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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출발하는 한 쌍의 열차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책을 펼치자마자 '독자 여러분께...'로 시작하는 작가의 도전장이 뇌리에 도장을 찍는다. 이 작품의 주요 트릭은 쌍둥이 트릭이라고 선언한다.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추리소설에서 시작부터 핵심 트릭을 미리 드러내고 맞혀 보란다. 마치 카드 게임에서 자신의 패를 남들보다 몇 장 더 보여주는 격이 아닌가.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과 결과를 주된 매력으로 삼는 장르에서, 시작부터 주요 단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야기의 물살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ㅡ결에 이르기 전에 도전장을 던지며 이제 모든 단서는 제시됐으니 범인이 누군지 추론해 보아라, 는 퍼즐식 재미를 선사하는 소설을 반대로 뒤집은 것만 같다.
그래서, 당연히, 소설은 한 쌍둥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간략한 인적 사항과 쌍둥이가 '어떤 일'을 행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를 내용으로 하는. 일종의 오리진 스토리다. 이 기원을 신호탄 삼아 <살인의 쌍곡선> 열차는 달리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두 장소에서 진행된다. 쌍둥이가 활동하는 도쿄, 여러 인물들이 관설장에 모이는 도호쿠. 이처럼 다른 선로 위에서 달리는 두 열차를 보여주기에 위화감이 느껴질 법도 하건만 오히려 재밌기만 하다. 사건 자체가 흥미를 붙들어 매고(쌍둥이 강도, 관설장 비사) 진행이 빠르기 때문이다.
작가가 작품에 많은 감명을 받았는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서술되는 대목에선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아, 그런데, 여기서도 추리소설에서 다른 작품이 언급되면 스포일러를 주의해야 한다는 철칙을 유념해야 한다. 작중에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과정과 결말이 언급되는 까닭이다. 이 작품의 스포일러가 존재한다! 피해갈 수도 없다. <그리고>가 이 분야의 전설인 만큼 마음 속 리딩 리스트에 <그리고>를 적어뒀다면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다.
인과로 빚어진 교차점
이야기를 실은 두 열차는 계속 번갈아 소설의 전면에 나선다. 각각 강도와 관설장이라 명명할 수 있을 텐데, 할애된 분량의 차이도 크지 않다. 강도->관설장->강도->관설장, 하는 식으로 챕터가 끊임없어 보일 만큼 이어진다. 왜 이런 구성을 택했는지 의문이 들지만 의문은 의문대로 내버려둔 채 열차는 점차 가속하며 나아간다.
연말 연시에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당당하게 강도 행각을 벌이는 형제,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점점 대담해지는 수법, 대응 전략을 짜느라 골머리를 싸매는 도쿄의 경찰.
초대장으로 둔갑해 나타난 행운, 도호쿠의 설경을 두른 호텔 관설장, 연말 연시를 보내기 위해 부푼 마음을 안고 관설장을 찾은 사람들. 그리고, 연이어 일어나는 의문의 사건.
초반에서 중반으로, 중반에서 종반으로 열차가 나아갈수록 챕터를 읽을 때 느껴지는 시간은 짧아진다. 분명 얼마 읽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장면이 전환되고, 실제 시간은 훌쩍 지나 있는 것이다. 많은 인물이 등장함에도 소화하기에 어렵지 않고 개인의 감정선을 과하게 표현하지 않으며 사건의 배치도 계단식 배치로 깔끔하기 때문이다. 유난히 몰입감이 높은 이유는. 그러면서도 두 선로는 저 앞에 교차로를 그리기 시작한다. 동떨어진 이야기를 병치한 이유를 향해. 겹치는 인과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쳤을까. 얼마나 끼치게 될까. 쭉 뻗은 선로는 독자의 호기심으로 칠해져 빛난다.
끝으로 이 작품이 선사하는 것은 추리와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의 재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떠한 사회적 함의 또한 숨어 있다. 사회파 미스터리만큼 메세지를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을 뿐. 모든 시간이 지난 후 독자가 읽게 될 문장은, 물고 물리는 좁은 세상이 건네는 상념은, 떫은 맛으로 남아 입 안을 맴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