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하지 않은 날 - 홍중규 단상집
홍중규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정한 시선으로 세상을 담은
홍중규 작가의 단상집

P19 촉촉이 비가 내려 마음까지 습해진 밤 봄비는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언젠가 봄을 운명이라 읽고, 비를 우연이라 읽은 적이 있었다 봄은 때가 되면 찾아오고 비는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곤 하니까. 비의 속성에 가까운 나는 봄의 속성을 가진 사람을 기다렸다 그러니 그 둘이 만나는 봄비는 애틋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봄비가 내리고 그치듯 사람도 만나고 헤어진다 또다시 비는 내릴 것이고 그에 맞춰 새로운 인연도 만날 것이다 그때는 봄비가 내렸던 날처럼 애틋함으로 인연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P24 앞으로 이 도시에 얼마나 더 머물지는 모르겠다 다만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이곳에서 조금 더 많은 인연을 편견 없이 엮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삶과 삶이 만나는 신기한 일이니까. 가능하다면 그 결들을 촘촘히 엮고 싶다

P57 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타인과 함께 쓰는 공간에서 사진을 찍는답시고 타인의 휴식을 방해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순간을 잡아두는 것이 매력적인 취미지만 그것이 타인의 순간을 방해한다면 악취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남의 평화를 깨는 것에도 무감할 정도의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는데, 하나둘 타협하다 보니 점점 그런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부끄럽다
가시적으로 내가 쥐고 있던 건 카메라였지만 실제로 내가 쥐고 있던 건 아마도 욕심이었을 것이다 악취미가 아닌, 취미를 하기 위해서 본연의 것을 퇴색시키지 않기 위해서 가끔은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갈수록 쥐는 것보다 놓는 게 어려운 일이 많아진다 이번에 나는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제법 무거운 것들이 많다

P78 행복의 상태를 한 단어로 정의할 때 항상 떠올리는 유유자적이란 말은 사람보다는 길고양이에게 어울린다 내심 부러우면서 외심 부럽지 않은 척했다

P112 같은 세상에서 만난 우리라도 서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를 수 있다 일찍 물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디게 물드는 사람도 있다 그건 차이이지 차등이 아니다 은행나무 한 그루가 조금 일찍 물들었다고 해서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 각자의 때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누군가를 밟고 빛나는 사람이 되기 보단, 스스로 빛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때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P120 오늘날 우리는 참으로 많은 말이 쏟아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겸손이 미덕이라는 것은 옛말이고, 지금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미덕인 시대인 것 같다

P130 무례한 세상에 점잖게 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P132 모두에게 존중받을 마음은 없지만, 나에게만큼은 존중받고 싶다 그러기 위해 어린 시절, 그 순수한 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P204 자신의 색깔을 찾고 지켜야 할 때다 순간의 선택이 모여 인생이 된다면, 취향에 대해 선택을 하기 전에 이게 나다운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가끔은 그 생각을 하지 못해 나다움을 잃어버릴 때도 있지만, 앞으로는 선택의 순간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려 한다 그다지 멋지지 않더라도 어찌 되었든 내 인생, 나답게 흘러가고 싶으니까

꽃에 대한 단상, 여행의 순간, 좋아하는 산책과 시선들, 숱한 감정들, 누군가와의 기억, 이제는 아련한 추억까지. 마음에 고스란히 쌓여 있던 이야기들을 담았다
사진과 마음이 드러나는 글들, 와닿는 글들이 너무 많다 흔한 책한데 흔하지 않은 글들에 깊이 공감했다 가까이 두고 자주자주 펼쳐 보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