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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ㅣ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평점 :
이해하고 싶었어,
너의 그 단호함을,
너의 편협함까지도
P20 딱 한 명만 있었으면, 은정은 종종 생각했다 친구가, 마음을 터놓을 곳이 딱 한 군데만 있었으면
우정이라는 적금을 필요할 때 찾아 쓰려면 평소여 조금씩이라도 적립을 해뒀어야 했다 은정은 그런 적립을 해둬야 한다는 생각도,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예측도 하지 못했다 그런 식의 적립과 인출이 너무도 부자연스럽다고, 노골적인 이해관계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친분을 쌓는 사람들을 남몰래 폄하했다
P45 네가 그런 거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너랑은 아무 관계가 없어, 실장님은 말했다 뻔하고 착한 말들이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말들
그러나 그 말들에 효용이 없다면, 그런 말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나는 왜 지금 울고 싶을까
P151 정직하게 말하자면, 편입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여성주의라는 이 거대한 흐름에 동참해서, 자신도 그 안에 있다고, 우리는 적이 아니고 같은 편이라고,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여성은 여성에게 너무 쉽게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해요 서로를 그렇게 적대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없어요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건 세연의 진심이기도 했다
붕대 감기, 고1 교련 시간 붕대 감기 실습을 하던 세연과 진경을 중심으로 그녀들과 엮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우리 사회에 활발하게 논의 중인 페미니즘 이슈를 둘러싸고 양성 간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여성들 간의 갈등과 대립, 분열과 혼란 등 남성중심의 사회 속에서 여성들의 삶을 통해 가부장제, 성폭력, 탈코르셋 등 우리 사회 페미니즘 이슈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보여준다 상처받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관계, 포기할 수 없는 연대
마음을 끝까지 열어 보이는 일은 사실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고 무참하고 누추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더 많지만, 실망 뒤에 더 단단해지는 신뢰를 지켜본 일도, 끝까지 헤아리려 애쓰는 마음을 받아본 일도 있는 나는 다름을 알면서도 이어지는 관계의 꿈을 버릴 수 없는 것 같다 꿈에도 서로를 사랑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 사람들 역시 은밀히 이어져 모르는 사이에 서로 돕고 있음을, 돕지 않을 수 없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에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