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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식탁 -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
이라영 지음 / 동녘 / 2019년 9월
평점 :
먹고 만들고 먹히는 일은 모두 정치적이다
P8 먹거리를 기르고, 만들고, 먹고, 치우는 모든 문제가 정치적이다 밥상을 뒤엎는 사람, 밥숟가락을 먼저 들 수 있는 사람, 식사 중에도 계속 움직이며 시중드는 사람, 직사각형 식탁의 가장 '윗자리'에 앉는 사람, 준비된 음식을 앞에 두고 '설교'하는 사람, 제사상의 도리를 입으로만 따지는 사람, 성별에 따라 먹는 입과 노동하는 손의 역할을 구별하기 등 식탁에는 권력이 오간다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인연은 참 귀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와 그 자리를 함께하고 싶지는 않다 식탁을 지배하려는 사람과 밥을 먹는 일은 진짜 고역이다 함께 밥 먹는 행위는 다른 생명을 나눠 먹으며 서로가 연결되는 시간이다 편하지 않은 사람과는 도무지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또한 먹는다는 것은 살아 있는 나와 죽은 타자의 만남이다 다른 대상을 죽이지 않고 나를 먹일 수 없다 필연적으로 시체와 만난다
누군가가 해준 음식, 혹은 누군가와 함께 먹은 음식을 기억하는 이유는 단지 음식 맛 때문은 아니다 결국은 사람을 기억한다 때로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음식을 매개로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먹어서 내 몸에 쌓인 기억들, 혹은 역사 속에서, 예술 작품 속에서 간접적으로 만난 먹는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P32 몸을 옥죄는 사회의 시선 때문에 여성은 자신을 실제보다 훨씬 더 뚱뚱하게 여긴다 '날씬하지 않으면' 곧장 '뚱뚱한' 모습으로 직행하는 몸에 대한 상상은 지극히 사회적인 현상이다 이 사회적 살은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사라질 줄 모른다
이렇게 여성의 몸에 들이대는 숨 막히는 기준 속에서 자신이 뭔가 고쳐야 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거식과 폭식을 오가며 죄책감만 쌓인다 먹는 일이 힘들어지니 인간관계도 위축된다
여성의 섭식장애를 바라보는 시선 중에는 '불임'에 대한 걱정도 크다 이 또한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몸에 가두어놓고 걱정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40대 여성도 늘어나는 추세다 삶이 길어졌다는 것은 여성에게 다이어트의 시간도 함께 늘어났다는 뜻이다
P72 '집안의 어른'은 단지 나이가 많다고 되지 않는다 여성은 어른이 아니다 특히 결혼 안 한 여자는 어른 취급을 못 받는다 가장 어른으로 대접받는 여성은 바로 '아들의 엄마'다 '시어머니 되기'는 그렇게 발생한다
아들 키운 보상을 며느리에게 받으려는 시어머니, 고생한 엄마에 대한 보상을 자기 아내에게 시키는 아들 결국 여성에게 보상받고, 여성에게 화풀이하고, 여성에게 위로받으려는 모든 착취 행위를 여성이 감수해야 여성의 도리를 다한 셈이 된다 상하관계에 길들여진 남성들도 옆구리가 허전해서 외로울 때는 또 다시 여성을 소비하며 풀려고 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성차별을 기반으로 닦은 전통은 지켜야 하는 문화가 아니라 타파해야 할 폐습이다
P251 집에서는 부엌이 바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인간의 먹이가 된 물고기, 부위별로 이름 붙은 채 살덩이로만 존재하는 동물들
할머니들은 여전히 그 공간의 싱크대 앞에 서 있다 남성의 부엌 진출이 더딘 사회에서 집 안과 집 밖의 이중노동을 껴안고 사는 여성들은 할머니들이 없으면 어찌 살까 싶을 정도다 사회의 진보 속에서 여성의 노동은 다른 여성에게 전가된다 여성 노인의 집안 노동은 부뚜막에서 싱크대로 이동했다
부엌은 집의 심장이다 가족 구성원이 골고루 드나드는 공간이어야 관계의 순환이 원할하다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의 권리를 생각하는 정치적인 식탁은 누구든 환대해야 한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동물적 존재에서 말하는 권리를 가진 정치적 인간으로, 나아가 타인과 온전히 관계 맺을 수 있는 사랑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는 모두에게 있다
밥, 식탁, 삶 그리고 여자
우리 삶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밥상에는 차별이 있고 권력이 있다
여자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고 맞벌이 가정이라 하더라도 여자와 밥은 여전히 뗄 수 없는 관계다
따뜻한 음식이 차려진 식탁은 누군가의 고된 노동의 결과이다
식탁 앞에서 모두가 소외받지 않고 약자가 되지 않도록 사회가 변화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