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포의 보수 일기 - 영국.아일랜드.일본 만취 기행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만취 여행 에세이라는 재기발랄한 부제와 밝고 선명한 표지가 눈길을 끌었다. 작가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온다 리쿠랜다. 그동안 온다 리쿠의 작품들과 인연이 없었던 나는 호기심에 냉큼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호러 미스테리 물에는 잼병인 관계로 온다 리쿠의 작품들이 궁금하긴 했지만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었는데 이 책이라면 그런 나라도 맘편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매력을 알게 된 후라면 아무리 호러 미스테리 물이라도 약간은 마음 편하게 읽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바램도 있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비행기 공포증인 온다 리쿠가 영국과 아일랜드로 첫 세계 여행을 떠나는 부분과 일본내의 유명 맥주회사 지방 3곳을 도는 부분이 그것이다. 이 두 부분은 단순히 해외와 일본내라는 공간의 차이만으로 구분되는 것 뿐만 아니라, 여행의 목적과 글의 전개에도 큰 차이를 보인다. 애초에 이 책의 제목과 표지를 담당하게 된 중심 이야기는 비행기 공포증 온다리쿠의 해외여행이라는 것이고, 그 여행을 떠난 목적 자체가 다음 작품을 위한 취재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덕분에 책의 첫번째 부분에 한해서 이 책은 여행 에세이라는 큰 구분에 맞는 책이 아니라 소설가의 발상기록 에세이라는 편이 더 적합할 정도로 온다 리쿠의 발상과 그것의 흐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를 담당하는 일본내 맥주 여행은 각각의 맥주와 그 맥주가 나는 지방을 여행한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따라서 이 책을 단순히 만취 여행 에세이라는 액면가 그대로의 모습만 믿고 읽게 되는 사람은 살망할지도 모른다. 만취 여행은 후반부에만 등장할 뿐이니까. 그것도 술이나 여행에 대한 깊은 이야기보다는 그냥 먹고 봤다는 가볍고 단촐한 이야기 뿐이다.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나오는 것은 오직 온다 리쿠의 여러가지 잡념과 생각, 생각, 생각들뿐이다. 그것도 이 책이 쓰여질 당시의 일본문화와 얽힌 생각들이라 그 당시 일본문화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그녀의 재치넘치는 농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중간중간 김이 빠졌다. 마치 한국문화의 트랜드를 제대로 모르는 외국인들이 무한도전을 시청한 기분을 느꼈다고나 할까.
공포의 보수 일기는 2005년도에 일본에서 출간된 책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출간된 것은 2011년. 온다 리쿠처럼 우리나라에서 인기있는 작가의 책이 이처럼 늦게 출간된 이유가 무엇일까. 한가지 분명한것은 늦게 출간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느꼈음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도 다시한번 절감해야했다.
원숭이 연구가 일본에서 특히 발달한 것은 일본인이 원숭이에게 이름을 붙인 데서 출발한다. 그때까지 서양 연구자들은 연구대상인 야생동물 무리에 한마리, 한마리 이름을 붙인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던 모양이다. '감정 이입'은 일본인의 키워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농경문화의 역사가 길어 가축도 가족의 일부처럼 대해온 일본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포로를 잘 다루지 못한 것은 대상에 '감정 이입'하는 바람에 이해 불능인 존재가 무서웠기 때문이라는 설은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p62~63
책의 후반부에 떠난 삿포로 여행부분에선 제2차 세계대전 중 삿뽀로에 살던 여성들이 임무를 다하고 자결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신들은 근현대사를 거의 배우지 못한 세대이므로 이렇게 묻혀 있을 사연들의 존재를 모른다며 안타까움의 뉘앙스를 풍기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자, 그렇다면 일본인이 쓴 너무나 일본적인 이 책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을까. 온다 리쿠의 무지에 대해서 안타까워 했어야 옳았을까? 아니면 그런 생각을 지닌 인간의 책을 사서 인세가 돌아가게 만든 나 자신을 탓해야 했을까. 나는 그냥 스스로를 탓하기로 했다. 역사적으로 무지하거나 혹은 아주 얄팍하게 알고 있는 일본인이 쓴 책을 읽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읽은 내 탓일 수 밖에. 그나마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접하지 않고 이 책을 먼저 접해서 옥석을 가릴 수 있게 된걸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파란 하늘을 배경을 주황색 띠지로 밝고 명랑하게 싸여있던 이 책을 처음이자 끝으로 온다 리쿠의 책과는 안녕을 고하기로 했다. 첫만남은 참 좋았는데 말 몇마디 나눠보았더니 나와는 도통 맞지 않는 사람이였으므로. 솔직히 이런 내용의 책을 왜 번역해서 출간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순수하게 이 책을 들여다 보아도 이 책은 문제가 꽤 있었다. 번역도 매끄럽지 못하고, 맞춤법도 군데군데 틀린 곳이 자주 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자그마한 흑백 여행 사진은 대체 보라는 건지 말라는건지 제대로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그야말로 빛좋은 개살구라는 말처럼 센스있는 표지와 띠지가 이 책의 전부인 책이였다. 제법 괜찮았던 그녀의 글솜씨도 그녀의 무지와 얄팍한 역사의식에 빛이 바래버렸으니까. 그런고로 나는 이 책에 별 2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