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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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초현실

정말 잘 만든 드라마다. 인물의 심리ㅡ대표적으로 아들을 잃은 티나의 절절한 심정ㅡ가 섬세하게 서술되어 내면으로 깊이 빠져들게 한다. 여러 인물을 한데 엮은 솜씨도 그야말로 정석적이다. 작중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은 입체적이지 않고 드라마에서 자주 볼 법한 흔한 행태를 보인다는 티가 존재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80년대 작품임을 감안했을 때. 이 이야기는 매력 넘치는 악역이 이끄는 이야기가 아니므로. 초현실적인 상황이 이끄는 이야기이므로. 그렇다면 상황은 어떠한가. 이야기를 잘 이끄는가?

라스베가스의 무대 연출가 티나는 2년여 전의 사고로 아들을 잃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다, 이제 슬슬 "상대적으로" 사고 당시보다 괜찮아지려는 참이다. 조금 나아졌을 뿐 여전히 아들처럼 보이는 그림자만 비쳐 보여도 흠칫하며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게 되지만. 상실이 남긴 상처를 다스리며 무대 일에 열중하는 생활을 보내는 티나.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처음은 꿈이었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과 아들이 보던 만화책의 장면이 연합되어 불길한 내용의 꿈으로 나타난다. 상실감에 몸서리쳤던, 지금도 그 잔여물이 남아있는 티나로서는 이를 개꿈으로 취급할 수가 없다. 도저히.

그래도 꿈은 꿈. 아닐까? 꿈에 신경 쓰면서도 개의하지 말자며 애써 일상을 꾸려 나가지만 이제는 초자연적인 현상마저 일어난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도대체 왜 주변 기온이 멋대로 오르락 내리락하고 전자기기에서 이상 반응이 나타나는가? 이쯤되면 분명 뭔가가 있다. 자신이 오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착란에 빠졌든, 실제로 뭔가가 있든. 그리고 현상은 점점 더 심하게 일어난다. 강도를 더해간다. 혹시 아들과 관련된 건 아닐까. 왜, 라는 의문이 눈을 문장에서 떼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상황이 어떻게 진전되냐면….

현실과 초현실, 그리고 인연의 유대

상실, 징조, 모험. 상황은 이야기를 잘 이끈다. 현실과 초현실의 뒤섞임이 선사하는 자극은 흥미롭고, 이에 따라 사건은 차근차근 일어난다. 공들여 설정한 인물과 상황이 잘 맞물려 돌아간다. 어렵사리 중심을 잡은 삶에 불쑥 나타나는 과거의 인연,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점점 친밀도를 높여가는 새로운 인연. 어느 인연이든 만남의 순간과 오고 가는 말과 차오르는 감정의 묘사가 사실적이다. 이 지점에 한해선 "픽션에서나 일어날 일"이라는 말이 힘을 잃는다. 소설 밖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일이므로. 새로운 인연이 티나가 처한 초현실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티나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바라보는 것도 묘미다.

현실과 초현실, 사람과 사람의 엮임을 통해 이야기는 힘을 받는다. 이제 모두가 달리는 길만 남아있다. 모험으로 가득 찬. 전개가 빠르고 시원시원한. 서서히 드러나는 사건의 전말과 배후에 독자는 강렬한 데자뷰를 느낄 것이다. 처음 읽는 소설인데 무언가 매우 익숙하다. 착착 진행되는 시원시원한 전개는 다소의 식상함에 힘입은 결과일지도 모른다…그렇지만. 이 구도를 통해 작가가 전하려는 주제는 지금 이 시대에도 통한다. 티나를 중심으로 한 미시적인 단위에서도, 집단과 국가 차원의 더 거시적인 단위에서도. 그런 구도이기에 더 명확하게 보이고 깊이 느껴지는 것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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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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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을 현실에 잘 녹여낸 이야기. 코로나와의 관계성보다는 인물의 내면 묘사, 서사가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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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척도
마르코 말발디 지음, 김지원 옮김 / 그린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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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 불러오는 것, 그리고 다빈치


완벽에 대한 환상과 불안이 있다. 뭐든 무결한 결과물을 내어야 한다는 생각. 실수 투성이인 결과물을 마주하느니 차라리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어떤 때는 두려움에 무너져 절망에 휩싸인 채 아무것도 못 한다. 어떤 때는 실수에 가슴 저미면서도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간다. 사람에도 전자의 반응을 주로 보이는 사람이 있고 후자의 반응을 주로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세상은 넓으니 처음부터 모든 것에 완벽한 사람도 있긴 있을 듯하다. 인생을 다회 살아본 것처럼 사는 사람.

