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얼굴들
황모과 지음 / 허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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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바람이 불 때마다
밤의 얼굴이 한 장 넘겨진다

P22 죽은 자들이 잠들어 있는 땅에 둘러앉아 죽은 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뭐가 그리 필사적일까? 내가 남은 생에 큰 희망이 없어서일까? 미동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차가운 눈빛에 익숙해진 탓일까? ~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

P52 노인들을 대상으로 치매 예방 및 치료를 위한 해마 업그레이드 및 메모리 증설 시술이 보편화되었다 덕분에 치매 발병률은 낮아졌고 평균수명은 늘어났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곧이어 신형 바이러스가 덮쳤다 몇 년 전부터 해마 분열증 환자수가 이전의 치매 환자수를 고스란히 대체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해마 분열증 말기다 분열증은 뇌 손상과 함께 신체 건강에 급속한 쇠약을 가져왔다 하지만 분열증 발병 이전부터 할아버지는 자기가 한 말을 잘 기억하지 못했고 맥락 없는 말을 잘했다 타인에게 상처 주는 언행도 거침없이 했다 죽음이 매 새벽처럼 찾아올 거란 선고를 받은 와중에도 노인의 감수성은 평생을 그래왔던 것처럼 일관성 있게 사납고 모질었다 ~ 당신의 기억은 유령

P116 무지와 공포는 연결된다 일반인들이 정확한 정보를 획득할 수 없을 때 각종 소문과 괴담이 늘어간다 음모론도 멀지 않은 곳에서 기웃거린다 ~ 니시와세다역 B층

P165 차마 다 해석되지 않는 것, 이가 빠진 것처럼 불명확한 것, 말로 다 전달되지 않는 것, 말로 표현하니 오히려 오해가 생기는 것, 누군가 조장한 의도적인 데마고기, 잘못된 교육시 만든 단단한 장벽, 100년이 흘러도 해결되지 못한 역사적 상처 해결이 간단하지 않은 문제들이 우리 사이에 쌓여 있다 그런 한계를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폴짝 뛰어넘는 존재가 나와 니상 사이에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해결은 요원하지만 사람과 맥락을 동시에 이해하려고 할 때 가슴으로 이해되는 정서들이 통역되어 성큼 다가온다 ~ 투명 러너

수록작 <모멘트 아케이드>로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중ㆍ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고 첫 소설집 <밤의 얼굴들>이 출간 되었다 만화가의 꿈을 안고 일본에서 오래 생활했기 때문인지 일본을 배경으로 사실적 역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sf를 선보인다 그동안의 대부분의 sf가 따라가기 벅차고 어려운 소재가 많았는데 이 책은 머지 않은 미래에 현실화될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Sf 속 가상 현실에서 아바타를 만나고 기억과 감각을 공유하고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 상처입고 소외 받은 사람들 그들의 고통을 덜고 감싸안을 수 있지 않을까 소설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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