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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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원제는 "Think of a Number", 원제도 나쁘진 않지만, 번역본의 제목이 훨씬 더 이 책의 분위기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원제보다 더 기발하고 극적인 제목이되, 이 책의 내용과 분위기를 그대로 실어낸것은 물론이요, 깔끔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표지디자인까지 어우러져 이 책의 매력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원작보다 나은 번역본이란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싶다. 덕분에 나는 순전히 이 책의 이런 맛깔나는 만듦새에 흥미가 동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데이브 거니라는 40대 후반의 중년 남성이다. 그는 은퇴한 전직형사로 경찰관계자들 쪽에선 이름만 대도 그를 알아볼 정도의 실력자였으나 지금은 뉴욕 근교의 한가한 전원마을에서 아내와 함께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대학시절 동창이 갑작스레 연락을 취해와, 누군가에게 기묘한 협박을 받았다고 도움을 요청한다. 거니는 아내와의 갈등 때문에 사건의 테두리에만 머무르려 하지만,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동창이 범인에게 살해당하게 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건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게 되고 이야기는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수수께끼는 책의 표지에도 적혀 있듯이, 범인이 어떻게 피해자들의 생각한 숫자들을 알아맞췄는가다. 이것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내 머릿속에서 계속 제기 된 의문이기도 했다. 이 수수께끼의 트릭 중 하나는 너무 뻔해서 곧바로 눈치챘지만 첫번째 트릭은 도저히 알아차릴 수가 없어서, 궁금증에 목이 말라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뭘까 어떤 트릭을 썼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 트릭이 두번째 트릭보다 더 간단하고 사실 트릭이라고 할만한 것도 아니였다는걸 알게 된 후엔 김이 푹 새버렸다. 조금씩 조금씩 긴장도가 쌓여서 풍선이 빵 터져버리길 바랬는데 바람이 저절로 새어나가서 쪼그라들어버린 기분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그 쪼그라든 풍선이라도 아직까지 썩 나쁘진 않았기에, 나는 다시 열심히 책을 읽으며 빵 터지는 긴장감과 재미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트릭이 시시하게 끝났어도 대망의 범인 검거 에피소드가 남아 있었으니까. 대체 범인의 목적은 뭘까, 동기는 무엇을까, 서서히 기대감에 다시 풍선이 터지려고 할 때쯤, 다시 또 푸슈슈슉 하고 바람이 빠져버렸다. 이번엔 시시해서가 아니였다. 지루해서였다. 내가 CSI같은 범죄수사물을 너무 많이 봐서였을까. 아니면 작가가 너무 전형적인 설정을 사용했기 때문일까. 아, 정말 막판에 범인하고 대화하고 설득하며 시간을 번다는 설정은 너무 캐캐묵은 클리셰 덩어리였다. 게다가 그 대화들 역시 너무나 많은 영화나 드라마들을 통해서 나왔던 거라 별감흥도 없고 손에 땀을 쥐는 긴박감도 없이 하품만 나왔다.    
 
이 책을 읽으며 패키지 게임이 온라인 게임에 밀리게 되면서 어느 패키지 관련 개발자가 했다는 말이 기억났다. 사람들은 패키지 게임이 갖는 엔딩이라는 한계 때문에 온라인 게임에 밀릴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패키지 게임의 엔딩을 보기위해 노력하고 즐겼던 시간을 잊는다고. 나는 분명 이 책을 즐겼다. 비록 초반부의 산만하고 지루한 부분을 견뎌내지 못하고 책을 덮을 뻔 하긴 했지만, 그 이후에 나온 내용의 상당부분을 즐기면서 읽은 것 사실이다. 하지만 책의 엔딩과 그 엔딩을 보기 위한 가장 큰 비밀이 어이없게 해소되고 그와 동시에 긴장감도 사라져버리고 나니, 실망감에 이제까지 읽고 즐겼던 시간들이 사라지는 기분이였다. 그러니 어떻게 책을 재밌게 읽었던 그 과정에만이라도 의미를 둘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과정조차도 마냥 즐겁게 즐기기만 한 것이 아니였다면? 이 책 덕분에 결말 못지 않게 이야기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앞서 언급했던 장면 못지 않게 전형적이다. 완벽하지만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주인공, 그런 주인공에게 대놓고 딴지를 걸어대는 악역보다 못한 아군들, 이렇게 세상풍파에 시달리는 주인공에게 쉴곳을 마련해주고, 값진 충고를 해주는 전형적인 모습의 아내 등등. 전형적인 헐리웃 영웅물의 캐릭터들이다. 너무 전형적이라서 작위적이라고 느껴질만큼. 아무래도 작가의 나이와 그간의 경험들로 인해서 이런 고루한 설정들이 만들어진 듯 싶지만, 솔직히 지루하고 불편했다. 이 설정들이 책의 삼분에 일 이상을 낭비할만큼 탁월해보이지도 흥미롭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런 부분들을 잘라버리고 이야기를 압축하는 하여 이 책에 속도감을 주는 편이 훨씬 더 나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막판에 전형적인 클리셰를 차용했어도 너그러이 수용했을텐데. 그랬음 내 기대감의 풍선도 그렇게 바람이 빠지진 않았을텐데. 그랬다면 책의 엔딩을 위한 과정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을텐데.
 
나는 아마 이 책이 영화화 된다고 해도 썩 놀라진 않을 것 같다. 딱 헐리웃 취향의 스토리와 캐릭터들이 등장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화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 책을 읽는 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마도 후속작이 이 책보다 훨씬 더 낫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오르내리지 않는 이상, 없을 것 같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계속 읽어볼만큼 매력을 느끼진 못했으므로. 그러니 이 시리즈와는 이렇게 첫만남과 함께 안녕을 고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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