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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동물과 로봇 그리고 인간,
종을 넘어선 이들의 아름답고 찬란한 회복의 연대
P20 규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 질서는 모두가 약속된 규정을 어기지 않아야 유지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콜리에게도 그런 규정이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P69 경마경기의 약점은 기수가 인간이라는 점에 있었고, 이는 말이 최고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하는 방해요인 중 하나였다 인간보다 작고 가벼우며, 떨어진다 한들 생명과 연관되지 않는 새로운 기수가 필요했다 기수 휴머노이드는 평균 1500센티미터의 신장과 탄소섬유로 이루어자 몸체 덕분에 인간보다 훨씬 가벼웠다 말이 달릴 때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부드러운 관절, 말의 목덜미를 매만질 수 있도록 상체보다 길게 제작된 팔. 색으로 기수를 구분하기 위해 만든 투구. 존재 자체가 말을 타기 위해 만들어졌으므로 낙마해 부서진 기수는 그대로 폐기처분 됐고 머지않아 새로운 기수가 등장할 거였다
P83 소방관이 놓지 않았던 보경의 3%에는 실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보경은 언젠가, 한강 노을을 바라보며 바퀴를 열심히 굴리는 아이들이 멈추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다고 소방관에게 말했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P113 삶의 격차라는 것이 어느 틈을 비집고 생기는 것인지 한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똑같이 학교에 다니고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부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떤 아이들에게는 다가갈 수조차 없을 만큼 차이가 났다 우리 부모님도 돈을 벌고, 우리 부모님도 나를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같은 나이에 이만큼 차이가 나는 걸까 그 의문이 연재의 생각을 좀먹기 시작한 후 연재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손가락으로 헤아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조차 포기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전부 다 접어도 가지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P172 긴 병은 가족 사이의 부채를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잖은 상처를 줬지만 그 상처를 해결할 틈도 없이 새로운 상처가 쌓였고, 이전에 쌓였던 상처는 자연스럽게 묻혔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충분히 빚을 덜어낼 기회가 있을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힘내라는 말이 영혼 없이 습관처럼 나왔고 화낼 일이 아닌데도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그렇게 슬프지 않은데도 걷다가 괜히 벤치에 주저앉기도 했다 그때마다 의사의 말을 떠올리며 참았다 끝이 있는 고난이라 다독일 수 있었다
2035년 경마 경기의 기수가 사람 대신 더 가볍고 위험하지 않은 휴머노이드로 대체 되고 말은 100km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된다
사람과 말, 로봇의 아름다운 연대를 그린 가슴 따뜻한 소설이다
우리가 잘못으로 코로나19와 유래없는 긴 장마와 태풍을 겪으며 지구와 동물들과 공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요즘, 우리 아이들은 어떤 세상을 살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희망'이 보였다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조금은 천천히 나아가면 어떨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