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 - 엄마를 보내고, 기억하며 삶과 이야기 1
이상원 지음 / 갈매나무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를 보내고, 기억하며

P44 남미라는 그 큰 공간에서 브라질만 제외하고는 전 지역이 스페인어 사용권이라는 건 경이롭다 오늘날 스페인어는 힘이 세다 사용 국가가 많으니 외교적으로 중요하고 무역과 경제 교류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언어이다 대학의 스페인어 강좌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남미를 수탈해 번영했던 스페인 절대왕정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식민 지배가 끝난 지도 오래다 하지만 스페인어는 여전히 남미에 뿌리를 내렸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언어였던 것일까

P114 "나는 집에서 자연사하기를 원해" 그래, 그게 가장 엄마가 내릴 법한 결정이지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온갖 연결선을 주렁주렁 몸에 달고 중환자실에서 생명 연장을 하고 싶지 않다고 평소부터 말해왔으니까. 면회 시간에나 잠깐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엄마 혼자 기계에 둘러싸여 마지막을 보내게 하는 것은 나도 싫었다 내가 환자가 되었을 때도 그건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이었다

P124 심심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엄마의 그 시간은 어쩌면 죽음 앞에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인지도 몰랐다 예전에 나는 시한부 선고를 받더라도 평소와 다름없이 살다 가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건 비현실적인 생각이었다 죽음이 코앞에서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달라진다 삶에서 중요했던 많은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남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친구들과 전처럼 마음 편하게 웃고 떠들 수가 없다 아마 나도 엄마가 그랬듯 혼자서 가만히 누워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P168 나는 엄마와 서른 살 차이 나는 딸로 태어나 50년을 함께 했다 1년 넘게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으니 50년이다 모녀의 인연으로 맺어져 서로의 편이 되어 50년을 지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P242 글쓰기는 대화를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엄마가 쓴 일기는 엄마가 자신과 나누는 대화였고 세월이 흐른 후 내가 엄마의 삶과 대화하게 된 도구였으며 엄마와 내가 이 책을 읽어줄 독자들과 나누는 대화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글은 내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객관화해 바라보도록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고 공간과 시간의 격찬슬 뛰어넘어 그 생각과 감정을 남들에게 전달할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남들은 그 글을 읽으면서 자기 생각과 감정에 대해 새로이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소통이 이루어지면서 '우리'라는 공동체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80세 엄마와 50세 딸이 한 달 동안 남미 여행을 다녀 온 다음 날, 80세를 여행하는 한 해로 삼겠다던 엄마는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
첫 번째 여행은 50세 딸과 80세 엄마가 한 달 동안의 남미 여행기
두 번째 여행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엄마의 7개월 간의 투병기
세 번째 여행은 엄마가 남긴 일기를 보며 엄마의 삶을 들여다 본다
항상 내 곁에 있을 것같고 그래야 될 것같은 존재 엄마, 그런 엄마가 말기암 진단을 받는다면 하늘이 무너질 것 같다 말기암, 간에 전이가 되어 수술도 불가능하고 '치료하면 11개월 치료 안 하면 6개월' 선고를 받는다 엄마는 입원과 치료를 하지 않고 집에서 자연사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 집에서 간병을 하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며 삶, 관계, 종교까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손수건을 준비해놓고 읽어야 할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