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 우정, 공동체, 그리고 좋은 책을 발견하는 드문 기쁨에 관하여
웬디 웰치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책에 대한 책 이야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중에 하나다. 그래서 이 책을 출간될때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걸 보며 어머, 이 책은 반드시 읽어봐야 해! 라고 결심했다. 하지만 표지를 살펴보던 중, 표지의 제일 윗부분, 사람으로 치자면 이마 정도의 위치에 <우정, 공동체, 그리고 좋은 책을 발견하는 드문 기쁨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떡하니 쓰여있는 것을 발견해버리곤 꼭 읽어보리라던 내 결심이 우르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요상한 자연주의자들이 쓴 책인 것 같기도 하고, 오글거리는 이웃간의 일화들만 잔뜩 들어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하필 표지의 저 문구를 발견하고 바로 읽은 리뷰가 하느님 어쩌고 하는 기독교 사상 폴폴나는 내용이라 진동은 두배로 빨라져 버렸다. 

 

진정 네 것이라면 너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what's fer ye'l no gang by ye.) 라는 이 책 속에 쓰인 스코틀랜드 속담처럼 결국 나는 우연이 겹쳐 이 책을 읽게 됐고, 부제 때문에 읽지 않았다면 좋은 책을 읽는 커다란 즐거움 하나를 놓쳐버렸을 거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다음번에 재판이 된다면 부제는 표지에서 깨끗하게 지우고 띠지정도로 넣어주면 좋겠다. 저 문구 때문에 책을 손에 들었다가 미간에 지렁이를 그리고 놓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분명히 있을테니까. 번역도 좋고, 책의 편집도 좋은데 부제를 표지에 아로새겨 놓아 책의 정체성을 의심받게 만든것은 정말 좋지 않은 선택이였다고 본다.

 

어이없고도 재밌고도 분한건 이 책의 주 내용이 내가 지금까지 열번을 토한 내 선입견과 부제의 절묘한 결합이라는 것이다. 자연주의자면서 독실한 기독교도인 저자와 저자의 남편이 빅스톤 갭이라는 고장에 작은 헌책방을 열면서 겪은 이웃들과의 일화와 책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니까. 그래서 이 책은 수필이기도 하고 사업체 운영에 대한 경영서이기도 하고 공동체 생활에 대한 지침서이기도 하고 사회의 부조리함을 꼬집는 비판서이기도 하다. 책의 분류는 둘재치고 소재들로만 따져보자면 내가 꺼리는 내용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 웬디 웰치의 유머러스하면서 담백한 필체로 쓰여진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소박하지만 정다운 마음을 읽노라니 모든걸 초탈하게 됐다. 무엇보다 그녀가 책방을 차릴 결심을 하기까지에 과정과 외부인에 대해 경계하며 선을 긋는 작은 마을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기 위한 노력, 그리고 한국도서 시장과 크게 다를바 없는 미국의 도서시장 얘기까지, 모든 이야기가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게 상당히 흥미로웠고 저절로 공감대가 형성됐다.

 

한 10년전만 하더라도 미국이란 나라가 대한민국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나라이자 선진국이란 이미지가 있었다. 그때는 미국의 문화를 다룬 책들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재밌던지. 지금에 와선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하는 깨달음 같은걸 얻었지만 내가 10년전보다 머리가 굵어져선지 인터넷이 발달해서 그런건지, 해외여행이라는게 보편화되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 모든게 다 합쳐진 결과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사람사는 곳은 미국이던 우리나라건 다 똑같구나, 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 참 좋았다. 공감을 할 수 있다는건 책의 내용을 보다 깊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든든한 동료가 생긴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니까. 모든걸 떠나서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공통된 취향에 대해 늘어놓기만 해도 저절로 서로가 이해되고 즐거워지는 법이다.

 

일본작가들은 에세이집 같은 형식의 글들을 1-2년에 한번씩은 출판하던데, 이 책의 저자 웬디 웰치의 책도 그런식으로라도 더 많이 출판되고 접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유머러스하고 인간적이며 중립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의 글을 만나는건 쉽지 않은 일이므로. 웬디 웰치의 의지가 선행 되어야 하겠지만 이 책 한권으로 그녀의 책과 이야기가 끝나게 되지 않길 바래본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책을 완독하고 빅스톤캡의 실제 사진들을 우연히, 정말 아주 우연히 보게 됐는데, 그 순간 <실제 사진을 보고 났더니 환상이 깨져버린 느낌을 받았어요>란 이 책의 어느 리뷰가 머릿속을 흝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다시한번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것을 절감했달까. 그래서 이 책이 더 가깝고 정겹게 느껴졌으니 깨진 환상도 나쁘진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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