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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내가 더 사랑해서
고성만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5년 2월
평점 :
텔레비전에서 봤던 <인간시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삶의 한 능선을 넘어가는 작가가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조근조근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무슨 교훈이나 경계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저그런 이야기로 들린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마치 4교시 체육을 하고 점심을 먹고 맞은 5교시 국어시간, 맘 좋은 선생님께 졸라 그의 닳고닳은 첫사랑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솔솔 잠이 오다가도 어느 순간 눈과 귀가 쫑긋하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학업을 위해 어려서 혼자 올라온 대도시의 경험, 따돌림과 폭력, 첫사랑과 대학생활, 초보 교사 시절, 동네 호숫가 산책 이야기, 동네 카페 이야기 등 그저 그런 이야기인데 왠지 마음이 가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봄날 홀로 조용히 읽을만한 책이다.
수업 시간에 어떤 학생이 손을 번쩍 들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고추 보여주세요." 여학생이, 그것도 아주 맹랑한 얼굴을 하고. 당황해서 멍하니 있는 나에게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다음 말을 던졌다 - P71
5월 27일 밤 월산동 사거리에서 탱크 몰고 계엄군 들어 오는 소리가 들려 창밖을 기웃거렸는데 최락희 아저씨는 다시 한번 경고하셨다. "밖으로 기어 나오면 대갈통 깨버린다!" 이번 경고에도 우리들은 건너편 건물 옥상 이마에 태극기 질끈 동여맨 사람들이 궁금해 그분들께 다가갔다. - P76
"우리가 왜 헤어졌죠?" 먼저 연락을 끊은 사람이 누군데, 내가 물어야 할 말 아닌가? 오랜 세월 후 이제야 헤어진 이유를 묻는다. 뭐라 대답해야 할까? 할 말이 없어 나는 둘러대었다. "운명, 아닐까요!"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고,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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