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온도 - 얼어붙은 일상을 깨우는 매혹적인 일침
이덕무 지음, 한정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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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일상을 깨우는 이덕무의 매혹적인 일침

P24 이덕무를 몰라도 시를 보면 이덕무의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부귀, 영화, 출세, 명예를 좇으면서 욕됨 삶을 살기보다는 차라리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맑고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이덕무의 뜻과 기운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자는 작가가 글에 담은 뜻과 기운을 그대로 짐작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전혀 다르게 짐작하기도 한다 이덕무의 삶을 잘 모르는 사람은 간혹 내면 깊숙이 감춘 부귀, 영화, 출세, 명예에 대한 타오르는 욕망을 드러내는 시로 읽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 자신을 드러내다는 것우 지극히 위험하고 위태로운 일이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상 자신의 글이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피해갈 재간은 없다 그것은 탄생과 더불어 시작되는 글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작가인 나는 '나와 글의 운명'을 이렇게 생각한다

"글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生物이다" 언제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나의 글을 누군가가 읽는 순간, 그 글은 생명력을 갖게 된다 생명력을 갖게 된 글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아 움직인다 나의 글은 나의 수명보다 더 길고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내가 사라져도 나의 글은 살아남아 떠돌 것이다 비록 나에게서 나온 글이지만 누군가 읽는 순간 그 글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된다 어떻게 글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P93 사람들은 대개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를 짓는 방법과 법칙이 따로 있고, 그 방법과 법칙을 배우고 익혀야만 시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덕무는 시는 누구나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시다 시인은 그러한 시적 존재를 시적 언어로 묘사하는 사람일 뿐이다 단지 영처의 시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가식적으로 꾸미거나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고 자신의 감정, 마음, 뜻, 기운, 생각을 진실하고 솔직하게 드러내 묘사하면 된다 세상 모든 것이 시적 존재이고 세상 모두 사람이 시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덕무는 좋은 시를 고르고 모을 때 나이의 많고 적음, 신분의 높고 낮음,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따지지 않았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시인의 자질과 재능을 지니고 있다 시는 배우고 익혀서 짓기도 하지만, 구태여 배우고 익히지 않아도 지을 수 있다 배우고 익혀서 지은 시 중에도 좋은 시가 있고 나쁜 시가 있듯이, 배우거나 익히지 않고 지은 시 가운데에도 좋은 시가 있고 나쁜 시가 있다 여기에는 시를 볼 때 편견이나 차별 없이 읽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영ㆍ정조 시대에 활약한 조선 최고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참신하고 통찰력 있는 수많은 시와 산문을 남겨 중국까지 이름을 떨쳤고 한시 4가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얻었다
당대 최고 지성인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과 교류하면서 18세비 조선의 문예부흥을 주도했다 이덕무의 삶과 철학을 고전 연구가 한정주 작가님이 현대적으로 가치와 의미로 재발견하고 새롭게 해석해 <시의 온도>로 탄생했다
이덕무의 시, 삶, 철학이 궁금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그의 삶과 철학은 물론 시에 대해서도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P114 벌이 꿀을 만들 때 꽃을 가려서 취하지 않듯이 시 또한 어느 시대에 어떤 나라의 어떤 사람이 지었는가를 가려서는 안 되고, 단지 작자作者의 정신ㆍ감정ㆍ생각ㆍ뜻ㆍ기운이 살아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보면 된다 다른 사람의 시를 답습하거나 흉내 내거나 모방하지 않고 자신의 정신이 생동하는 진짜 시, 자신의 지기志氣가 꿈틀대는 살아 있는 시를 지을 수 있는 비결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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