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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지 2 ㅣ 패시지 3부작
저스틴 크로닝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평점 :
지극히 인간다운, 그렇기에 쉬이 허물어지는 모래성
<패시지>의 소개를 보자마자 눈에 들어온 단어, "뱀파이어", "판타지", "멸망", "희망". 이미 익숙한 단어다. 그간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기도 했으니 말이다. 키워드가 겹치는 작품만 골라 쌓아도 높은 탑을 쌓을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같은 종류의 장르물에 아무리 많이 노출되고, 질릴 때까지 물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더라도 새로이 출하되는 멸망한(혹은 하는 중인) 세계의 이야기는 매력있다. 저마다의 세계가 어떻게, 왜 무너지는지, 인간은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기에. 개중에는 정말 현실적이어서 머지않아 같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이야기도, 비현실적이지만 세계를 너무 생생하게 묘사해 보는 이를 훅 빨아들이는 이야기도 있다.
두 가지 군의 이야기에 공통점이 있을까? 대표적인 하나를 뽑자면 체계가, 국가가, 세계가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해변의 모래성처럼. 어마어마한 수의 인공위성이 지구를 돌고 핸드헬드로 간단한 조작만 해도 지구 반대편 사람과 즉시 연락이 가능한 시대. 손에 닿는 물질을 뛰어넘어 그 이상을, 어쩌면 정신까지, 다루기 시작한 시대. 하지만, 고작 전류가 끊기고 광케이블만 없어도 그토록 자랑하던 통신이 무용지물이 되는 시대. 당연하게 여기는 물건 단 몇 가지만 사라져도 급변할 문명. 이렇게 작은 파도로도 쉬이 허물어지는 모래성에서 우리가 산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디스토피아물은.
모래성, 거울상
이기심. 언제나 이기심이 문제다. 좀비의 습격을 받는 세계에서, 외계인의 침공을 받는 세계에서, 인류를 쓸어내버릴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세계에서, 인류가 만든 독극물이 생물을 점차 죽여가는 세계에서. <패시브>의 세계선도 마찬가지다. "팍스 아메리카나" 라는 이기적인 기치 아래 자행된 바이러스 프로젝트. 어쩌면 팍스 아메 어쩌고가 아닌, 모든 인류의 소망ㅡ 어떤 상처든 병이든 금세 회복하고 늙지도 않는, 그래서 소중한 이들을 잃지 않는ㅡ을 상징하는 프로젝트. 결국 실패하여 인류의 목젖을 가르고 들어오는 칼날이 된 프로젝트.
실제로 이런 바이러스가 있다면 지금 당장 모처에서 실험이 은밀히 진행될 것만 같다. 저스틴 크로닝이 그려낸 <패시지>의 세계선은 현실을 똑닮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옆집에 사는 가정.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 대중교통을 통해 갈 수 있을 여러 장소. 급격하게 무너지고 변하는 체계. 각자의 인생관에 기인하는 쇠락한 세계에 대한 적응 방식. 이를 고스란히 도려내어 붙인 <패시지>의 세계선에 그가 우리를 초대하는 방식은 너무나 섬세하다. 현재와 아득한 과거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교차시켜 서술하고, 전지한 시각으로 인물에서 인물로 옮겨다니며 내면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인류를 관조하는 신이 된 기분과 등장인물이 된 기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독자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집단의 일원이 되기도, 이기적으로 모든 것을 수단 취급하는 인간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뱀파이어(바이럴)로 변해가는 느낌조차 생생하다.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감각적인 비유와 묘사의 문장은, 독자의 오감을 잡아채 뇌 내 한켠에 영사기를 틀어주는 것만 같다.
신이시여, 삼부의 종착지로 인도하소서
"노아"라는 프로젝트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패시지>엔 기독교적 상징과 은유가 가득하다. 그러나 괜히 기독교? 그럼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나? 하고 망설일 필요는 없다. 기독교적 요소는 본래 이야기의 잎맥을 이루는 성분인 양, 참으로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있으므로. 기독교적 해석을 하지 않아도 <반지의 제왕>을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 즐거이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그럼에도 <패시지>에 그려진 장대한 역사 속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신이시여... 하고 중얼거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인류의 거대한 역사 속에서, 믿기지 않는 사건을 마주한 인간들이 제각기 믿는 신을 부르짖으며 평화와 안녕을 갈구했던, 그 심정으로.
그리하여 신이시여... 를 중얼거려 본다. 2부 <트웰브>와 3부 <시티 오브 미러>에 대한 열병 같은 기대를 견딜 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