위인에 대한 환상도 마찬가지다. 위업으로 역사에 자기 이름을 새긴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타고난 재능이 완벽에 가까운 채로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는 위인 개인의 삶을 파고들어 알지 못하면 더욱 심화되는 것만 같다. 특히 르네상스 하면 바로 떠오르는 다빈치에게 완벽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처음부터 못 하는 게 없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좌절 없이 모든 것을 빠르게 익히지 않았을까. 과연 그럴까?

그런 환상의 실체에 관하여, <인간의 척도>는 이야기한다. 밀라노에 체류하던 시기의 다빈치와 그 주변을 조명하면서. 다빈치라는 인물과 책의 표지, 장르, 의미심장한 제목 등을 접하면 마치 다빈치의 완벽에 가까운 활약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할 것만 같은 기대감이 차오른다. 하지만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런 기대감은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를 흥미와 호기심이 채운다.

책을 펼치면 제일 먼저 장엄하고 복잡한 가계도와 인물 설명이 모습을 드러내 숨을 헉 들이쉬게 한다. 처음부터 두려워지지만 별 게 아니다. 비중 있는 인물은 한정돼 있고 건너뛰어 읽어도 인물상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건너뛰기 찝찝하면 등장인물 소개글이나 눈으로 훑고 넘어가면 된다. 여하튼 프롤로그부터 은밀하게 어딘가로 들어가는 사람이 등장하고, 당시 밀라노의 지배자, 일 모로와 수사들의 다분히 정치적인 대담이 나온다.

선두에 정치적 대담이 배치된 구조답게 이야기에서 정치는 중요한 동력이 된다. 페라라, 밀라노, 프랑스, 수사들의 여러 세력이 얽히고 설키며 장면을 그려내는 까닭이다. 정치라 해서 환상적인 가계도를 접할 때처럼 숨을 헉 들이쉬게 됐지만 이 역시 무겁지 않다. 몇몇 인물의 행동과 대사는 우스운 콩트를 연상시키고, 당대의 복잡한 정황을 간략하고 알기 쉽게 서술한다. 작가가 부드럽게 풀어 먹여준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작중 정치적 면모는 부담이 아닌 재미다. 와중에 밀라노 성 안쪽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이것이 이야기의 최중요 사건…이지만.


활자로 그린 초상에 담아낸, 위로


개인적으로는 소설에서 그려내는 인간 다빈치에 대한 초상이 훨씬 흥미롭고,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야기 속의 다빈치는 그려준 작품의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기한 내에 일을 해결하지 못해 고용주 일 모로에게 독촉 당하며, 가족과 티격태격한다. 이 모습은 완벽의 환상을 깸과 동시에 캐릭터에 정을 붙이게 하고, 나아가 독자 당신 또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로 읽힌다. 그 또한 완전무결한 위인이 아니라는 점과 가끔은 웃음 짓게 만드는 그를 둘러싼 소소한 사건들이.

