의 본질적 차이에 기원했다기 보다는 우리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 그 이후에 형성된 것에 불과하다. 결국 인류의 본질은 그 겉모습이 어떠하든 하나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제 인류는 흐름이 막히는 곳이 없는”, 글로벌 사회에 진입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보통신의 발전은 지식과 문명을 가로막을 사막도, 바다도, 산맥도 이제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만약 지리적 환경에 인류가 동일한 속도로 발전 하는데 장애가 되었다면 이제 인류는 자신의 지역과 환경에 필요한 지식들을 수용하고 변화시키며 누구 하나 뒤떨어지지 않는 동일한 속도로 발전을 해나갈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그 시작이 달라 차이가 당장은 여전히 차이가 난 상태이지만 다이아몬드가 그렇듯 시간의 범위를 확대하여 10002000년 그리고 한 만년 정도 관찰의 범위를 확대해나간다면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다. 만약, 인류가 그 정도까지 오래 존재할 수 있다면.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최근 인터뷰에서 (스티브 호킹이 인류 종말이 1000년 정도 남았다고 했다는 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답하며 스티브 호킹은 매우 낙관적이다) 인류 문명의 붕괴가 시작하는 데는 고작 50년 밖에 남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붓지 않으면 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한다.

그가 제시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다이아몬드 =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50년 뒤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생선을 참 좋아하죠? 안타깝게도 세계 대부분의 어장이 50년을 못 버팁니다. 알래스카 연어 어장이 속한 미국 서부 태평양 해안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만, 나머지는 어려워요. 참치는 고갈되고 있습니다. 황새치는 대서양에서 사라졌고 태평양에서도 사라져가고 있죠. 또 다른 예는 목재입니다. 한국은 열대우림의 목재를 엄청나게 수입합니다. 이대로라면 세계 대부분의 숲은 30년 안에 사라집니다. 쉽게 꺼내 쓰던 화석 연료도 고갈되니까 바다로 더 멀리 나가고 더 깊이 파들어가죠. 또 다른 예는 물이에요, 담수. 소금물을 가져다 염분을 제거해서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럼 또 고갈되는 화석연료를 써야 하니까 안되고요. 지금 세계 강물의 85%를 사용하고 있는데 나머지라고 해봐야 아이슬란드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아주 외딴곳이니까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실제로 물전쟁이 터질 만큼 위태롭습니다. 다뉴브강을 두고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충돌했고, 시리아와 터키도 그랬어요. 중국과 베트남, 태국까지 히말라야 고원에서 오는 물 때문에 갈등이 깊어질 조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행동에는 의도가 있다. 그렇다면 재래드 다이아몬드가 이 거대한 저작을 집필하기로 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재래드 다이아몬드는 물론 매우 겸손하게도 이것이 뉴기니 친구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고 소박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우리가 하나의 환경을 공유하는 운명공동체 였음을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것같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가 한국인과 일본인이 문명의 쌍둥이라고 지적한 것도 한국 문명이 일본문명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한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문명의 흐름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전파자와 수용자의 지적 능력에 있어서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그가 본문에서 무수히 지적해온 사실이다. 한국이 우수하다거나 한국이 선진되었다거나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메시지는 얼마나 잘 전달되고 있을까?

 

앞에서 보편원칙을 발견하는데 이공계 출신 학자들의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짐을 부럽다고 지적했다. 맞다. 형이상학적 정신세계를 동원하지 않고 경험적 증거와 보편원칙을 가지고 도둑정치가들이 창조해낸 민족, 국가와 같은 현대성이 규정하는 가치들에 대한 재고를 요구하며 이러한 가치기준을 넘어서 지구공동체라는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뛰어난 학자들은 애석하게도 모두....과학자들이다(, 리처드 도킨스, 칼 세이건, 그리고 스티브 호킹까지) 지구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 무생물적 존재들을 사고에 편입시켜(재래드 다이아몬드가 균과 종자를 끌어들인 것처럼) 지구적 차원에서 인간의 역사를 논한다. 단언컨대 아직까지 이 정도의 차원에서 인류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사회과학자는 없다. 내가 받아왔던 discipline이 지나치게 편협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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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
프랑크 쉬르마허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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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가정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재기한다기 보다는 노령화 사회에 직면하여 전통 가족과 성 역할 부활로 현실의 문제를 타계해보려는 목적에서 쓰여졌다.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령화 사회로 인한 문제점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를 완화/해결하는데 가정이 상당부분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견을 상당히 집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반에 단점이 너무 뚜렷하다.
저자는 상당히 보수적인 관점에서 이 책을 서술하고 있는데, 사회적 환경 하에서 여성으로 교육받은 후천적인 여성화의 기능은 무시한 채 여성적 특징을 선천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 가족의 범위를 혈연에 근거하게 한 점, 가족중심의 배타적인 민족관과 국가관을 피력하고 있는 점은 동의하기가 너무나 힘든 해결점이다.
현대 사회의 다원성을 고려할 때 가족의 범위는 넓게 상정되어야 할 것이며, 혈연이 아닌 친밀감을 기초로 하는 가정의 형성만이 현재 존재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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