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되지 못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시대정신
최상명 지음 / 푸른숲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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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한 줄]
우리는 '나'를 주장하면서 투쟁한다. 김근태는 '나'를 양보하면서 투쟁했다.

[서평]
2011년 12월 30일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김근태 민주주의자가 소천했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사람의 죽음은 모두에게 정한 이치이지만, 그 중에서도 안타까움을 갖게 하는 경우가 있다
한 시대를 같이 살았으면서도 훌륭한 삶과 족족을 남긴 분들을 미처 알지 못할 때 그렇다
고 김근태님도 그런 분이었다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 상당수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분향했다는 소식으로 나의 이 생각을
갖게 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분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게 됐다.

내가 갖고 있던 그분의 이미지는 느리다, 답답하다, 뭐하는 분(?)이었다
그가 왜 민주당에서 리더로서 활동하지 였다. 어떤 행적을 가지신 분이기에...

그는 1985년 9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매일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각 5시간 정도씩 당했다고 한다
12월 19일 민청학련사건 첫 재판의 모두발언에서 이 폭로를 한다
그 고문을 겪으며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목숨을 거는 것과 같은 어려움 임을 절실히 느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매년 가을이 되면 큰 병앓이를 했다고 한다

그런 고문과 고통을 당했으면서도 불구하고
그는 분노와 보복의 앙금과 한을 품지 않고 포용하고 용서하는 것을 품었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가. 그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모습을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불가능하다. 그런데 김근태님은 그랬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여야 모두에게 그리고 국민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인 것 같다.

그는 이후의 정치활동에서 치열한 민주주의 방식을 추구한다.
정책적 이견이 있을 때면 줄곧 '격론을 벌이자 그래서 대통합을 이루자'는 것이 그의 민주주의적
방식이었다.

그는 체포 26회, 구류 7회, 5년6개월에 걸쳐 두 차례의 투옥이 있었다
그는 늘 건강이 안좋아 활동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오히려 미안해 했다.

그는 여당이었을 때도 그리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할 때도 옳은 것을 향해
같은 당내에서도, 대통령에게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국민을 위한 판단을 서슴없이 했다.

예를들어 경제활성화를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연금 투자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기도 한 것,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반대와 대안이 그것이다
미국과의 FTA는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현실속의 대안으로 미국외의 중소국과의 협정을 먼저하고
상황을 보며 피해 최소화의 방향을 가야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론을 통해 대통령에게 맞서는 여당대표로 비춰졌고, 비주류로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의 정치적 외톨이의 결정판은 민주당 최고위원 선출 경선대회에서의 양심고백이었다.
잘못된 정치자금을 몇 억씩 받았다라는 그의 경선 중의 고백은 정치 자살행위였다
그것은 경선결과로 이어졌고, 경선사퇴와 외면 그리고 검찰수사로 이어졌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국민들이 그의 진심을 잊지 않았다.
동료 의원들과 대학교수들 등의 청원서가 제출되고 그는 선고유예로 사법부의 판단를 받는다

그는 지금 우리 곁에 없고 그의 뒤를 이어 아내인 인재근 의원이 민주주의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하늘의 별이 지면 우리는 슬프고, 안타깝고, 암담함을 느낀다.

그런 민주주의자는 늘 우리곁에 있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은 세상의 빛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런 빛이 우리에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대선을 앞두고 더욱 궁금하기만 하다

민주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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