어쩌면 강박에 옭매여 정신적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읽었기에 작품이 더 좋아보이고 마음에 드는지도 모른다. 미스터리 소설로서 기본에는 충실하지만, 독자를 휘어잡는 긴장감을 조성하나 진실에 이르는 과정,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의 카타르시스 등 큰 한 방을 날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다빈치, 혹은 다양한 인물이 자아내는 웃음 등, 각자가 선호하는 요소에 집중하여 소설을 읽는다면 <인간의 척도>는 매우 만족스러운 체험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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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척도
마르코 말발디 지음, 김지원 옮김 / 그린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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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를 통해 일어서는 것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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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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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출발하는 한 쌍의 열차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책을 펼치자마자 '독자 여러분께...'로 시작하는 작가의 도전장이 뇌리에 도장을 찍는다. 이 작품의 주요 트릭은 쌍둥이 트릭이라고 선언한다.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추리소설에서 시작부터 핵심 트릭을 미리 드러내고 맞혀 보란다. 마치 카드 게임에서 자신의 패를 남들보다 몇 장 더 보여주는 격이 아닌가.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과 결과를 주된 매력으로 삼는 장르에서, 시작부터 주요 단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야기의 물살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ㅡ결에 이르기 전에 도전장을 던지며 이제 모든 단서는 제시됐으니 범인이 누군지 추론해 보아라, 는 퍼즐식 재미를 선사하는 소설을 반대로 뒤집은 것만 같다.

그래서, 당연히, 소설은 한 쌍둥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간략한 인적 사항과 쌍둥이가 '어떤 일'을 행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를 내용으로 하는. 일종의 오리진 스토리다. 이 기원을 신호탄 삼아 <살인의 쌍곡선> 열차는 달리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두 장소에서 진행된다. 쌍둥이가 활동하는 도쿄, 여러 인물들이 관설장에 모이는 도호쿠. 이처럼 다른 선로 위에서 달리는 두 열차를 보여주기에 위화감이 느껴질 법도 하건만 오히려 재밌기만 하다. 사건 자체가 흥미를 붙들어 매고(쌍둥이 강도, 관설장 비사) 진행이 빠르기 때문이다.

작가가 작품에 많은 감명을 받았는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서술되는 대목에선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아, 그런데, 여기서도 추리소설에서 다른 작품이 언급되면 스포일러를 주의해야 한다는 철칙을 유념해야 한다. 작중에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과정과 결말이 언급되는 까닭이다. 이 작품의 스포일러가 존재한다! 피해갈 수도 없다. <그리고>가 이 분야의 전설인 만큼 마음 속 리딩 리스트에 <그리고>를 적어뒀다면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다.

인과로 빚어진 교차점

이야기를 실은 두 열차는 계속 번갈아 소설의 전면에 나선다. 각각 강도와 관설장이라 명명할 수 있을 텐데, 할애된 분량의 차이도 크지 않다. 강도->관설장->강도->관설장, 하는 식으로 챕터가 끊임없어 보일 만큼 이어진다. 왜 이런 구성을 택했는지 의문이 들지만 의문은 의문대로 내버려둔 채 열차는 점차 가속하며 나아간다.

연말 연시에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당당하게 강도 행각을 벌이는 형제,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점점 대담해지는 수법, 대응 전략을 짜느라 골머리를 싸매는 도쿄의 경찰.

초대장으로 둔갑해 나타난 행운, 도호쿠의 설경을 두른 호텔 관설장, 연말 연시를 보내기 위해 부푼 마음을 안고 관설장을 찾은 사람들. 그리고, 연이어 일어나는 의문의 사건.

초반에서 중반으로, 중반에서 종반으로 열차가 나아갈수록 챕터를 읽을 때 느껴지는 시간은 짧아진다. 분명 얼마 읽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장면이 전환되고, 실제 시간은 훌쩍 지나 있는 것이다. 많은 인물이 등장함에도 소화하기에 어렵지 않고 개인의 감정선을 과하게 표현하지 않으며 사건의 배치도 계단식 배치로 깔끔하기 때문이다. 유난히 몰입감이 높은 이유는. 그러면서도 두 선로는 저 앞에 교차로를 그리기 시작한다. 동떨어진 이야기를 병치한 이유를 향해. 겹치는 인과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쳤을까. 얼마나 끼치게 될까. 쭉 뻗은 선로는 독자의 호기심으로 칠해져 빛난다.

끝으로 이 작품이 선사하는 것은 추리와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의 재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떠한 사회적 함의 또한 숨어 있다. 사회파 미스터리만큼 메세지를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을 뿐. 모든 시간이 지난 후 독자가 읽게 될 문장은, 물고 물리는 좁은 세상이 건네는 상념은, 떫은 맛으로 남아 입 안을 맴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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