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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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P57 나는 지금도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를 구하는 것처럼 반짝거리는 일이 아니어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깐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거나, 그저 지루함을 버텨내는 일이거나,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일이어도 괜찮다 상대에 따라 전부이거나 혹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 운이 좋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낼 수도 있는 일들. 일을 하지 않는다고해서 우리의 쓸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각의 일들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가 조금씩 성장해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작은 일도, 무의미한 일도 그래서 모두 의미가 있다

P85 포에 할머니 덕분에 나무가 자라는 계절을 볼 수 있었다 처음이었다 가로수로는 이미 많이 자란 나무를 옮겨 심기 때문인지 몰라도, 도시에 살 때는 나무가 자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관심도 없었다 가로수 대신 야자수 아래를 걷는 지금이라고 해서 아주 더디게 자라는 그들의 성장까지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눈에 똑같아 보인다 해도 오늘의 나무가 어제와는 다른 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작은 차이 하지만 그 차이로 인해 오늘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P118 세상은 더하고 빼면 남는 게 없는 법이라더니, 보라보라섬이 딱 그런 것 같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고, 좋은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쁜 일도 생긴다 행복하다기엔 만만치 않고, 불행하다기엔 공짜로 누리는 것 투성이다 깨끗한 공기, 따뜻한 바다, 선명한 은하수.....
어디두 더하기만 있거나, 빼기만 있는 곳은 없을 거다 그건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안다 늘 까먹으니 문제지 지금 같아서는 된장국에 밥 말아 먹는 더하기 하나를 꼭 받고 싶다 음식에 대해 쓰고 나니 그 생각뿐이다 콩이라도 키워야 하나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P172 그러고 보면 엄마와 딸의 관계는 너무 불공평하다 사는 동안 한 번이라도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날이 올까 모르겠다 빙하를 보는데 자꾸 엄마 생각만 났다 돌아가면 새 신을 사드려야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멀어져야만 되레 애틋해지는 관계라니

P242 노를 저을 때마다 긴 물결이 일어났다 물결을 따라 햇빛이 굴절되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바다에 떠 있는 상태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처음이었다 내가 지구를 이루는 수많은 존재들 중 하나인, 그것도 아주 작은 존재라는 걸 보라보라섬이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 그러니까 섬, 바다, 만타레이 같은 자연우 그럴 의도가 없다 아름다울 때 아름다우려는 의도가 없고, 모든 것을 앗아갈 때도 앗아가려는 의도가 없다 그저 그곳에 늘 있다
아주 멋진 시나리오가 떠올랐는데 해안가에 도착해서 모래에 발을 내딪자마자 잊어버렸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 그래서 우리는 매번 바다로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직항도 없이 19시간 보라보라섬, 모든 게 낯설고 느리게 흐르는 보라보라섬에서의 일상을 담았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이름의 섬, 환상의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은 호기심으로 책장을 넘겼다 어느 곳에서나 사람은 살아가고 빠름 속에서 숨 좀 돌릴만하면 밤인 이곳과는 달리 전기가 끊어지고 가로등도 없고 조금은 부족하고 느린 보라보라섬이 낭만적이고 멋지게 느껴졌다 읽는 동안 여유가 느껴지고 힐링이 되는 책이었다 나도 지인들과 '우리만 아는 농담'을 만들어 가고 싶다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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