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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은 맛있다
강지영 지음 / 네오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강지영의 소설이 재밌단 소문을 듣고 읽게 됐다. 담담한 문체가 첫눈에도 마음에 들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드러나는 이야기의 흡입력 또한 대단했다. 소문에 솔깃하여 책을 선택했어도 크게 기대는 안 했다가 뜻밖에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책을 읽다 멈춘 동안에는 뒷이야기가 궁금해 머릿속이 온통 이 책에 대한 생각뿐이었고,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자꾸만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역습에 역습을 당하느라 휘청거렸으며 미리 스포일러 당하지 않기 위해 시야 안에 들어오는 다음 페이지를 애써 무시하느라 부처님 가운데 토막인양 참을성과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단언컨데 올해 읽은 책 중 재미만으로 따진다면 으뜸일정도로 재미있었다.
살인사건 현장 청소 아르바이트생 박이경은 어느 날부터 자신과 정반대로 재력, 미모, 학벌 등 모든 걸 갖춘 연예인 지망생 단아름다운의 몸속에 들어간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그녀 역시 자신에 대한 꿈을 꾼다는 걸 눈치채게 된다. 다른 것은 박이경이 꾸는 꿈이 단아름다운의 6개월 전 과거라면, 단아름다운이 꾸는 꿈은 박이경의 하루 뒤, 즉 미래라는 것. 이 반년간의 차이와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 그에 얽힌 살인사건으로 인해 동화처럼 아름답기만 하던 꿈은 점점 악몽으로 변해가고, 급기야 꿈을 통해 서로의 몸과 시간을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사건은 점점 급박해져 간다.
꿈으로 한 몸을 공유한다는 설정은 다른 창작물들에서도 몇 번 본적 있었지만, 반년이라는 시간차와 전화를 통한 시간의 편집이란 규칙이 곁들여지자 상당히 독창적인 설정으로 재탄생 한다. 강지영은 서로에게 보이면 안 되는 비밀을 감추고 서로를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할 수 있게끔 하는 이 규칙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소설의 미스터리 한 분위기와 긴박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덕분에 읽는 사람은 강지영이 쳐놓은 함정에 걸려 이야기의 늪 속으로 점점 깊게 빠져들어 버리고 만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의 삶을 동경하고 부러워하곤 한다. 잘 나가는 지인을 부러워하고,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연예인들을 동경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심리에서 출발하여 구운몽과 비슷한 도착점을 갖는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부러워하고 동경했던 삶이 막상 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허울뿐이더라는 진리를 보여준다. 하지만 구운몽이 꿈에서 깨어나 모든 것을 돌릴 수 있었던 반면 이 소설은 꿈에서 깨어나도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는 현실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의 후반부와 결말이 약간 아쉬웠다. 주인공이 구운몽처럼 꿈에서 깨어나 진짜 본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들어 이야기의 전체적인 조임이 살짝 느슨해진 것도 아쉬웠다.
강지영의 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소설이 아주 재밌고 짜임이 좋긴 하지만 <심여사는 킬러>라는 작품에는 못 미친다고 한다. 이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감탄하고 즐겁게 읽었는데 이보다 더 나은 소설이면 대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런지 궁금해진다. 오래간만에 재미난 한국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아주 즐거웠고 앞으로도 강지영의 소설을 쭉 찾아 읽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