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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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한 하급 여신, 킬케
그 안에 숨죽인 마녀가 깨어난다

P110 마법은 머릿속에 떠올리고 눈만 깜빡이면 되는 신적인 능력이 아니다 마법은 만들고 작업하고 계획하고 모색하고 파헤치고 말리고 다지고 빻고 끓이고 그 위에 대고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걸 다 했어도 실패할 수 있다 신들의 방식과는 다른 점이다 약초가 신선하지 않으면, 내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의지가 약하면 묘약이 내 손안에서 상해 퀴퀴한 냄새를 풍긴다

P282 이 세상은 신비로 이루어졌고 나는 수백만 개의 수수께끼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으면 그는 실망한 척했지만, 나도 어느덧 알아차렸다시피 묘하게 재밌어하는 눈치였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은 그 자체로 신기한 장치였고 일종의 위안이었다 온 세상이 그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도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P294 시인들은 잠을 죽음의 형제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느끼기에 그 컴컴한 몇 시간이 생의 마지막에 기다리는 정적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잠은 그의 인생과 닮아서 엎치락뒤치락했고 늑대들이 귀를 쫑긋 세울 정도로 잠꼬대가 심했다 나는 진주색 여명 속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잔뜩 긴장한 어깨. 레슬링 시합에서 쓰러뜨려야 하는 상대 선수라도 되는 듯 잡고 비트는 홑이불. 나와 함께 지내는 일 년 동안 평화로운 날들을 보냈음에도 매일 밤은 여전히 전투 태세였다

기원 전 8세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영감을 받아 쓴 키르케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와 님프 페르세의 딸로 키르케는 서열상 말단으로 노리개가 아니면 사냥감인 님프였다
서구 문학계 최초로 등장한 마녀로 키르케는 질투와 변덕이 심하고 결혼해 남편의 후계자를 낳는데 만족해하는 기존의 여성의 틀에서 벗어나 자기 섬에 찾아온 남자들을 돼지로 둔갑시키는 남성들이 두려워하는 능력자였다

그동안 조연에 불과했던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여성 대서사시, 키르케 풍부하고 완벽한 스토리로 빠져들수밖에 없다
#아킬레우스의노래 의 감동을 다시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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