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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아이반호를 쓴 작가 월터 스콧은 역사속의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지 말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 인물이 가진 역사적 한계 때문에 이야기가 일정한 틀 이상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요즘 TV 드라마들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사극의 범람이라고 불릴정도로 다양한 사극들이 나와 있고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 극적 재미를 위해 심한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개중엔 드라마 시작 전에 이것은 모두 픽션이라고 미리 자막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고 그러다보니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TV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진실이라고 쉽게 믿어버린다. 이에 대해 제작자들은 시청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역사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으면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그 사건을 논픽션으로 놓고 이야기를 진행하지 않는다. 책의 첫머리부터 이것은 실제로 있을 뻔했던 일이지만 결코 진실은 아니라는 전제를 깔아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역사적 인물들과 배경도 등장하긴 하지만 거의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 시대의 풍속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야말로 윌터 스콧의 조언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이것을 진실로 믿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중삼중으로 경계하고 있다. 자신이 피고름으로 만든 이야기에 애착이 없는 사람이 어딨으랴. 하지만 이 책의 작가 짐 퍼거스는 정확하게 선을 긋고 있다. 이 이야기는 결단코 픽션이라고.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여러 TV 제작자들과 허무맹랑한 역사판타지 소설을 쓰면서도 진실이라고 빡빡 우겨대는 김모작가가 본받아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굉장히 좋아한다. 기차가 다니고 현대식 문물들이 사람들에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의 옷차람은 아직도 드레스와 정장차림인 시대. 그러니 시작부터 이 책은 나에게 꽤 많은 점수를 따고 들어간 셈이다. 비록 그런 문명사회에서 인디언들의 세계로 배경이 거의 돌진하다시피 바뀌어 버리지만, 그 시절의 풍속과 이야기들은 나를 매혹하기엔 충분했다. 여기에 이 책의 주인공인 메이 도드는 역시 이 책에 대한 호감을 더했다. 씩씩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며 다른이의 다름을 기꺼이 포용하고 이해하는 그녀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이야기 도입부에 그녀가 여동생에게 가족들을 조롱하는 듯한 편지를 휘갈기때는 살짝 울컥했지만, 그녀가 가족들에게 당한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그녀를 이해하게 되고 말았다. 그 시대는 로맨틱하긴 하지만, 확실히 그녀같이 진취적인 여성이 살아가기엔 힘든 시절이였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보다 이 책의 번역이 마음에 들었다. 보통 번역서를 읽게 되면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데 이 책에선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짐 퍼거스의 글솜씨가 나와 잘 맞는 스타일인가보다 하고 넘겼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번역가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무엇보다 문장 하나하나가 깔끔하게 번역되어 참 읽기 편했다. 마침 번역가의 다른 번역서들을 살펴보니 우연히도 내가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도 있었다. 어서 읽어봐야지. 물론 이 책의 작가 짐 퍼거스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아무리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풀었다지만, 이만한 이야기를 이렇게 재밌고 흥미롭게 푸는 작가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단, 다음에 만날 때도 번역은 이 책의 번역가 고정아씨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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