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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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리틀 포레스트
혜원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꽁꽁 언 땅에서 뽑은 배추로 끓인 배춧국이다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집에 그럴싸한 식재료가 없을리 없다 혜원은 눈 쌓인 땅속을 뒤져 용케 남은 배추 하나를 쏙 뽑아낸다 나는 그 여리고 싱싱한 잎이 꼭 혜원처럼 보였다 춥고 시린 서울의 겨울을 나면서도 끝내 시들지 않고 단단하게 버텨낸 청춘 말이다
허둥지둥 만든 배춧국을 따뜻하게 들이마시는 혜원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퍼져나간다 음식이 주는 온기를 목으로 흘려 넘기는 순간, 혜원은 오랜만에 자신의 몸 안에 따뜻한 피가 돌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빼어난 한 그릇 음식은 몸의 허기뿐 아니라 마음의 허기까지 어루만질 때 더 완벽해진다

바베트의 만찬
예술이 삶에 실용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이건 분명하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영화관과 영화에 대한 나의 회의감은 앞으로도 불쑥 나를 엄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은 사람과 사랑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게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2020년 끝자락에서 <바베트의 만찬>은 내게 그 사실을 주지시켰다 카렌 블릭센은 이런 말을 남겼다 '매일매일 조금씩 써보라 희망도, 절망도 느끼지 말고' 이 마음으로 불확실하고 두려운 시기를 견뎌가고 싶다 희망도, 절망도 느끼지 않은 채로 하루하루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모두는 곧 다시 연결될 것이라는, 가느다랗지만 꽤 단단한 믿음으로

봄날은 간다
라면 취향이 다른 사람과는 겸상 나아가 장기 연애는 절대 불가능하다 라면에 무슨 취향 같은 게 있냐는 말은 하지도 마라 라면은 무얼 어떻게 조립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트랜스포머 같은 음식이다 물의 양부터 끓이는 시간까지 모든 것이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다

라면 봉지 뒤에 왜 조리 방법이 기재되어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최적의 맛을 위한 레스피만이 아니다 서로 다른 라면 취향으로 싸우는 이들 때문에 입장이 곤란해진 라면 회사의 현명한 중재안일 것이다 취향이 극명하게 갈린다면 심플하게 레스피대로 끓여 먹는 것을 국론으로 하자 라면도 그걸 원할 거다
라면처럼 쉽고 간편한 음식도 함께 먹으려면 이렇게 까다로운 음식이 되어버린다 별다른 논쟁 없이 서로가 만족하는 사랑은 어떻게 가능할까?

연애의 온도
함께 무언가를 나눠 먹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내 입에 맛있는 것을 너에게도 주고 싶은 마음. 관계 안에서 그만큼 서로를 끈끈하게 연결하는 행위는 드물다 그래서 누군가와 만나며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말 또한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가 아니겠는가. 싫은 사람에게 그 얘기를 선뜻 건넬 확률은 글쎄, 나의 경우엔 제로에 가깝다

프리랜서 영화 전문기자가 쓴 영화와 음식에 관한 글과 그림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책으로 만나는 영화 그리고 음식 이야기 속에 전해지는 따뜻함
좋아하는 사람과 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기쁨처럼 힐링이 된다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는다면, 또 죽을 때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봤는데 세상에는 너무나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소박한 음식이 좋다는 것
김밥, 떡볶이, 돼지갈비, 옥수수 등등
먹고 싶은 거 적는 순간 집김밥이 너무 먹고 싶다 사먹는 것도 맛있지만 그럼에도 집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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