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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 - 느긋하고 경쾌하게, 방구석 인문학 여행
박균호 지음 / 갈매나무 / 2020년 7월
평점 :
느긋하고 경쾌하게,
방구석 인문학 여행
독서는 일상에서 가장 실천하기 쉬운 인문학적인 행위이다
책을 한 권이라도 읽으려고 골라본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인문학적인 행위를 한 것이다 어떤 책을 고를지 잠시라도 고민을 하다가 결정하는 것,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서 한 줄 글을 쓴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한마디 말을 하는 것도 인문학적인 행위이다
독서가의 '집콕'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잠적이 아니라 지식의 향연을 즐기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P44 17세기에 들어서자 책을 상품처럼 보이기 하기 위한 장치들이 속속 등장했다 다른 인쇄업자가 만든 책과 자신이 만든 책을 구별할 수 있도록 오늘날의 출판사 로고 비슷한 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책 내용을 독자들에게 맛보여주고 홍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최대한 제목을 길게 지었다 우리가 <돈키호테>라고 알고 있는 소설의 원래 제목은 '재기 넘치는 라만차 출신의 기사 돈키호테'이다 18세기 들어서 이 마케팅 기술은 더욱 발전했다 <로빈슨 크루소>의 원제목을 알려줄 테니 놀라지 마시라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그려낸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 조난을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자신은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강 가까운 무인도 해변에서 28년 동안 홀로 살다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사연' 이 정도면 제목이 곧 줄거리이자, 요즘 말로 스포일러다
책의 '서문'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출판업자와 저자들은 책 안에서 독자들과 친밀감을 높이는 사적인 공간으로 서문을 만들었다
책이 대중화되면서 인쇄업자 간의 경쟁도 치열해졌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저작권'이다 16세기에 이미 책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가 인정되었고 매매도 이뤄졌다
최초의 책은 사실 인간 자신이다 책이라는 물건은 정보를 보존하고 전달하는 장치인데 사람은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왔기 때문이다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엇에 관한>를 읽으면서 알게 된, 간단하지만 재미있는 지식 하나는 'book'이 '예약하다'라는 동사의 뜻으로 쓰이는 이유가 예약 내역을 장부에 기록한 옛날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P110 패션을 선도한 유럽에서 가방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나폴레옹 3세의 왕비 외제니 황후의 전속 포장 직공이었던 루이뷔통이 파리에 여행용 가방 가게를 개업한 1894년이다 15~16세기에 이미 조총을 만들었던 일본이 가방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나쓰메 소세키가 영국에 유학을 갔을 때 가장 신기했던 건이 '가방'이었다고 한다
가방은 물건을 '넣는' 물건이고 보자기는 '싸는' 물건이다 넣는 것과 싸는 것은 둘 다 물건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같은 개념으로 보이지만 가방은 딱딱한 것이어야 하고 보자기는 부드러운 것이어야 한다 소중하고 값비싼 물건을 딱딱한 금고나 가방에 두면 안전하겠지만 살아 있는 것을 상자나 가방 안에 넣으면 감옥이 된다 반면 보자기는 마치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게 감싸준다
짚신과 고무신도 보자기의 포용을 닮았다 서양의 구두는 오른쪽과 왼쪽을 엄격히 구분해서 서로 바꿔 신을 수 없지만, 짚신과 고무신은 오른쬐, 왼쪽 발을 모두 받아즐인다 보자기가 네모난 것이든, 둥근 것이든, 딱딱한 것이든, 부드러운 것이든 상관없이 품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P115 보자기라는 말이 '복복'이라는 글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의심되지 않는다 새로운 좋은 물건이 많은 현대에서도 귀한 물건을 전할 때 보자기로 싸는 이유는 보자기가 복을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집구석에서 떠나는 인문학 여행
책은 일상에서 가장 쉽게 떠나는 인문학 여행에 동의한다
책의 표지를 보고 고전을 재해석한 독서 에세이인줄 알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나의 독서는 글씨만 읽어왔던게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이야기를 책과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동서고금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더욱 흥미로웠다
무조건 읽어야 할 책이다 진짜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